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025년 1월 5일 일요일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의 은사
성 경: [고전 12:1-1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전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 '∼에 대하여'는 고린도 교인들의 서면(書面) 질문에 답하는 말이다.
이는 이미 독자들이 제기된 문제점에 관하여 바울이 알고 있음을 전제한다.
여기서 바울이 '신령한 것'이라고 한 말에 대하여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
'신령한 것'의 헬라어 '프뉴마티콘'이란 단어의 성(性)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1) 혹자는 14:37에서 '프뉴마티콘'이 '신령한 자'(에 프뉴마티코스)로 사용되기 때문에 본문의 '프뉴마티콘' 역시 남성 명사로서 '신령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본다. (Hofmann, Edwards,Holsten, Heinrici).
(2) 혹자는 14:1에서와 같이 '신령한 것'(타 프뉴마티카)이 중성 명사로서 '은사'를 가리킨다고 본다. (Calvin, Luther, Meyer, Godet, Lenski).
본문의 '신령한 것'에 대한 성(性)이 불확실하며, 또한 (1),(2)의 내용이 서로 일맥상통하므로 어느 한쪽으로 기울 필요는 없으나, 본문의 문맥과 주제상 '신령한 것'의 의미는 '은사'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 원치 아니하노니 - 바울의 희망을 분명히 천명(闡明)하면서도 그 대상에 대하여는 친근한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감정적인 문제로 비화될 여지를 최소화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성령의 은사의 목적과 그 기원에 대하여, 그리고 은사의 다양성에 대하여 무지한 결과 초래할 수 있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고전 12: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 본절의 '이방인'은 '이교도'(Heathen)를 의미한다.
원래 고린도 교인들의 대부분은 이방인 출신으로 이방의 우상 종교를 좇아갔던 과거 상태를 상기시켜 줌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어있는 현재 상태와 대조시키고 있다.
바울은 성령의 현현(顯現) 이전과 이후를 이방인이란 단어로 분명히 구별 짓고 있다.
▶ 말 못하는 우상 - 본 구절은 이방 종교의 허구성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표현으로 우상은 생명이 없어서 사람의 요구에 반응할 수도 없고,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수도 없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과거에 섬겼던 우상의 본질을 말함으로써, 그들이 이런 헛된 우상을 섬긴 것은 우매함과 세속적 탐심의 결과이고, 그 상태는 비극적인 것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 '끄는 그대로'는 코이네 헬라어의 관용어로서 '끌림을 당할 때마다'라고 번역된다.
그리고 '끌려 갔느니라' - 이는 과거의 고린도 교인들이 헛된 우상의 요구대로 이끌려 자기의 판단과 결정과는 무관하게 비인격적인 숭배를 하였음을 보여준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저주할 자'의 헬라어 '아나데마'는 '신에게 드려진 것',
(눅 21: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혹은 '신의 저주아래 놓인 것' 등의 의미이다.
본래 이 단어는 신성한 장소에 저축된 것을 의미하였다가 신에게 바쳐진 것을 뜻하게 되었고, 바쳐진 것은 바치는 사람에게는 완전히 잃어진 것이므로 '멸망된 것' 곧 '저주받은 것'의 뜻이 되었다.
바울은 저주의 대상에게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롬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본절에서 바울은 '저주받은 예수'(아나데마 예수스)와 '주 예수'(퀴리오스 예수스)를 대비시키고 있다.
즉 2절에서 이교도에 대하여 언급하고 나서 본절에서는 유대교적 배경을 가지고 예수를 저주받은 자로 인식하는 부류들과, 기독교적 그리스도관을 가지고 예수를 주 예수로 고백하는 자들을 비교하여 핵심에 접근하고 있다.
본절에서 '그리스도'라 하지 않고 '예수'라 지칭하고 있는 이유는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인간 예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신 후 인류 역사에 종속되어 자발적인 삶을 영위하시다가, 그의 택하신 백성을 구속하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한편 예수를 '주'시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성령으로'(엔 프뉴마티 하기오)라고 정한 것은 고후 11:3, 4에서 제시한 것처럼,
(고후 11:3-4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다른 예수', '다른 영' 그리고 '다른 복음'으로 미혹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른 예수'란 바울의 증거에 위배되는 것으로 바울은 예수를 참 하나님(Vere Deus)인 동시에 참 인간(Vere Homo)으로서 이해하였다.
