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6일 일요일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하나님에 대한 찬양

 

성 경: [63:7-9]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그 긍휼을 따라, 그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63:7]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그 긍휼을 따라, 그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내가 - 본절에서부터 화자가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는(1-6) 화자가 주로 메시야이셨다면,

 

(1-6에돔에서 나오며 물들인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나오는 이 자가 누구냐? 의복이 영화롭고 자신의 큰 능력으로 다니는 이 자가 누구냐? 의 안에서 말하는 나니 곧 구원하는 능력이 있는 자니라.

2) 어찌하여 주의 의복이 붉으며 주의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와 같으니이까?

3) 만백성 중에서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노라. 내가 친히 분노하여 그들을 밟고 친히 격노하여 그들을 짓밟으리니 그들의 피가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히리라.

4)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속에 있고 내가 구속할 자들의 해가 이르렀으나

5) 내가 보니 도와주는 자가 없었으며 또 떠받쳐 주는 자가 없었으므로 내가 이상히 여겼노라. 그러므로 내 팔이 내게 구원을 가져왔으며 내 격노가 나를 떠받쳤느니라.

6) 내가 친히 분노하여 만백성을 밟으며 내가 친히 격노하여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기력을 땅에까지 끌어내리리라)

 

이제부터는 대적의 진멸을 통하여 그들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스라엘이며,

 

(7-14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것에 따라 내가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찬양을 말하며 또 자신의 긍휼에 따라, 자신의 많은 인자하심에 따라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그 큰 선하심을 말하리라.

8) 그분께서 말씀하시되, 참으로 그들은 내 백성이요,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며 이처럼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9) 그들의 모든 고난 속에서 친히 고난 당하시고 자기 앞에 있는 천사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며 친히 사랑하고 동정하사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의 모든 날에 그들을 품으시며 이끄셨느니라.

10) 그러나 그들이 반역하여 그분의 거룩한 영을 괴롭게 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돌이키사 그들의 원수가 되셔서 친히 그들과 싸우셨느니라.

11) 그때에 그분께서 옛날과 모세와 자신의 백성을 기억하여 이르시되, 자기 양 떼의 목자와 함께 바다에서 그들을 데리고 올라온 자가 어디 있느냐? 그 속에 자기의 거룩한 영을 둔 자가 어디 있느냐?

12) 자기의 영광스런 팔과 함께 모세의 오른손으로 그들을 인도하고 친히 영존하는 이름이 되려고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한 자가 어디 있느냐?

13) 그들을 깊음 사이로 인도하되 광야에 있는 말같이 걸려 넘어지지 아니하게 한 자가 어디 있느냐? 하셨느니라.

14) 짐승이 골짜기로 내려가는 것 같이 주의 영께서 그를 안식하게 하셨나니 이처럼 주께서 주의 백성을 인도하심은 친히 영화로운 이름이 되고자 하심이니이다),

 

그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선지자가 직접적 화자로 나서고 있다.

 

그런데 여기 대적의 진멸이란, 1-6절에 서술된 내용이 아니라 과거 이스라엘 역사속에 수차례 반복된 이방으로부터의 이스라엘 구원 역사를 가리킨다.

 

하나님 찬양으로 시작되는 본절로부터 14절까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15절부터 64:12까지의 큰 단락은 이스라엘의 억압과 파멸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자비를 탄원하는 이스라엘의 기도를 그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63: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 이것은 언약 관계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가리킨다.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자녀 - 이것은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를 맺었을 때, 하나님이 가지셨던 기대를 표현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언약 관계에 신실할 것을 기대하셨다.

아울러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그러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반역과 거짓의 역사를 되풀이해 왔지만, 하나님께서 그 크신 은총을 따라 택하신 백성을 회개시켜 새로이 회복시키시리라는 암시도 담겨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작정도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암시를 주는 구절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63: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9) 그들의 모든 고난 속에서 친히 고난 당하시고 자기 앞에 있는 천사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며 친히 사랑하고 동정하사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의 모든 날에 그들을 품으시며 이끄셨느니라(KJV).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 '그들의 모든 고난 속에서 친히 고난 당하시고'(KJV)

(In all their affiction he was afflicted, KJV).

 

자기 앞의 사자 - 이 사자는 광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고 구원하였던 적이 있다.

 

(32:34 그러므로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보라, 내 천사가 네 앞에 가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징벌하는 날에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벌하리라, 하시니라;

 

33:2 내가 천사를 네 앞에 보내며 또 가나안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고;

 

20:16 우리가 주께 부르짖으매 그분께서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한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셨나이다. 보소서, 우리가 당신의 경계 맨 끝에 있는 도시 가데스에 있사오니).

 

따라서 천사로 보는 것이 가능해지는데 구체적으로

 

가브리엘,

 

(1:19 천사가 응답하여 그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가브리엘이라. 이 기쁜 소식을 네게 말하며 보이기 위해 내가 보내어졌노라),

 

미가엘로 보는 견해가 있다(Clark, Jarchi).

 

(10:13-21 그러나 페르시아 왕국의 통치자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나, 보라, 우두머리 통치자들 가운데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느니라. 내가 거기서 페르시아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었느니라.

