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3일 금요일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성만찬을 우롱하는 문제

 

성 경: [고전 11:17-22]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고전 11: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내가 명하는 이 일에 - 바울은 16절에서 이미 여자가 공예배시에 수건을 써야 한다는 관습에 대해서 완전한 결론을 맺었다.

 

그것은 이어서 논할 성만찬에 대한 것을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 본절은 공예배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는 점을 권하기 전에, 먼저 고린도 교인들을 칭찬했던 2절의 내용과 대조를 이룬다.

 

바울은 이제부터 명령할 성만찬의 규례를 고린도 교인들이 경솔히 생각하고 행함으로 범죄 하였으며, 교회 내에 파벌이 형성되어 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를 책망하려고 한다.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 본절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칭찬하지 않은 이유를 드러낸다.

 

고린도 교인들의 모임은 편당(偏黨)을 이루어서,

 

(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부유한 자들이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주의 만찬에 불경하게 참예하였기 때문에 유익이 되지 못하였다.

 

 

[고전 11:18] 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첫째는 - '첫째'(프로톤)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을 책망하는 논증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나 '둘째'가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견해는 학자들 간에 분분하다.

 

12-14장을 둘째 책망으로 이해한다.(Heinrici, Meyer, Osiander).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주의 만찬에 대해 소홀히 하는 문제를 책망하고, 12:1에서 부터는 새로운 주제, 곧 은사의 문제에 대해 책망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실은 12:1에서 ''('그러나')를 사용해서 11장과 연결된 관계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주제로 화제를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해 진다는 것이다(Meyer).

 

교회에 - 본절은 장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모임의 성격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것이다.(Edwards, Godet).

 

분쟁 - 본절에서의 분쟁은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에서 생겨난 대립을 가리킨다.

 

대강 믿노니 - 바울은 들었던 분쟁에 관한 소문들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 소문들의 진위(眞僞)를 가려볼 때 분쟁의 사실들이 분명하기에 책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바울이 그 소문의 진위를 어떻게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다.

 

 

[고전 11: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 '편당'(하이레세이스)은 어원적으로 '선택'(choice) 혹은 '좋아함'(preference)에서 유래된 것으로, '단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differences) 혹은 '파벌'(fractions)을 가리킨다.

 

'있어야'는 존재의 당위성이나 필요성을 의미한다.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 본절은 교회 내에 편당이 존재하는 목적을 긍정적으로 나타낸다.

 

교회 내에 존재하는 견해의 차이와 파벌은 때때로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지만, 그런 위기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진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되며, 그 위기의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고전 11: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그런즉 - '그런즉'은 앞에서 말한 것을 요약하는 것으로 앞절과의 연관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앞절의 편당은 주의 만찬에서 비롯된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 본문은 세 가지로 해석된다.

 

(1) "너희는 주의 만찬을 먹을 의도가 없이 모였다"는 해석이 있다(Alford).

 

그러나 29, 30절은 고린도 교인들이 주의 만찬을 먹기 위해서 함께 모였다는 것을 암시하므로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2) "너는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다"는 해석이 있다(Meyer).

 

이 해석은 '에스틴'('이다')에 부정사(infinitive)가 뒤따라 올때 가능하다.

 

(3) "이것은 주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니다"라는 해석이 있다(De Wette, Maier).

 

NIV에서도 "너희가 먹는 것은 주의 만찬이 아니다"(it is not Lord's Supper you eat)라고 해석함으로써 이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세 견해 중 첫째 견해는 본문상의 내증(內證)에 위배되기에 타당치 않지만 나머지 두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당시 주의 만찬은 '애찬'(love-feast)'성만찬'(Eucharist)이 결합된 형태였던 바, 교인들은 집에서 형편에 따라 먹을 것을 싸가지고 교회에 모여서 공동 식사를 하면서 교제를 나누었다.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고후 8: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이런 애찬 후에 성만찬이 행해졌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애찬에서 부터 교제를 나누지 않고 먼저 먹고 취함으로,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애찬과 성만찬을 일반 식사로 전락시켜 버렸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의 만찬이 주의 만찬이 아니라고 단언하였다.

 

한편 '주의'(퀴리아콘)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만찬을 제정(制定)하고, 만찬에 초대하며 주관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고전 11: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

 

'이는'(가르)은 앞절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이 행한 만찬을 부정한 이유를 말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함께 모일 때까지 기다려서 만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먼저 먹고 마심으로' 만찬을 통해 참된 교제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거룩한 주의 만찬을 무시한 것이었으므로 바울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이 나눈 만찬은 주의 만찬이 아니라고 책망한 것이다.

 

 

[고전 11: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 고린도 교인들이 주의 만찬에서 행한 모습들은 마치 집에서 먹는 일반 식사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주의 만찬에 그런 식으로 참여하려면 집에 가서 하라고 책망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15: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 모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명하신 그리스도의 규례를 따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육신적인 만족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로 그들에게 있어 주의 만찬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 '빈궁한 자'는 단순히 '가난한 자'의 차원이 아니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를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부자들은 보이는 것에만 치중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하나님의 백성을 분리하고 구별지어 가난한 자들로 하여금 열등감과 굴욕감에 빠지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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