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에게 임한 계시
성 경: [삼상 9:16-17]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 보았노라 하시더니
17)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 하시니라.
[삼상 9:16]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 보았노라 하시더니
▶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 이것은 결국 사울의 아비가
암나귀를 잃어버린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3절 사울의 아비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환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즉 하나님께서는
때를 맞춰 사울의 아비 기스에게는 귀중한 암나귀를 잃게 하였고,
그에 따라 그 아들 사울로 하여금 암나귀를 찾아 나서도록 하게 하심으로써,
결국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도록
배후에서 주권적으로 섭리하신 것이다.
▶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 기름 부음의 의식(儀式)은
왕이나 제사장 혹은 선지자 등을 거룩히 구별하여 임직할 때 행하는 상징적 의식이다.
(출 29:7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
왕상 1:39 제사장 사독이 성막 가운데서 기름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에 양각을 불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 왕 만세를 부르니라;
19: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고대 중근동의 풍습에 따르면,
기름 부음의 행위는 무엇을 거룩히 구별할 때 베푸는 상징적 행위였다.
(창 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31:13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35:14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출 29:36 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하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며 또 단을 위하여 깨끗케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라;
40:10 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레 8:10 모세가 관유를 취하여 장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민 7:1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필하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그 모든 기구와 단과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
10 단에 기름을 바르던 날에 족장들이 단의 봉헌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그 예물을 단 앞에 드리니라).
즉 이같은 의식을 통하여 고대 중근동 사람들은
사람이나 물건을 세속적인 용도로부터 구별하려고 했었다.
한편, 고대 아마르나 서신(Amarna Letters)은 B.C. 14세기에
수리아나 가나안 지역 등지에서
왕이 기름 부음을 받았던 사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사실은 이스라엘의 기름 부음 의식이
그 주변 국가들의 그것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음을 보여 준다.
(10: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
그러나 이스라엘에서의 기름 부음 의식은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성이 반영되고, 하나님의 영이 개입되는 독특성을 지닌다.
▶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 여기서 '지도자'(나기드)는 보통
'족장', '두령'이란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대상 12:27 아론의 집 족장 여호야다와 그와 함께한 자가 삼천칠백 명이요;
대하 11:22 마아가의 아들 아비야를 세워 장자를 삼아 형제 중에 머리가 되게 하였으니 이는 저로 왕이 되게 하고자 함이라;
시 76:12 저가 방백들의 심령을 꺾으시리니 저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따라서 여기의 '지도자'는 왕과는 다르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왕'(멜렉)이라는 단어는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사용됐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울에 대하여 굳이 '지도자'(Captin, KJV; leader, NIV)라는
단어를 적용하신 것은 열방과 같은 왕을 기뻐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본심이 반영된 것이다.
(8:7-8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방백 정도로 세우셨지만, 나중에 사울은
백성들의 인본주의적 요구에 부응하여 왕이 되었던 것이다. (Abrecht Alt).
한편 '삼으라'는 말은 히브리 원문에 별도로 나와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개역 성경이 그같이 번역을 한 이유는
앞의 '기름을 부어'라는 말 자체 속에 '삼다'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신 직접적 목적이다.
사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압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즉 사무엘의 미스바 전투 대승리 이후,
(7:7-11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8)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블레셋으로부터 잃어버린 입지(立地)를 많이 회복하기는 하였지만,
(7:14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블레셋의 계속되는 위협과 압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상태에 있었다.
따라서 그로 인해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사 베냐민 지파의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아 군사적 목적을 수행토록 하셨던 것이다.
특별히 여기서 그러한 목적을 수행할 인물이
베냐민 지파 출신이라는 점은 적절하다.
(9:1-2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2)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
첫째,
그 지파의 혈통적 성격상 호전적(好戰的)이었고
(창 49:27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삿 20:12-16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찜이뇨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우리로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4) 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15) 그 때에 성읍들에서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이요 그 외에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가 칠백인데
16)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둘째,
그 지파의 지리적 위치상 블레셋과의 충돌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Smith, Fay).
▶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 '부르짖음'(차아카)은
위급한 상황에서 구원받기 위하여 극렬히 간구하는 호소를 뜻한다.
(창 18: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19:13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출 3: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느 5:1 때에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
그리고 '상달하였으므로'(바아)는 '오다', '들어오다'의 의미이다.
따라서 이것은 결국 백성들의 호소가 지극히 간절하여
그 부르짖는 절규가 하늘에 사무쳤음을 보여 주는 단어이다.
(5: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출 3: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 - '돌아보다'(라아)는
'자세히 응시하다'(gaze), '주의깊게 살피다'(heed)란 뜻이다.
(창 6: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출 5:21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왕하 7:13 그 신복 중 하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필을 취하고 사람을 보내어 정탐하게 하소서 이 말들이 성중에 남아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한편 성경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고통을 돌아보신 후에는
반드시 그들을 구원키 위한 구체적 행동이 뒤따랐음을 보여 준다.
(출 3: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4:31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신 26: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왕하 14:26-27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27)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삼상 9:17]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 하시니라.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 여기서 '이르다'(아나)란 말을 직역하면
'대답하다'(answer) 또는 '응답하다'(respond)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사무엘의 내적 기도와 물음에 대해
하나님께서 신령한 계시로써 응답해 주셨다는 사실을 암시한다(Fay, Goslinga, Keil).
▶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 - '통할하다'(아차르)는
'닫다', '제한하다', '소집하다'란 뜻으로서,
(시107:29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장차 사울의 통치 방식을 부정적으로 예시해 주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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