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의 사역
성 경: [사 42:1-9]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사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 - 이 두 용어는 동격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전자는 구약에서 아브라함이나 모세 혹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로 부터 부여된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걸출한 활약을 보였던 인물들에게 자주 사용되었다.
본절에서 이 인물은 하나님의 신을 받은 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본문의 문맥상 이상적인 통치자 곧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11:2에서는 다윗 계통의 왕에게 동일한 신이 임할 것을 예언한 바 있다.
(11:2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의 두려움의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
[사 42: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 '외치지 아니하며'와 마찬가지로, 본 구절 역시 격렬한 분쟁 중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크고 분에 찬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본절이 묘사하고 있는 왕은 칼과 창으로 신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고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했던 고레스와는 그 모습이 전혀 다르다.
즉, 이분의 통치 방식은 세속적인 정복자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사 42: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 여기 '갈대'는 늪이나 습기가 많은 지대에서 서식하는 연약한 줄기 따위를 의미하는데, '상한 갈대'란 바람 때문에 그 연약한 줄기가 상처를 입지만 꺾이거나 뽑히지는 않는 갈대를 말한다.
본문은 마치 상한 갈대와 같이 연약하고 결점 투성이의 인생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은혜로써 강하게 세워주시는 메시야의 구원 사역을 말한다.
[사 42: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 문자적인 뜻은 '섬들이 그의 법을 고대한다'인데, 이것은 1, 2절이 묘사한 분의 의로운 통치를, 열방을 포함한 온 세계가 바란다는 뜻이다.
[사 42: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神)을 주시는 –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는 뜻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온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 그의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특정 인간을 취하여 중개자로 삼으신다는 점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6절 이하에는 하나님의 종의 사역에 대해 다룬다.
결국, 본절은 창조주이시고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그 종의 사역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사 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 백성의 언약 - 종의 사역 중 하나가 소개된다.
그 내용은, 종의 사역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짐을 암시한다.
즉, 메시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을 회복, 완성시키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역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의미를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이 새 언약은 혈통적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 곧 영적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다.
▶ 이방의 빛 - 본 사역은 종의 구원이 땅 끝까지 이르게 하는 것, 곧 열방에 생명의 축복을 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그를 찾아온 헬라인(이방인)과 나눈 대화 속에서 밝혀졌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초대 교회 당시 그리스도의 이러한 취지를 가장 활발하게 받든 인물은 바로 바울 사도였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갈 2:8).
[사 42: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 - 종의 사역을 설명하는 본절에서 등장하는 이 용어들은 종의 사역의 내용을 깨닫게 한다.
얼핏보면, 이 용어들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된 상태에 대한 암시로 생각된다.
특히 '갇힌 자', '흑암에 처한 자'는 바벨론에 포로된 상태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생각될 수 있겠다.
그러나 '소경의 눈'은 포로 상태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이 표현은 본서에서 영적 무지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43장).
본 문의 종의 사역도 영적 무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문맥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메시야의 놀라운 계시로 말미암아 흑암과도 같이 캄캄한 무지 상태로부터 찬란한 구원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눅 4:18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며 포로 된 자들에게 구출을, 눈먼 자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자유하게 하며).
[사 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 '여호와'라는 칭호의 뜻은, 하나님이 친히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바와 같이
'스스로 있는 자'로서(출 3:14),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주권자이심과 함께,
(창 21:33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작은 숲을 심고 거기서 주 곧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으며;
시 90:2 산들이 생기기 전 혹은 주께서 땅과 세상을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139:7-12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리이까? 혹은 내가 주의 앞을 떠나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주께서 거기 계시오며 내가 지옥에 내 침상을 펼지라도, 보소서, 주께서 거기 계시나이다.
9) 내가 아침의 날개들을 취하여 바다 맨 끝 지역들에 가서 거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 내가 말하기를, 어둠이 반드시 나를 덮으리라, 할지라도 밤조차 나를 두르는 빛이 되리이다.
12) 참으로 어둠이 주를 떠나 숨지 못하며 밤이 낮처럼 빛을 내나니 주께는 어둠과 빛이 다 같으니이다)
언약의 주체이심을 강조하는 이름이다.
(출 3:7-15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의 고난을 분명히 보았고 또 그들이 그들의 작업 감독들로 인하여 부르짖는 것을 들었나니 내가 그들의 고통을 아노라.
8) 내가 그들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데리고 올라와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처소로 이끌려고 내려왔노라.
9) 그러므로 이제, 보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이르렀고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며 학대하는 것도 내가 보았나니
10) 그런즉 이제 오라.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보내리니 이로써 네가 내 백성 곧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가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파라오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가리이까? 하매
12)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네가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간 뒤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곧 내가 너를 보낸 증표가 되리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보소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면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매
1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스스로 계신 이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
15) 하나님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너희 조상들의 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 이것은 영원토록 나의 이름이요, 이것은 모든 세대에 이르는 나의 기념물이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스스로 나타내시는 까닭은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만 찬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사 42: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 - 계속해서 과거사와 미래사가 제시되는데, 이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며 참 신이심을 보이는 증거이다.
한편 '전에 예언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때까지 전달되어졌던 모든 예언을 가리키며,
그중에서도 특히 39:5-7의 예언을 암시한다.
(39:5-7 그때에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주의 말씀을 들으소서.
6)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것과 네 조상들이 이 날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빌론으로 옮겨지고 하나도 남지 아니하리라.
7) 또 그들이 네게서 나올 네 아들들 곧 네가 낳을 아들들 중에서 빼앗아 가리니 그들이 바빌론 왕의 궁궐에서 내시가 되리라, 하시나이다, 하매)
그렇다면 '새 일'이란 1차적으로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을 가리키며,
더 나아가서는 메시야 시대의 위대한 영적 해방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