이방인들의 구원
성 경: [사 56:1-8]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쉬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은즉
2)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3)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5)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
6)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8)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본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사 56: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쉬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은즉
▶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 본절은 언약적 차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언약에 근거하여 '구원'과 '의'를 베푸실 것인데, 이제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 역시 '공평'과 '의'를 지키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Delitzsch).
여호와측에서 약속하신 바(곧 메시야 시대의 도래)의 성취 시점이 가까울수록, 이스라엘 또한 더욱 신실한 자태로 단장할 필요가 없었다.
한편, 침례 요한도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함에 있어서 인간 편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서 유사한 요구를 한 바 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
본절의 '공평'이나 '의' 혹은 침례 요한의 '회개' 등은 메시야의 도래를 맞을 때 요구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자태라는 점에서 그 공통점이 있다 하겠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 4:5,6).
[사 56:2]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 본절 전체는 지혜 문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축복 형식(benediction formula)을 보여주며
(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32:20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은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119: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잠 8:32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안식일을 잘 준행하는 자가 복있는 사람임을 나타낸다.
본절만의 내용을 보면 안식일에 지켜야 할 금지 사항만 언급되고 있으나, 문맥상 온전한 예배와 영적, 육체적 회복과 갱신이라고 하는 적극적 측면도 함께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G.W. Grogan).
웨스터만(Westermann)에 의하면, 포로기 동안 안식일 준수는 여호와께 예배드리는 신앙 공동체의 건실한 일원임을 알리는 결정적인 표시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안식일 못지않게 중요한 전제를 비롯한 여러 희생 제사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의적(祭儀的) 율법이 폐지되는 메시야 시대에 대한 간접적 암시라고 볼 수 있겠다.
[사 56:3]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 - 여기 '연합한'의 히브리어 '라와'는 레위 지파를 가리키는 '레위이'의 어근으로서, 레위지가의 성전 직무를 암시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레위 지파는 거룩한 성전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특별히 구별되었다.
(신 10:8 그 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 궤를 메이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고 그 일은 오늘날까지 이르느니라).
그렇다면 본절은 그 직무가 이방인에 의해서도 수행될 것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본 구절은 참신앙을 갖고 하나님의 예배자가 될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 원래 '고자'의 히브리어 '사리스'는 그 당시 궁궐에서 주요 직무를 맡고 있던 고급 관리 곧 '내시'를 뜻하지만,
(에 1:10 제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하여,
12 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왕명을 좇아 오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중심이 불 붙는듯 하더라,
15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명을 좇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꼬;
단 1: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행 8: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여기서는 생식기능이 마비된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이들은 당시 모세 율법에 의하여 총회의 명부에 기록되지 못했고 총회의 모임에 참석하지도 못하였다.
(신 23:2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십대까지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본 구절은 이제 율법 시대가 지나감으로 그들도 총회에 들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본 구절은 단지 생식기능이 마비된 자뿐 아니라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총회의 행사,
특히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던 자들도 겨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강조점은 고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제약하던 율법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사 56:4-5]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5)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
새롭게 등장할 메시야 왕국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자의 자격은 외형적이거나 육체적인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신실히 좇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음을 밝히는 구절이다(G.W. Grogan, J. Watts).
▶ 내 집 - 교회의 상징으로서의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킨다.
(딤전 3:15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지체하면 네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게 하려 하노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모세 율법상으로 이방인은 성전 바깥 뜰에 밖에 들어 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도 성전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방인도 마음껏 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됨으로써 거룩한 자의 반열에 들 수 있게 된 것을 가리킨다.
(히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 내 성 안 - 원문 직역은 '나의 성 벽들 안'이다.
고자들도 예루살렘 성벽들 안에로의 출입이 허용될 것이라는 뜻인데, 성(城)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말은 그들도 하나님이 통치를 받게 됨을 뜻한다.
▶ 기념물(יָד 야드 yad) - '기념비'
(삼상 15-12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니 어떤 이가 사무엘에게 고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렀는데, 보소서, 그가 자기를 위해 처소(기념비)를 세우고 가서 진행하여 길갈로 내려갔나이다, 하니라;
삼하 18:18 이제 압살롬이 생전에 자기를 위하여 기둥을 가져다가 왕의 골짜기에 세웠으니 이는 그가 말하기를, 내 이름을 기억나게 할 아들이 내게 없다, 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그가 자기 이름을 따라 그 기둥을 불렀으며 그 기둥이 이 날까지 압살롬의 처소라 불리느니라),
'손' 혹은 '장소' 등을 뜻하는 용어로서, 여기서는 '장소'로 보아도 무방하겠다(KJV).