본장 10절에서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를 언급한 것도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서 다른 신앙 고백 내용을 가진 '다른 영' 때문일 것이다.
[고전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 은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마톤'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 '은혜의 선물'을 뜻한다. 이 단어는 바울 서신에 16회 나온다.
바울은 이 단어를 특별한 사람들만 받을 수 있는 어떤 신기하고 특별한 은사라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 여러 가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이레세이스'는 원래 '분배' 혹은 '분할'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를 여러 갈래 나눈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본장 11절에서는 분사형 '디아이룬'으로 사용되어 '나눠주다'라는 의미로 번역됨으로써 은사의 '다양성'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5, 6절의 '여러 가지'에도 이와 동일한 헬라어가 사용되었다.
▶ 성령은 같고 - 예수를 주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사는 어떤 특정한 것들만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그 다양성 위에 한 성령의 역사가 있음을 알아야 분쟁이나 다툼 따위의 문제가 사라질 것이다.
[고전 12: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 직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온'는 '디아코네오'('섬기다', '봉사하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아코니아'는 여러 가지 의미를 포괄한다.
(1) 이말은 '사랑을 밑바탕으로 한 섬김'을 뜻하고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봉사를 가리킨다.
(2) 보다 특별한 의미로는 '어떤 의무의 수행'을 뜻하여 사도들이나 전도인들이나 마가 같은 조력자들이 맡은 책무를 수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3) 때로는 이 단어가 연보(捐補)하는 일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연보는 부수적인 활동이 아니라 기독교적 사랑에서 나오는 참된 활동이기 때문이다. 본절에서의 직임은 이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염두에 두고 언급된 것이다.
▶ 주는 같으며 - 직임은 개개인의 공명심으로 말미암아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主)'를 위한 것이다.
성도가 그 직임에 따라 각자에게 부여된 영역 속에서 봉사하는 것은 곧 주를 섬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직임의 열등성 또는 우월성을 따지고 그에 치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을 잊은 처사이다.
[고전 12: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
'역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르게마톤'은 '에네르게오'('활동하게 하다')에서 온 말로 헬라 세계에서는 사람의 사역이나 세상에 감도는 우주적이거나 물리적인 힘을 가리켰고,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사역이나 사단적인 힘을 지칭하는데 주로 사용되었다.(TDNT).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사역하시는 작용을 의미한다.
바울은 '역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삼위이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든 은사를 일관성 있게 주관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Mare).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성령의 은사는 성도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양하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상호 은사의 상이성을 인정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은사를 온전히 사용해야 할 것이다.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8-10절에서 은사의 목록을 열거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여러 은사를 주신 것은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대원칙을 소개하고 있다.
▶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 '하려 하심이라'는 목적이나 의도를 가리키는 전치사로서 본 구절은 은사의 목적을 설명하고 있다. 은사의 목적은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여기서 밝히고 있다.
▶ 성령의 나타남 - 즉 성령은 인격자로서 은사를 주시고 성령께서 나타내시는 증거가 은사임을 보여준다.
[고전 12: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 바울은 본절에서 성령과 연관지어 전치사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먼저 '말미암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는 '∼에 의해'(by means of)라는 뜻으로 '지혜'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혜는 성령의 조명(照明)에 의한 것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는 '∼의 기준에 따라'(according to the standard of)라는 뜻으로 '지식'과 관계되어 '지식'이 성령의 기준 내지 결정에 좌우되는 것임을 나타낸다.
▶ 지혜와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 혹자는 '지혜'(소피아)와 '지식'(그노시스)이 아무런 차이점이 없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만, 바울은 그들을 구별하고 있다.
특히 '지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는 비밀을 설명하는데 쓰이는 용어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고후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고후 4:6)이며,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빌 3:8)이다.
결국 이 은사들은 성령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결합되어 성령께서 가르치는 말씀으로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 데 사용된다.
(고전 2:6-13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엡 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골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혹자는 '지혜'는 '사도'와 '선지자'를 만들고, '지식'은 '교사'를 만든다고 한다.(Godet).
