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5일 일요일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부인의 사랑

 

이사야서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49:15)

 

아버지의 사랑은 깊다. 어머니의 사랑은 강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심도에 대해서는

이것을 아버지의 사랑에 비교해 말할 것이고,

그 강도에 대해서는, 이것을 어머니의 사랑에 비교하여 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아버지시며, 또 어머니시다.

 

그는 아버지처럼 깊이 사랑하고, 또 어머니처럼 강하게 사랑하신다.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이라고 있음은, 그의 여성적 반면을 발한 것이다.

 

다윗이 요나단을 애석히 여겨 노래한 말에,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보통이 아니어서-일역)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다’(사무엘 하 1:26)고 있음은,

 

이런 종류의 사랑을 가리켜 한 말이다.

 

실로 여호와는 아버지로서 의뢰할 수 있고, 또 어머니로서 가까이 할 수가 있다.

 

아버지가 그 아들을 긍휼히 여김 같을 뿐 아니라, 또 어머니가 그 젖 먹는 자식을 긍휼히 여기는 것 같다고 한다.

 

성서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고, 자비의 하나님은 아니라는 등은, 아직 성서를 모르는 자이다.

 

성서가 보여 주는 신은, 강한 신이신 동시에, 또 인자한 신이시다.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태복음 23:37 한글 개역)고 하는 것은,

 

이는 확실히 부인의 소리이다.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보라. 예언자 호세아를 보라.

그들은 여성적 예언자로서, 하나님의 여성적 반면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옳다, 여호와는 부인의 정열로써, 우리들을 사랑하신다.

여인이 그 복중의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하신 하나님이 어찌 사람의 멸망을 좋아하실 수 있으랴!

 

사람인 어머니께 물어보라, 그 마음을 아프게 하는 가장 심한 경우가 무엇인지를.

 

그 자식이 병들어 앓는 때이다. 그 자식이 죽음에 임박한 때이다.

그 자식이 타락의 심연에 빠져, 구제의 희망이 끊기려는 때이다.

 

비탄의 극점, 통한의 끝이란, 그러한 경우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이상의 비통으로써 사람의 타락을 보시고 있는 것이다.

 

아아,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다. 어머니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다.

그는 언제나 소리를 높여 부르신다.

 

내 아들아, 돌아오라, 돌아오라.

 

그리고 음성 중에는, 남성의 베이스가 울려 퍼짐과 함께, 여성의 소프라노가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리고 삼가 여호와께서 보여주신 그의 성격을 해부하여 볼 때, 그에게 있어서도 여성은 훨씬 남성보다 승한 것을 보는 것이다.

 

여호와는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여성이다),

노하기를 더디하시고(약간 남성이다),

자애와 진실로 부하시고(여성이다),

자애(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여성이다).

악과, 허물(과실), 죄를 용서하시는 자(여성이다),

벌할 자를 벌하고 용서치 않는(비로소 남성이다).’(출애굽기 34:6 이하 참조)

 

만약 성서 전체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성격에 따라,

그에게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그는 부르는데 있어서

 

하늘에 계시는 우리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이,

아버지여하는 것보다는 훨씬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촌감삼의 (19138성서지연구’)를 참조 함.

 

2026년 3월 14일 토요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시온의 재건 2

 

성 경: [49:17-23]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19)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20)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21) 그 때에 네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22) 나 주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열방을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호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23)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49:17]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 원문 직역은 '네 자녀들은 서두를 것이다'이다.

 

무엇을 하기 위해 서두르느냐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 '자녀들'로 번역된 'בֵּן ben''너의 아들들', 또는 '너의 건축자들'(70인역)로 번역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서두르며 하는 일이란 건축에 관한 것이라는 암시를 추측케 한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포로 이스라엘이 그 무너진 성벽과 성전을 수축하기 위하여 서둘러 귀환할 사실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

 

 

[49: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 원문 직역은 '살아 있는 내가 말하노니'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맹세의 중요한 한 형태인데, 이것은 이 맹세에 따르는 예언이 반드시 성취될 것에 대한 엄중한 확신을 내포한다.

 

(22:24 주가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비록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내 오른손의 인장 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빼내어;

 

5:11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네 모든 역겨운 것과 네 모든 가증한 것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미약하게 하고 내 눈이 아끼지 아니하며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14:16 비록 이 세 사람이 그 안에 있다 할지라도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이 아들딸들은 건지지 못하고 오직 자기만 건지려니와 그 땅은 황폐하게 되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18 비록 이 세 사람이 그 안에 있다 할지라도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이 아들딸들은 건지지 못하고 오직 자기만 건지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20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그 안에 있다 할지라도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이 아들딸은 건지지 못하고 오직 자기 의로 자기 혼만 건지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16:48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자매 소돔 곧 그녀와 그녀의 딸들은 너 곧 너와 네 딸들이 행한 것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

 

성경에서 시온은 흔히 신부에, 개심자들은 신부의 장식품에 각각 비유되고 있다.

