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2일 토요일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완성과 고난

 

히브리서 210:

 

대저 많은 아들을 영광에 인도하기 위해, 그 구원의 임금(군주)을 고난에 의해 완전케 하신다는 것은, 만물의 귀속되는바 만물을 창조하신이(하나님)에게 합당한 일이시다’(히브리서 2:10일역)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개정개역)

 

 

성서에 위대한 놀라운 말씀이 많이 있는데,

그 하나는 확실히 히브리서의 이 1절입니다.

 

이것을 요약해 말한다면, 사람은 고난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지(will)라는 것입니다.

 

그 일의 전부가 의외입니다.

사람이 완전하게 된다고 하며, 완전하게 되는 길은 고난이라 하고,

그리고 고난에 의해 완전하게 되는 것이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성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 사람이 듣고서, 모두 의외로 느끼는 일로서, 듣고서 다 놀랄 뿐입니다.

 

사람은 원래 불완전한 자, 그것이 온전해진다는,

그것이 불가해의 제1입니다.

 

그리고 가령 완전에 달할 수가 있대도, 그 길이 평안무애(무방자)의 길이 아니라

고난신고의 길이라는,

그것이 불가해의 제2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특히, 그 애자에 의해 택하시는 길이 이것이라는,

그것이 불가해의 제3입니다.

 

이 세상의 아버지로서 아들의 성공을 꾀(도모)하는데 있어서

특히 고난의 길을 택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완전케 하는데 고난으로서 하는 것이,

천지의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께 합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인은 물론, 박신의 신자가 이것을 듣고서 놀람은 괴이하게 여길 것 못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히브리서의 이 말씀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임금으로서 정하신 예수의 생애가 이대로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 가장 비슷한 사람,

예언자 예레미야, 사도 바울 같은 사람들의 생애가 이대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총아라 불리면서, 총아다운 취급을 조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멸시되어 사람에게 버린바 되고, 슬픔의 사람으로서 병을 알았다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고’(이사야서 53장 참조)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들의 생애였습니다. 실로 이상합니다.

하나님께 축복된다는 것은 복되지 못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총아는 하나님의 적으로서의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인생 이에서 더한 불가사의(wonder)는 없습니다.

그러나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 설명은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 죄인의 경우에 있어서는, 고난은 죄를 불태워 버리기위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애자를 채찍질(편달) 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람의 받는 고난은 징계 이상의 목적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수의 받은 고난은 속죄위한 고난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자는 예수와 함께 세상의 죄를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되므로,

그는 구레네 시몬과 한 가지로,

예수의 십자가의 일단을 짊어짐의 명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또 신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그 때문에 고난이 필요합니다.

자기의 약함을 알 때 하나님의 강하심이 해득되는 것입니다.

 

야마나까 시까노스께의 노래에,

 

이 위에 더 근심스런 일 쌓여라 한있는 몸의 힘 시험하련다고 하는 것이 있는데,

 

신자는 조금 말을 바꾸어 합니다,

 

한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련다.

 

사람이 알지 못하는 고난에 처하여, 하나님에 의해 위로되고, 격려되어,

완전히 이에 이길 수 있어, 신자는 하나님을 알고,

그 만큼 그의 완전하신 것같이 완전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고난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의 용적(capacity)을 넓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 예리한 끝(chise) 처럼 우리들의 굳은 마음을 뚫려, 거기에 새로이 용기를 만들고,

그 안에 은혜의 이슬을 가득하게 합니다.

고난 적은 사람은 은혜를 받음의 용적(용기)이 적은 사람입니다.

 

고난에 의해 동정(同情)이 더해집니다.

우리는 고생하는 만큼 그것만큼 동정의 구역과 능력을 더하게 됩니다.

동정은 사람을 도움의 비결인 것으로서, 이것 없이 인류의 벗으로 될 수는 없습니다.

 

같은 히브리서의 414절 이하에 이르기를,

 

우리에게는 대제사장이 있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다.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없는 대제사장이 아니시다.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 같이 시험 받으셨다. 하지만 죄를 범치 않으셨다.