왜냐하면 본 용어와 연관성이 있는 절 말미의 '끊치지'란 어떤 장소, 공동체와 연관이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사 56:6]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절에 열거된 특권을 누리기 위해 이방인들이 행햐야 할 일들이 자세히 열거되고 있다.
▶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 3절에서 이미 진술한 바와 마찬가지로 '연합'이란 이스라엘 레위 지파의 제사 직무와 연관된 용어이다.
물론 본 구절에서 말하는 제사란 구약 시대의 제사와는 다른 새로운 예배를 가리키며 이 새로운 예배는 오실 메시야 예수께 대한 바른 이해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요 4:21-23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이르느니라.
22)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에게 경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
23)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 이름을 사랑하며 - 여기 '이름'은 인류를 사랑하시어 그의 아들 예수를 보내실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예수와 연관성이 있는 하나님을 모르고는 참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 종이 되며 - 여기서 '종'이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핵심으로 하는 복음을 이방에게 전하는 자를 뜻한다.
먼저는 그리스도 자신이 종이 되실 것이고 계속해서 그의 교회가 종의 직무를 전수하게 될 것이다.
▶ 안식일 - 구약의 한 절기에 불과한 안식일이 아닌 메시야 도래 이후, 그 의미가 새롭게 재정립될 모든 종교적 규례들을 함축적으로 가리킨다.
[사 56: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 나의 성산 - 문자적으로는 예루살렘을, 영적으로는 메시야 시대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교회를 가리킨다.
(2:2 마지막 날들에 주의 집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세워지며 작은 산들 위로 높여지리니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흘러들리라;
렘 3:17 그때에는 그들이 예루살렘을 주의 왕좌라 부를 것이요, 모든 민족들이 거기로 모이되 주의 이름을 향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이고 다시는 자기들의 악한 마음에서 상상하는 대로 걷지 아니하리라).
▶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 이 표현은 문자 그대로의 희생 제사가 이방인에 의해서도 수행할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지금 문맥은 메시야 시대에 있을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메시야가 자신의 몸을 단번의 제사로 드림으로 구약의 희생 제사는 폐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히 10:11-12 제사장마다 날마다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희생물들을 드리되 그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핵심은 이스라엘의 특권과 우월성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에 있다.
번제와 희생은 이스라엘만의 특권이었고, 그들의 우월성의 근거가 되었다.
▶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 본절 상반절에 기록된 이방인의 특권 수혜의 근거를 적고 있다.
한마디로 그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국한하였던 특권을 '만민', 곧 땅 위의 모든 백성에게로 확대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은 온 인류를 상대로 하는 메시야의 대속 사역이다.
이방인까지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게 해달라는 간구가 성전 봉헌 당시 솔로몬에 의해 언급된 바 있다.
(왕상 8:41-43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먼 지방에서 온 타국인에 관하여는
42)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강한 손과 주의 뻗은 팔에 대해 들을 터이므로) 그가 와서 이 집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43) 주께서는 하늘 곧 주의 거처에서 들으시고 그 타국인이 주께 부르짖어 구하는 대로 다 행하사 땅의 모든 백성들이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주의 이름을 알고 주를 두려워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집이 주의 이름으로 불리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그러나 이를 복음의 우주적 성격과 관련지어 명확히 표현한 것은 이시야에 와서이다(Delitzsch).
주님께서도 본 구절을 인용하신 바 있다.
(마 21: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하였거늘 너희가 그것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사 56:8]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본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 이미 모은 본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 포로지로부터 모아들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른 이방들의 많은 자들을 더 하시겠다는 이 약속은 본장 본절까지와 앞의 몇장들 내용의 결론이 되고 있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새로운 주제가 소개되므로 여기서 지금까지 다룬 몇 개의 장들을 정리 요약할 필요가 있다.
요약의 내용은 본 구절을 통해 잘 드러나듯이 메시야 시대 때 이방 세계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타민족 사이에 놓여왔던 두터운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따라서 어느 민족도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 놀라운 경륜 아래서 이제 모든 성도는 한때는 낯선 자요 외국이었으나,
이제는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확신 가운데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엡 2: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도 아니요 외국인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
그 기원에 있어서 온 세계는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온 땅에 거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행 17:26 또 그분께서 사람들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로 만드사 온 지면에 거하게 하시고 미리 작정하신 때와 그들을 위한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