 

(62:3 또 주의 손에 있는 영광의 왕관과 네 하나님의 손에 있는 귀중한 왕관이 되리라;

 

3:17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보석들을 만드는 그 날에 그들을 나의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자기의 친아들을 아끼는 것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여기서 시온의 자녀들이란,

 

1 차적으로 포로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을,

2 차적으로는 그리스도에게로 개심할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이 후자의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완전한 회심을 이루는 수단이 될 것이다.

 

(5:7-8 또 야곱의 남은 자들은 주로부터 내려오는 이슬처럼,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아들들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풀 위에 떨어지는 소나기처럼 많은 백성들의 한가운데 있으리라.

8) 또 야곱의 남은 자들은 숲의 짐승들 가운데 있는 사자처럼, 양 떼들 가운데 있는 젊은 사자처럼 많은 백성들의 한가운데서 이방인들 가운데 있으리라. 그런즉 그가 지나가면 짓밟고 갈기갈기 찢으리니 아무도 능히 건져 내지 못하리라;

 

11:12-15 이제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그들의 쇠퇴함이 이방인들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은 얼마나 더 많이 부요함이 되겠느냐?

13) 내가 이방인들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들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존귀히 여기나니

14) 이것은 내가 어찌하든지 내 살붙이인 그들을 자극하여 경쟁하게 함으로 그들 가운데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린 것이 세상의 화해가 되거든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49:19]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1차적으로는 귀환할 백성으로 인해 그 땅이 붐비게 될 것을 가리키나, 영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될 진정한 개심자들이 무수히 많을 것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본 암시는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주셨다.

 

(12:1-3 그런데 전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가 복이 되리라.

3)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리니 네 안에서 땅의 모든 가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하셨더라;

 

13:14-17 롯이 아브람을 떠나 갈라선 뒤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이제 네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부터 북쪽과 남쪽과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네가 보는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씨에게 영원히 주리라.

16) 내가 네 씨를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거든 네 씨도 세리라.

17) 일어나 그 땅을 그것의 길이로도 걸어 보고 그것의 너비로도 걸어 보라. 내가 그 땅을 네게 주리라, 하시니).

 

 

[49:20]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고난 중에 낳은 자녀 - 원문 직역은 '너희의 사별(死別)의 아들들'이다.

이는 남편과 사별한 사실보다는 자녀와 사별한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1 차적으로 전쟁과 기근으로 말미암아 많은 자녀들을 잃어버린 예루살렘이

이제는 각처에서 돌아온 백성들로 크게 붐비게 될 것을 예언하는 말이다(Whybray).

 

그리고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 덕분에 믿음을 지니게 될 성도들에 대한 암시로도 이해된다.

 

 

[49:21] 그 때에 네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누가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

 

이것은 1차적으로는, 예기치 못한 회복을 목도한 시온의 즐거운 비명이며, 2차적으로는, 영적 이스라엘의 행렬이 이방 각처에서 교회로 이어질 사실에 대한 암시이다.

 

이러한 사실에 따른 탄성, 비명은 행 10:45에서 가장 먼저 성취되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Fausset).

 

 

[49:22] 나 주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열방을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호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열방을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 손을 쳐든다는 것은 환영의 표시이다.

 

하나님은 이방인이 메시야를 받아들이는 복된 대열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을 부르고 환영하신다는 것이다.

 

(11:11 그 날에 다시 주께서 두 번째 자신의 손을 세우사 자신의 백성 가운데 남은 자들 곧 남게 될 자들을 되찾되 아시리아와 이집트와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의 여러 섬으로부터 되찾으실 것이요).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

 

어느 정도 자란 아이는 어깨에 올려 놓고 아주 갓난 아이는 가슴에 안은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 표현은,

 

이방인들이 혈통적 이스라엘과 함께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에 구성원으로 가입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49:23]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

 

본절의 이미지들은 보호, 복종 등을 그리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땅 위의 권세잡은 자들에 의해 보호받고 또 그들을 복속시킬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일례로, 이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國敎)로 공인된 사실이나 기독교의 영향력이 로마 전체에 미쳤던 사실을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