 

(예수), 구원의 임금(주군)이 고난에 의해 완전해졌다는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는 고난에 의해 완전한 구주로 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실험도 또한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13절 이하에 이르기를

 

찬양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즉 많은 자비의 하나님, 모든 위로의 하나님, 우리를 모든 고난 중에 위로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하나님께 위로 받는 위안으로서, 많은 고난에 있는 자를 위로할 수 있게 하신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 차고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차고 넘친다.

 

고생하여 위로받고, 위로받아 고생하는 자를 위로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여, 고난 그것이 대 은혜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만민 위해 죽음을 맛보셨다’(히브리서 2:9일역)

 

그에게 있어서, 죽음의 고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고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영광의 달하는 길은 고난입니다.

몇 차례나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실험을 거친 일 없는 자는 하나님의 총아는 아닙니다(1010일 기록).

 

* 내촌감삼의 (19275성서지연구’)

 

2026년 9월 11일 금요일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의 죄들을 위해 화해를 이루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2

 

성 경: [2:16-18] 이는 주께서 진실로 천사들을 본성을 입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씨를 입으셨음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모든 일에 마땅히 자기 형제들과 같이 되셔야 했으니, 이는 하나님과 관련된 일들에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의 죄들을 위해 화해를 이루려 하심이라.

18) 그가 이 일에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와 주실 수 있느니라.

 

 

[2:16] 이는 주께서 진실로 천사들을 본성을 입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씨를 입으셨음이라.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주려 하심이라 - '붙들어''을 붙잡다', 또는 '성질을 취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혹자는 후자의 뜻을 받아들여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천사의 특성을 취하여 천사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의 특성을 취하여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orris).

 

그러나 본절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어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Hewitt, Lane, NIV).

 

한편 '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한 견해도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아브라함의 후손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한다(Bengel, Moffatt, Westcott, Bruce, RSV, NIV).

 

(2) 혹자는 '아브라함의 씨'로 오신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Chrysostom, Ambrose, Beza, KJV).두 가지 해석 중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첫 번째 견해가 더 타당하다.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너희는 아브라함의 씨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들이니라).

 

 

 

[2:17] 그러므로 그가 모든 일에 마땅히 자기 형제들과 같이 되셔야 했으니, 이는 하나님과 관련된 일들에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의 죄들을 위해 화해를 이루려 하심이라.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 '마땅하도다''할 의무가 있다', 혹은 '빚지다'라는 의미로 책임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형제들과 같이 되심' 즉 성육신하심은 반드시 해야 할 일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업을 스스로 떠맡으셨으므로 그의 성육신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0:17 이로 인하여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나니 이는 내가 생명을 다시 얻기 위해 나의 생명을 내어 놓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 본절에 나타난 예수의 칭호 ,

'대제사장'(ρχιερεύς 아르키에류스 archiereus)은 신약성경에서 본서에만 나타나는 칭호로 예수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 속에 구약 시대의 속죄 행위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언약 백성 사이의 중보적 역할을 수행하여 대속을 위한 제사 행위를 주관하며

 

(18:19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바치는 거룩한 것들에서 모든 들어올리는 제물은 내가 너와 네 아들들과 네 딸들에게 영원한 규례로 주었나니, 그것은 주 앞에서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한 소금의 언약이니라." 하시니라;

 

33:20-26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일 너희가 나의 낮의 언약과 나의 밤의 언약을 깰 수 있다면, 또 그들의 계절에 낮과 밤이 없게 된다면

21) 그때에는 또한 나의 종 다윗과 맺은 나의 언약도 깨어질 수 있어서 그에게 그의 보좌를 다스릴 한 아들도 없을 것이며, 나의 사역자들인 레위 제사장들과 세운 언약도 깨어질 수 있으리라.

22) 하늘의 군상이 헤아릴 수 없고 바다의 모래도 측량할 수 없듯이, 내가 나의 종 다윗의 씨와 나를 섬기는 레위도 그처럼 번성케 하리라.

