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일 일요일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히스기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성 경: [37:1-7]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2)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를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에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5)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고하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들은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7) 보라 내가 신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풍성을 듣고 그 고토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 고토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37:1-2]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2)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를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 본장은 그 내용상 앞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신들의 비통한 보고에 접한 히스기야 왕의 반응은 4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사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역시 옷을 찢었다. 이는 극심한 슬픔과 분노를 표시하는 관습적인 행위이다.

 

(삼하 3:31 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던 온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아브넬 앞에서 애곡하라, 하고 다윗 왕이 친히 관을 따라가니라;

 

9:3 내가 이 일을 듣고는 내 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놀란 채 앉았더니;

 

1:20 이에 욥이 일어나 자기의 겉옷을 찢으며 머리를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36:24 그러나 이 모든 말을 들은 왕과 왕의 신하들 가운데 아무도 두려워하거나 자기 옷을 찢지 아니하였더라).

 

둘째, 더 나아가 그는 '굵은 베' '삼베옷'을 입었다. '삼베옷'은 재난 때에 입는 옷이며 참회의 때에 입는 옷이기도 하다.

 

(왕상 20:31-32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제 보소서, 우리가 들었는데 이스라엘의 집 왕들은 긍휼이 많은 왕들이라 하더이다. 원하건대 우리가 굵은 베를 허리에 두르고 밧줄을 머리에 묶고 이스라엘 왕에게로 나아가게 하소서.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려 주리이다, 하고는

32) 이에 그들이 굵은 베를 허리에 두르고 밧줄을 머리에 묶고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말하기를, 원하건대 나를 살려 주옵소서, 하나이다, 하니 아합이 이르되, 그가 아직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니라, 하매;

 

21:27 아합이 그 말씀들을 들을 때에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몸에 두르며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눕고는 천천히 가니라;

 

9:1 이제 이 달 이십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흙을 뒤집어쓰며;

 

9:3 또 내가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쓴 채 주 하나님을 향하여 내 얼굴을 고정하고 기도와 간구로 구하니라;

 

1:13 제사장들아, 너희는 띠를 동여매고 애곡할지어다. 제단을 섬기는 자들아, 너희는 울부짖을지어다. 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옷을 입고 밤새도록 누울지어다. 너희가 음식 헌물과 음료 헌물을 너희 하나님의 집에서 드리지 못하게 되었느니라;

 

3:6 말이 니느웨 왕에게 이르매 그가 자기 왕좌에서 일어나 자기 몸에서 옷을 벗어 내려놓고는 굵은 베옷으로 몸을 덮고 재 속에 앉았더라;

 

11:21 고라신아, 네게 화가 있을지어다! 벳새다야, 네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 안에서 행한 능력 있는 일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오래 전에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속에서 회개하였으리라).

 

셋째, 그는 기도하러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 이후, 그곳은 공적인 중보 기도를 드리는 장소로, 하나님이 그 백성의 기도를 드리는 장소로, 하나님이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는 장소로 인정되었다.

 

(왕상 8:29 주께서 전에, 내 이름이 거기에 있으리라, 하고 말씀하신 곳 즉 이 집을 향해 밤낮으로 주의 눈을 여시고 주의 종이 이곳을 향해 드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옵소서,

 

33-34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죄를 지어 원수 앞에서 패한 뒤 주께로 다시 돌아와 주의 이름을 시인하고 이 집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를 드리거든

34) 그때에 주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며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그들이 다시 돌아오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그는 엘리아김과 셉나, 그리고 제사장 중 어른들을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냈다.

 

이는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그 위로하심을 듣기 위한 것이다.

당시에 이미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해설, 전달하는 자로 높임 받고 있었으며 왕으로부터도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왕하 22:14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대언자 훌다에게로 나아갔는데 그녀는 할하스의 손자이자 디그바의 아들로서 예복을 관리하는 자인 살룸의 아내더라. (이제 그녀는 예루살렘에서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구역에 거하였더라.) 그들이 그녀와 대화를 나누니라;

 

37:3 시드기야 왕이 셀레미야의 아들 여후갈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대언자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제 우리를 위하여 주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니라)

 

그러나 왕상 22:9의 경우는 정반대되는 사례이다(Alexander).

 

(왕상 22:9 이에 이스라엘 왕이 관리 하나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속히 여기로 데려오라, 하니라)

 

재난의 때를 당하여 히스기야 왕이 보여준 이러한 행위는 성도가 이 세상에서 원통한 일을 당할 때 본받아 마땅한 아름다운 신앙의 본으로 남아 있다.

 

 

[37: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 사신들이 전한 히스기야의 말을 통해서 그가 현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환난'(צָרָה 차라)은 외부적인 괴로움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복합적인 영적인 짓눌림까지도 함의하는 말이다(Vitringa).

 

이 단어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참회의 시편에 나온다.

 

(20:1 고난의 날에 주께서 네 말을 들으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보호하시며;

 

50:15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77:2 내 고난의 날에 내가 주를 찾았나니 나의 아픈 상처가 밤에 생기고 멈추지 아니하매 내 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86:7 나의 고난의 날에 내가 주를 부르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책벌'(תּוֹכֵחָה 토케하)은 호 5:9'견책하는 날'과 동일하게 쓰였다.

'환난''책벌'은 앗수르를 통해 유다에게 주어진 것이긴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인 것이다.