14) 이제 내가 너로 하여금 마지막 날들에 네 백성에게 일어날 일을 깨닫게 하려고 왔거니와 그 환상은 많은 날 뒤에 있을 일이니라.

15) 그가 그런 말들로 내게 이를 때에 내가 땅을 향하여 얼굴을 고정하고 말을 하지 못하였더니

16) 보라, 사람들의 아들들과 비슷한 이가 내 입술을 어루만지니라. 이에 내가 입을 열어 내 앞에 서 있던 이에게 말하여 이르되, 오 내 주여, 그 환상으로 말미암아 내 슬픔이 내게 돌아왔으므로 아무 기력도 내게 남지 아니하였나이다.

17) 이 내 주의 종이 어찌 이 내 주와 말할 수 있으리이까? 나로 말하건대 내 안에 즉시로 기력도 남지 아니하고 호흡도 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18) 그때에 사람의 모양을 한 이가 다시 와서 내게 손을 대며 나를 강건하게 하고

19) 이르되, 오 크게 사랑받는 사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참으로 마음을 강하게 하라, 하니라. 그가 내게 말하매 내가 강하게 되어 이르되, 주께서 나를 강하게 하셨사오니 내 주는 말씀하소서, 하매

20) 그때에 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왔는지 네가 아느냐? 내가 이제 돌아가서 페르시아의 통치자와 싸우려니와 내가 나아가면, 보라, 그리스의 통치자가 이르리로다.

21) 그러나 내가 진리의 성경 기록에 적힌 것을 네게 보여 주리니 이 일들에서 나와 함께 버티는 자는 너희의 통치자 미가엘 외에 아무도 없느니라)

 

그런데 이 용어는 오실 메시야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데 실제로 메시야로 보지 않으면 해석되지 않는 부분에서 이 용어가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4:19 이스라엘의 진영 앞에 가던 하나님의 천사가 이동하여 그들 뒤에서 가매 구름 기둥이 그들의 얼굴 앞에서 떠나가고 그들의 뒤에 서서;

 

23:20-21 보라, 내가 한 천사를 네 앞에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며 내가 예비한 곳으로 너를 데리고 들어가게 하리니

21) 그에게 주의하여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내 이름이 그 안에 있으므로 그가 너희 범죄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따라서 본 용어는 1차적으로는 천사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메시야를 예표하는 용어로 정리하면 되겠다.

 

드시며 - 그의 양떼를 모든 목자 혹은 그의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 혹은 새끼를 날개 아래 품는 독수리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19:4 내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행한 것과 또 내가 독수리 날개에 너희를 실어 내게로 데려온 것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32:11-12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저으며 자기 새끼 위에 너풀거리고 자기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받으며 자기 날개 위에 그것들을 업는 것 같이

12) 주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분과 함께한 이방 신이 없었도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광야의 연단 중에서 보존하시고

결국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이신 것을 가리킨다.

 

 

2026년 4월 25일 토요일

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 하고

 하나님의 심판

 

성 경: [63:1-6]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

3)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 구속할 해가 왔으나

5)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 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 하고 그들의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63:1]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 - 에돔은 근접해 있는 까닭에 유다와 끊임없는 적대감을 가졌던 국가이며 보스라는 위치상으로는 모압에 가까우나 이두매, 곧 에돔의 주요 도시 중의 하나였던 곳이다.

 

이 두 곳은 본서 저자가 세상의 모든 유다의 대적을 의미할 때 언급한 곳이다.

 

(34:6 주의 칼이 피로 충만하며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염소의 피와 숫양의 콩팥 기름으로 기름지게 되었나니 주께서 보스라에서 희생물을 취하시고 이두매아 땅에서 큰 살육을 행하시는도다).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 - 여기 '홍의를 입고''חָמֵץ 하메츠 chamets בֶּגֶד 베게드 beged'이다.

 

그런데 '하무츠''(맛이) ', '(색깔이) 얼룩덜룩한' 어떤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하마츠'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자줏빛, 주홍색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용어는 원래 자줏빛으로 염색한 혹은 피가 그 옷자락에 튀어 피색으로 물든 용사의 망토를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본절이 묘사하고 있는 어떤 인물은 이 사실과 뒷 문맥을 고려하여 볼 때에 승리를 쟁취하고 귀환하는 큰 용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용사의 정체에 관한 견해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중의 대표적인 두 견해는

메시야 혹은 하나님으로 보는 견해이다.

 

62장과의 문맥적 연결 면에서, 그리고 본절이 그려내는 용사의 모습이 대적들을 정복한 승리자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이 많다(Calvin, Delitzsch, Gesenius).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근거에 입각해볼 때, 오히려 전자의 견해가 더 나을 것 같다.

 

(1)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상황은 단지 이스라엘의 역사상 일어날 일이라기보다는 마지막 보응의 날과도 관계된다.

이런 점에서 에돔 등은 이스라엘의 모든 대적은 물론이고 나아가 메시야와 성도들을 대적하는 사단의 모든 세력까지 상징한다.

 

(2) 피묻은 옷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대속을 암시한다.

