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0일 수요일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제자들을 위한 기도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간구]

 

성 경: [17:20-22]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이 사람들만 - 이 말은 단순히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사람들로서 예수의 열 한 제자들을 가리킨다.

 

본장의 기도가 만찬에서 행해진 것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18:1을 볼 때 만찬에서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18: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왜냐하면 공관복음서는 예수가 만찬 후

곧바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희 말을 인하여 - ''(로고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자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메시지 전체를 드러내는

복음적인 가르침을 의미한다(Bernard).

 

이런 의미에서 제자들에 의하여 전달된 메시지 역시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본질적으로 '진리'이다.

 

제자들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원문상 진리 '안에서'

 

(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

성도들의 믿음은 제자들의 말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제자들의 믿음이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것에서 기인하듯이

그들의 보내심을 받음(18)을 통하여 믿음을 가진 새로운 신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내 교회를 세우리니'(16:18)라고 말씀하실 때

제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질 지상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이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 전파자의 사명을 강조하기 위해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10:14)라고 진술했다.

 

이처럼 교회의 기초(基礎)는 말씀이며, 이 말씀이 전파될 때 교회는 형성된다.

 

믿는 사람들 - '믿는 사람들'은 현재 분사형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미래적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L. Morris, Turner, Bernard)

 

미래적 의미를 현재 분사로 나타내는 용법은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어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므로

이 말은 '믿게 될 자들'로 번역하는 것이 더 분명한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많은 영역 성경들은 미래형으로 번역했다.

(KJV, Scoffield Bible, Jerusalem Bible, MLB, NIV, LB).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 본 구절에는 '하나'가 이끄는 세 가지의 목적절이 나온다.

 

이 세 목적절은 모두 20절의 '내가 비옵는 것은'에 연결된다.

 

본문은 그중 첫 번째 '하나'절로서

성도 공동체의 연합을 성부와 성자의 일체성에 근거하여 간구하는 내용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어 그의 일을 하시며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또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으므로 두 분은 하나로 존재하고 일하신다.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듯이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저들의 증거를 통해 얻게 될 사람들,

즉 교회 역시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신다.(C.K. Barrett).

 

그러나 하나 됨이 의미가

제도적이거나 조직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주체성을 상실한 채

기계적으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존재 양식에 있어서

각각 독립적이나 그 본질에 있어서는 완전한 일체를 이루듯이

교회내의 각 지체들도 나름대로의 다양한 특성을 지니는 가운데

통일성(統一性)을 띠는 것이다.

 

(15:1-8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고전 12:12-13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그러나 성도들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는 질적 측면에서 엄연히 구분된다.

 

우리 안에 있게 하사 - 이는 두 번째 ''가 이끄는 목적절이다.

 

예수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사실을 전제하고서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로 묶어 '우리 안에'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역으로 아버지와 아들도 우리들 안에 와서

거처를 삼으시고 함께 하신다는 점을 시사한다.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하나'가 이끄는

세번째 목적절은 앞의 두 목적절의 결과로 등장한다.

 

성도 공동체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일체를 이룸으로써

세상이 이를 통해 믿음을 갖게 되기를 간구하시는 내용이다.

 

물론 이는 세상 전체가 믿음을 갖게 되리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15: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다만 세상 사람들 중에는 지금은 비록 불신 가운데 있지만

장차 믿음과 구원에 이르게 될 자들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세상을 감동시키는 성도들의 하나 됨은

성도들의 배후에서 하나가 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능력과 모든 은혜에 의한 것이다.

 

결국 성도들은 예수와 하나님 안에 거하는

풍성한 은혜와 연합(聯合)한 증거들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게 주신 영광을 - 예수의 영광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했던 영광과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지상의 모든 사역을 다 마친 후에 아버지와 함께 누릴 영광들을 모두 포함한다.

 

특히 예수는 마지막 설교와

 

* 참조 : (16:1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대제사장적 기도 속에서 십자가와 영광을 분명하게 연결시키셨다.

따라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영광은

아들이 행하는 모든 사역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십자가를 통해 그 영광의 역설적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 제자들 역시 아들의 영광을 소유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이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영광이요

영원히 사랑 가운데 거하는 축복이다.

 

(딤후 2: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아들의 영광이 아버지의 모든 뜻에 순종하는 것 속에서 나타났듯이

제자들의 영광도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가운데서 나타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각기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뒤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셨다.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믿음 안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함으로

순종과 겸손과 수난을 통하여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성도들의 십자가이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형벌이 아니라

제자 됨의 사명과 하나님의 자녀 됨의 존귀함을 드러내는 것이다(Barclay).

 

따라서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획득한 영광을

세상 가운데서 실제적으로 나타낼 때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그곳에서 영원한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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