이 점을 수용한다면,
'지혜의 말씀'은 본서 28절에 나오는 직임들 가운데 첫째와 둘째 것인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직임과 관련되고,
'지식의 말씀'은 그 다음의 직임인 '교사'의 직임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이 견해는 '지혜'와 '지식'을 '실제'와 '이론'으로 구분하여 생각하기보다는 동시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결론적으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첫 번째와 두 번째 은사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성령과 연관지어 말한 것은 '구원의 계획'(Heilsplan)이나 '구원의 내용'(Heilsgut)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로 이해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고전 12: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 믿음은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본절의 '믿음'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제한된 은사를 의미한다. 이는 바울이 8:2에서 일반적인 믿음과 특별한 은사로서의 믿음을 구분하고 있는 것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믿음의 능력은 예언하고,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기적을 행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마 21: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 병 고치는 은사 - '병 고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야마톤'은 복수 명사로서 여러 종류의 질병이 치유의 대상이었음을 시사한다.
'은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마타' 역시 복수 명사로 은사가 각기 다른 종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병 고치는 은사'는 단지 사람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과 마음과 정신의 치료까지 포괄하는 말이다.
[고전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 능력 행함 - 이 은사는 '믿음'과 '병 고치는 은사'와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연의 법칙을 초월한 기적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도록 하여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게 하는 것이다.(C.P.Wagner). 이 은사는 '병 고치는 은사'보다 더 포괄적인 힘을 지닌다.
이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갑작스런 죽음,
(행 5: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박수 엘루마를 소경으로 만든 일등과 같이 마귀를 대적하며,
(행 13: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그 추종 세력을 축출하는데 사용되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 행함으로 나타나는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방편이 되며(Calvin) 동시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을 계시하는 수단이 된다.
▶ 예언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페테이아'는 하나님의 계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은사로 하나님에 의해 수여된 통찰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단어는 '말을 토하여 내다', '미리 경고한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한다'는 의미를 가진 '프로페튜오'와 같은 어군으로 미래에 일어나리라고 예측되는 상황과 현재 일어난 사건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예언'을 하나님께서 교회를 가르치기 위해서 베푸신 가장 큰 은사 중의 하나로 보았다.
예언은 교회를 신앙의 기초 위에 세우며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말씀을 설명해 준다. 신약 성경에서 '예언'이란 구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계시가 완결된 현재에 있어 '예언'이란, 예언의 말씀인 성경을 바로 이해하여 가르치며 현재의 삶에 적용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 영들 분별함 - '영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톤'은 악한 영들을 의미하며, '분별함'의 헬라어 '디아크리세이스'는 '구별', '인식', '가려냄', '심판' 등의 의미를 지닌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가 많았으므로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그릇된 가르침을 분별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지만 당시에는 기록된 말씀이 없었으므로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가 필요했다.
이 은사는 교회를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으로부터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發露)였다.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는 어떤 현상의 이면에 있는 정신적인 영향력을 간파하는 능력으로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다.
사도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거짓말 하는 영'이 들어 있는 것을 알았고,
(행 5:1-10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10)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마술사 시몬의 마음이 '악독하고 불의한 영'에 얽매여 있는 것을 간파하였다.
(행 8: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이러한 은사를 활용한다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하는 어떤 행위가, 신적인 것인지 혹은 인간적인 것인지, 아니면 사단으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확실히 식별할 수 있다.
▶ 각종 방언 말함 - '각종'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네'는 '혈통', '민족', '종류' 등을 의미하므로 방언의 종류가 여러 가지임을 가리키고 각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였음을 시사한다.
방언은 고린도 교인들이 가장 자랑으로 삼았던 은사 가운데 하나로 교린도 교회에서의 방언의 형태는 각기 다른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뿐만 아니라 어떤 종교적 흥분 상태에 이르렀을 때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로 하는 것까지도 포함하였다.
▶ 방언들 통역함 - '통역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르메네이아'는 '번역', '해석'을 뜻하며, 이 단어는 신약에서 본절과 본서 14:26에만 나온다.
(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이 특별한 방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경우에 이 방언에서 유익을 얻고자 한다면 이 방언을 통역할 사람이 있도록 성령의 통역 은사를 구해야 할 것이다.
(1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그런데 바울은 방언이 그 자체로는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으므로 자제할 것을 권면한다.
(14: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본절에서도 방언의 은사와 함께 통역함의 은사가 언급되는 것은, 은사가 교회에 유익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함을 전제한다.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은사들은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기원을 가진다. 6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언급한 데 반해서 여기서는 성령의 행하심을 언급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은사들을 발생(發生) 시키실 뿐만 아니라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의 은사들을 자기들의 관점에 비추어 비교하여 열등의식이나 또는 우월감에 빠질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