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7일 토요일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네게 이룰 증거로 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

 은총을 입은 히스기야 2

 

성 경: [38:5-8]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6)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7)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네게 이룰 증거로 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

8) 보라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

 

 

[38:5]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선고할 때는 여호와의 이름만 간단히 언급되었다.

 

(1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대언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니라).

 

그러나 위로를 제시할 때, 선지자는 여호와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이라는 독특한 명칭으로 부른다.

 

이는 히스기야에게 베풀어진 여호와의 은혜와 자비가 그 조상 다윗과 맺으신 언약에 기인한 것이며, 약속을 지키시는 여호와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Calvin).

 

'다윗'은 단순한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왕국의 연속성을 약속받은 인물로서 언급되고 있다.

 

(삼하 7:12-16 네 날들이 차서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배 속에서 나올 자 곧 네 뒤를 이을 네 씨를 세우고 그의 왕국을 굳게 세우리니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해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왕국의 왕좌를 영원토록 굳게 세우리라.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만일 그가 불법을 행하면 내가 사람들의 막대기와 사람들의 자녀들의 채찍으로 그에게 벌을 주리라.

15) 그러나 내가 네 앞에서 물리친 사울에게서 내 긍휼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 그것을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왕국이 네 앞에서 영원히 굳게 서고 네 왕좌가 영원히 굳게 서리라, 하라).

 

물론 이 영속성이 다윗 자신이 아니라 그의 후손과 관련된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 '듣고, 보았다'는 말은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참되고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셨다는 말이다.

 

여호와는 의인의 입에서 나오는 진실한 기도를 들으시며, 특히 의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귀하게 보신다.

 

 

[38:6]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

 

히스기야에게 주어진 약속은 유다에 이미 진주해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 군대의 위협으로부터의 일시적인 보호뿐만 아니라(Hitzig, Hendewerk, Knobel).

 

동시에 일단 퇴각한 후에도 계속해서 있을 수 있는 추가적인 모든 위협으로부터의 완전한 보호를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Gesenius, Rosenmtiller).

 

이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었으니 앗수르는 결코 예루살렘 성을 정복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38:7]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네게 이룰 증거로 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 - 개역 성경은 1인칭 문장으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3인칭으로 표현되어 있다 :

 

'그리고 이것이 여호와께로부터 너에게 (주어질) 징조니, 그가 말씀하신 이 말씀을 여호와께서 이루실 것이다'.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일의 순서상 이사야의 말이 주어지기 전에 징조를 구하는 히스기야의 적극적인 요청이 선행되었을 것이다.

 

(22히스기야도 이르기를, 내가 주의 집으로 올라갈 표적이 무엇이냐? 하였더라;

 

왕하 20: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주께서 나를 낫게 하사 내가 셋째 날에 주의 집에 올라가게 하실 표적이 무엇이리이까? 하니).

 

이 점에서 히스기야의 행동은 징조 구하기를 거부한 아하스의 불신행위와 대조를 이룬다. (Skinner, Oswalt).

 

(7: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도 아니하겠으며 주를 시험하지도 아니하겠나이다, 하매)

 

 

[38:8] 보라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 -

 

'아하스의 일영표'는 히스기야의 선왕(先王) 아하스가 세운 해시계를 말한다.

 

헤로도투스(Herodotus)의 기록에 의하면, 일영표는 바벨론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다(herod. 109).

 

이것이 앗수르에 의해 전달되었을 것이고, 아하스가 다메섹에 있는 디글랏빌레셀을 방문했을 때 이에 대한 지식을 도입한 듯하다.

 

(왕하 16:10 아하스 왕이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을 만나려고 다마스커스에 갔다가 다마스커스에 있던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모양과 양식을 그것을 만드는 모든 기술과 함께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더니).

 

'일영표'는 문자적으로 '계단들'(מַעֲלָה 마알라)이니, 해가 떠오를 때와 질 때를 기준으로 해서 계단에 드리워진 그늘을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수단을 가리키는 것이다.

 

왕하 20:9, 10의 병행구에 따르면,

 

(왕하 20:9-10 이사야가 이르되, 주께서 친히 말씀하신 일을 하실 것에 대하여 왕이 주에게서 이 표적을 받으리이다. 그림자가 앞으로 십 도 나아가리이까, 혹은 뒤로 십 도 물러가리이까? 하매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 도 내려가는 것은 쉬운 일이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그림자가 뒤로 십 도 물러가게 하소서, 하거늘)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에게 그림자가 앞으로 10도 나아가는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도록 제안했으며, 왕은 좀 더 어렵게 보이는 후자를 선택하였다.

 

이에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 히찌히(Hitizig)는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간 현상을 히스기야의 죽음이 뒤로 연기된 것과 평행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10'이라는 숫자 대신에 '15'라는 숫자가 사용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칼빈(Calvin), '당시 해시계는 12눈금 밖에 없었으므로, 그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숫자상의 차이 때문에 꺼림칙해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해시계의 눈금의 정확한 수치는 차치하고라도, 해시계 자체에 대해서 학자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더구나 이 징조는 히스기야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진 '이적적'인 것이다.

 

(대하 32:31 그러나 바빌론의 통치자들이 사신들을 히스기야에게 보내어 그 땅에서 이루어진 이적에 관하여 물은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마음속에 있던 것을 다 알고자 하사 그를 시험하시려고 그를 떠나셨더라).

 

그럴진대, 이러한 현상이 히스기야의 눈앞에서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혹자는 이것을 부분적인 일식 현상으로 해석한다(Bosanquet).

그러나 이로써는 그림자가 뒤로 물러감을 설명하지 못한다.

 

가장 적절한 해석은 이것을 시각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서 빛의 굴절 현상으로 인해 오후에 바닥에 드리워졌던 그림자가 '이적적으로' 위로 옮겨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Delitzsch, Lange, Oswalt).

 

본문에서도 '뒤로 물러간 것'은 태양이 아니라 그 그림자였다고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태양의 진행이 한시적으로 거꾸로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물리학적인 견지에서 이 지구상에 엄청난 문제점들이 야기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성은 어떠한 이유로도 제한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통상적으로 자신이 설정해 두신 이 세상의 법칙들과 조화되는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듯하다.

 

마침 신기루가 팔레스틴 지역에서 이상한 현상을 나타내듯이, 그 징조는 빛의 굴절 작용으로 생겨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Leupold).

 

그러나 본문 자체가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추론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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