23) 또 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24) 이 백성이 "주께서 택하신 두 족속들을 버리셨다."고 말했던 것을 네가 생각하지 않느냐? 그들이 내 백성을 그처럼 멸시하였으니, 그들이 다시는 내 백성 앞에 한 민족이 되지 못하리라.

25)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일 나의 언약이 낮과 밤과 더불어 있지 아니하고, 또 만일 내가 하늘과 땅의 규례들을 정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성결(聖潔)을 보존시키는 일을 하였다.

 

(28:38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게 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모든 거룩한 예물로 신성하게 하는 거룩한 것들의 죄악을 아론으로 하여금 감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항상 있으므로 그 예물들이 주께 받아들여지리라;

 

18:1 주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조상들의 가문은 너와 더불어 성소의 죄악을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와 함께 너희 제사장 직분의 죄악을 담당할 것이니라).

 

한편 '자비하고 충성된'에서 '자비'가 먼저 나온 것은 강조의 의미로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이루셨음을 나타내며

'충성'은 하나님께 대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충성을 시사한다.

 

 

 

[2:18] 그가 이 일에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와 주실 수 있느니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 예수께서는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들이 당하는 고통과 유혹을 맛보셨으며,

 

(4:1-11 그때에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려고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시니라.

2) 사십 일 낮과 밤을 금식하신 후, 시장하게 되셨을 때에

3) 그 시험하는 자가 그에게 나아와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들에게 명하여 빵이 되게 하라."고 하더라.

4) 그러나 주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5) 그러자 마귀는 주를 거룩한 도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내려 보라. 기록되었으되 '그 분께서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서 어느 때라도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고 하였느니라." 하더라.

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또 기록되었으되 '너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8) 마귀는 다시 주를 아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들과 그것들의 영광을 주께 보여 주며

9) 말하기를 "네가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너에게 주리라."고 하니

1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여기서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너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 분만을 섬기라.'고 하였느니라." 하시니

11) 마귀가 주를 떠나고, 보라, 천사들이 와서 주를 섬기니라;

 

4:1-13 예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요단 강에서 돌아오신 후 성령으로 인도되어 광야로 가셔서

2) 사십 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기간 동안에는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그 날 수가 끝난 후에는 시장하게 되시니라.

3) 마귀가 주께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에게 명하여 빵이 되게 하라."고 하니

4)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시더라.

5) 그러자 마귀가 주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잠깐 동안에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보여 주더라.

6) 그리고 마귀가 주께 말하기를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것들의 영광을 너에게 주리라. 그것이 나에게 넘겨졌으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느니라.

7) 그러므로 만일 네가 내게 경배하면 모든 것이 너의 것이 되리라."고 하니

8)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너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 분만을 섬기라.'고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9) 그러자 그가 주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주께 말하기를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여기서 뛰어내려 보라.

10) 기록되기를 '그가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시어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11) 또 그들의 손으로 너를 받들어 어느 때라도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고 하였느니라." 하니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셨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고 하시니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마친 후 잠시 동안 주를 떠나가더라)

 

그분의 시험과 고난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4:15 주께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모든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더라;

 

5:2 그때 호숫가에 세워 둔 배 두 척을 보시니 어부들이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는지라,

 

7-10 그때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을 손짓으로 불러와서 도와달라고 하여 그들이 와서 양쪽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들이 가라앉기 시작하더라.

8) 이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가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리어 말하기를 "나를 떠나가소서. 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더라.

9) 이는 자기들이 잡은 고기를 보고 자신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놀라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더라.

10) 시몬과 동료인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마찬가지더라. 그 때에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들을 낚게 될 것이라."고 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모든 고난과 시험은 앞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에 대한 '충성된 대제사장'임을 입증하는 증거이며,

 

그리스도께서 친히 고통받는 사람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다는 사실은

앞절에서 제시된 '자비로운 대제사장'이 되심을 입증하는 증거이다(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