 

(19:11-14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흰 말이라. 그 위에 타신 분은 신실하신 이, 참되신 이라 불리더라. 그분은 의로 심판하며 전쟁을 하시느니라.

12) 그분의 눈은 불꽃 같고 그분의 머리 위에는 많은 관이 있었으며 또 그분께 기록된 한 이름이 있었으나 그분 밖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하더라.

13) 또 그분께서 피에 담근 옷을 입으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리느니라.

14) 하늘에 있던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분을 따르더라).

 

(3)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패배의 십자가가 아니라 도리어 죄와 사망과 사단의 세력을 파하신 승리의 십자가였다.

 

(2:15 정사들과 권능들을 벗기사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화려한 의복 - 문자적인 뜻은 '그 의복에 있어 영광스러운'이다.

이것은 고위직에 있는 고대 용사들의 영예롭고 눈부신 군복을 가리킨다.

 

큰 능력으로 걷는 자 - 두말할 나위 없이 이 표현은 그의 대적을 완전히 섬멸한 사실을 드러내듯 승리의 정복자로서 당당한 보무로 입성하는 용사에서 따온 이미지이다.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 지금까지는 제삼자가 화자(話者)였다면, 본 구절부터는 메시야 자신이 화자가 되고 있으며, 본 화자는 앞선 화자의 의문에 대답을 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 ''는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63: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 - 본절은 메시야가 그 대적을 진멸하신 사실을 포도즙 짜는 모습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당시 포도즙을 짤 때에는 먼저 큰 통에 포도를 넣고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밟았다.

한 시간 정도 밟으면 질이 좋지 않은 포도는 맨 위로 떠올랐으며 그 후 계속해서 30분 정도를 더 밟으면 향기 좋은 포도즙이 각 송이에서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더 밟으면 신 포도까지 터져 전체 포도즙의 맛은 좋지 않게 된다고 한다(Burder).

 

본절은 이같이 포도즙을 짤 때 그 즙이 튀어 옷에 묻은 어떤 사람을 연상하여 말하고 있다.

 

성경은 피를 포도즙에 비유해 언급하곤 한다.

 

(32:14 암소의 버터와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품종의 숫양과 염소와 기름진 밀을 먹게 하셨으므로 또 네가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셨도다).

 

어떤 학자는 여기서 저자가 피를 포도즙에 비유하고 있는 까닭은 1절에 언급된 '보스라'라는 지역이 포도 산지로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Calvin).

 

이 경우 '보스라'가 포도 산지인 줄 알고 있던 유대인들은 더 실감 나게 본절의 의미를 파악했을 것이다.

 

 

[63:3]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 본절은 2절에 묘사된 바 포도즙 틀을 밟다가 그 즙이

옷에 묻은 것과 같은 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63: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 구속할 해가 왔으나

 

원수 갚는 날 - 여기 '원수 갚는다'는 표현은 공의에 입각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에돔 혹은 이두매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다.

 

성경은 에돔 자손이 예루살렘 성전의 기초까지 파괴할 정도로 악했고 이스라엘을 괴롭혔다고 진술하고 있다.

 

(137:7 오 주여, 예루살렘의 날에 에돔 자손이 말한 것을 기억하소서. 그들이 말하기를, 그것을 무너뜨리라. 그것을 무너뜨리라. 그것의 기초까지 무너뜨리라, 하였나이다).

 

이 같은 대적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방(사단의 세력)이 징벌받는 이 날은 역으로 이스라엘(모든 성도)의 구원의 날이다.

 

* 참조 : (34:8 그 날은 주께서 원수 갚으시는 날이요 시온에 대한 논쟁으로 인해 보응하시는 해니라;

 

61:2 또 주의 받아 주시는 해와 우리 하나님의 원수 갚으시는 날을 포고하고 애곡하는 모든 자를 위로하게 하려 함이며).

 

 

[63:5]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 아무도 메시야의 구원 사역을 조력하지 않으며 조력할 수도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 말은, 메시야께서 감당하시는 인류 구원의 대업(大業)은 메시야 자신의 대속 사역으로써 충분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 이 표현은 59:16'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를 연상시킨다.

 

(59:16 그분께서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중보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느니라. 그러므로 그분의 팔이 그분에게 구원을 가져왔고 그분의 의가 그분을 지탱하였나니)

 

 

[63:6] 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 하고 그들의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그들을 취케 하고 - 혹자는 본절을 3절 하반절의 반복적 유사 평행구로 보고 본문의 히브리어 '아솨크램''쳐부수다'는 의미의 '아솨브램'으로 수정하고자 한다(탈굼역, Whybray).

 

그러나 굳이 원문 수정을 하지 않더라도, 본문은 메시야의 진노의 공포 아래 있는 자가

만취한 자처럼 자제력을 잃고 땅 위에 엎드러져 있는 상황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75:8 주의 손에 잔이 있고 그 포도즙이 붉으며 그것이 혼합물로 가득하도다. 그분께서 바로 그것을 쏟아 내시되 그것의 찌꺼기는 땅의 모든 사악한 자가 짜내어 마시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