 

'능욕'(נְאָצָה 네아차)'조롱하다', '멸시하다'는 뜻의 '나아츠'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앗수르인들이 '훼방한다'(신성 모독)는 의미이다(J. Watts).

 

(4랍사게의 주인인 아시리아 왕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려고 그를 보내었은즉 주 당신의 하나님께서 그의 말들을 들으시고 주 당신의 하나님께서 들으신 그 말들을 꾸짖으실 터이니 그러므로 당신은 남아 있는 남은 자들을 위하여 당신의 기도를 올리소서, 하시나이다, 하니라)

 

 

[37: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에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 본문은 '혹시', '아마도'(울라)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말을 듣지 못하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있는 히스기야 자신의 겸허한 자세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의 경건함은 그가 나라의 생존보다도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힘 받지 않으며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이 주어지기만을 우선적으로 간구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Oswalt).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모독은 그들이 하나님을 이방 신들과 혼동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대하 32:19 그들이 땅의 백성들의 신들 곧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들을 비방하듯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비방하였더라).

 

따라서 히스기야는 생명없고 무기력한 우상들과 대조, 구별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적절하게 '사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른다.(Alexander)

 

(5:26 모든 육체 가운데 누가 우리처럼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남았나이까?;

 

3:10 또 이르되,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실수 없이 쫓아내실 줄을 너희가 이 일로 알리라;

 

42:2 내 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기에 목이 타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보이리요?;

 

84:2 내 혼이 주의 뜰을 사모하여 참으로 쇠약하게 되었사오니 나의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구하며 부르짖나이다;

 

5:2 비록 그들이 말로는, 주께서 살아 계신다, 할지라도 참으로 그들은 거짓으로 맹세하느니라;

 

10:10 그러나 주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니 그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존하는 왕이시로다. 그분의 진노에 땅이 떨고 민족들이 능히 그분의 격노를 견디지 못하리로다;

 

23:36 다시는 주의 엄중한 부담을 언급하지 말라.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곧 만군의 주 우리 하나님의 말씀들을 왜곡하였으므로 각 사람의 말이 그에게 엄중한 부담이 되리라;

 

6:26 내가 한 칙령을 내리노니 내 왕국의 모든 통치 하에 있는 사람들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라. 그분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실 분이시며 그분의 왕국은 멸망하지 아니하고 그분의 통치는 끝에까지 이르리로다;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매;

 

26:63 예수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응답하여 그분께 이르되, 내가 너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매).

 

 

[37:5]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 본문은 히스기야 왕의 전갈이 끝나고 이사야 선지자의 답신이 곧 시작됨을 알려주는 구실을 한다.

 

 

[37: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고하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들은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 이사야의 메시지는 '두려워 말라'는 강한 권고로부터 시작된다. 전에 아하스 왕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떨릴 때도 선지자는 이와 비슷한 권고를 해준 바 있다.

 

(7:4 그에게 이르기를, 조심하고 조용히 하라. 시리아와 함께한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의 맹렬한 진노로 인하여 또 이같이 연기를 내며 불타는 이 두 개의 나뭇조각 꽁지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라).

 

여기서 '(앗수르의) 종들'로 번역된 단어는 앞절의 '(히스기야) 신하들'과 같은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어린 것들', '풋내기들'(נַעֲרֵי 나아레)을 뜻하며, 경멸적인 어감을 나타내기 위해 선지자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선택된 말이다.

 

 

[37:7] 보라 내가 신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풍성을 듣고 그 고토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 고토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보라 내가 신()을 그의 속에 두리니 - 앞으로 전개될 사태의 주도권을 쥐고 계시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니, 그는 앗수르인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불려일으켜 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부터 철수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רוּחַ 루아흐)'악인들을 멀리 날려버리는 강한 바람'(Calvin)이나 '악인들을 파괴하는 천사'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좌우하는 경향성, 태도, 혹은 기질'을 가리킨다. (Alexander, Oswalt, Leupold).

 

(19:14 주께서 그것의 한가운데서 비뚤어진 영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이집트로 하여금 그것의 모든 일에서 잘못하게 하되 마치 술 취한 자가 자기의 토한 것 가운데서 비틀거리는 것 같게 하였으니;

 

5:14 그에게 질투의 영이 임하여 그가 자기 아내를 질투하는데 그녀가 더러워졌거나 혹은 그에게 질투의 영이 임하여 그가 자기 아내를 질투하는데 그녀가 더러워지지 아니한 경우;

 

4:12 내 백성이 자기들의 나무토막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들의 막대기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나니 이는 행음의 영이 그들로 하여금 잘못을 범하게 하므로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 밑에서 떠나 음행의 길로 갔기 때문이니라;

 

13:2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들을 그 땅에서 끊어 그것들이 기억되지 못하게 하며 또 대언자들과 부정한 영을 그 땅에서 사라지게 하리라;

 

딤후 1: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주지 아니하시고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을 주셨느니라)

 

그가 풍성(風聲)을 듣고 - 앗수르 군대의 퇴각은 그들이 듣게 될 '풍성' '소문'과 깊은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에디오피아 왕 디르하가 앗수르를 치기 위해 나아온다는 소문을 가리킨다(Delitzsch, Lange).

 

(9절 이하, 사람들이 이디오피아 왕 디르하가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그가 들었는데, 그가 너와 전쟁을 하려고 나왔다, 하므로 그가 그 말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사자들을 보내며 이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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