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의 행동과 영의 결과
갈라디아서 5장 16-24절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사람은 그 마음속에 있어서 이대 세력의 경쟁지로 되어 있다.
그 하나가 육(肉)이고 그 다른 것이 영(靈)이다.
육,
육을 본거로 하여 일하는 악의 영이고,
영이란 영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리하여 육은 영에 거슬리고
영은 육에 반하여 이자 서로 반대함으로서
그 사이에 평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이자의 사이에 있어서 그 하나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육에 따를 것인가?
그는 악인이다.
영에 따를 것인가?
그는 선인이다.
그는 도덕가라고 칭하여
그 행위를 하나하나 자유의지의 선택에 의해 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혹은 육에 가담(속)하여 그 원하는 바에 따르든가
이제 어느 것인가를 택하는 것이다.
정치계에 있어서의 소위 [징가사]
같은 것으로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속의 정당의 정책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의 자유의지는 자기 몸을 던져야 할
정당 선택 시에 소용되는 것이고
기타의 것에 있어서는 모두 자기 몸을 맡긴 정당,
즉 세력에 따라 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이는
너희가 원하는
바를 너희가
할 수
없기 때문이다](17)라고.
사람은 하나하나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하는 것 아니다.
육에 따르는 자는 육의 소욕을 행하고
영에 따르는 자는 영의 의욕하는 바를 행한다.
가련하다.
사람은 자주가 아니라 노예이다.
육의 노예가 아니면 영의 노예이다.
하지만 육이냐 영이냐
악마냐 하나님이냐
자기 몸을 맡겨야 할 주인을 택함에 있어서
그 선택의 자유는 이것을 자신 보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육의 욕을 따르지 않고자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건대
너희는 영에 의해 행하라고 바울은 가르치는 것이다.
영에 속하라.
그 세력에 자기를 맡기도록 하라.
그리하면 육의 욕구대로 하는 일 없으리라고.
또 말한다.
[너희가
만약 영에
인도된다면 너희는
율법아래 있지
않는 것이다](18)라고.
육의 욕을 행하지 않는 길,
즉 율법의 지배를 면하는 길은 영에 따라
그 인도하시는 바로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유의지라 칭하여
자기 일개의 힘으로서 악을 떠나 선에 속하는 것 아니다.
영(성령)인 세력에 속(가담)하여
그 인도하시는 바로 되어 죄에 대하여 자유일 수 있는 것이다.
[대저
육의 행동은
명백](19)한 것이다.
외부로 나타나,
누구도 이것을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즉 음행,
오예,
호색 등 16죄이다.
행동은 외부에 나타나는 통일 없는 여러 가지 잡다한 행동이다.
음행이하 셋은 자기의 대한 죄,
우상숭배와 무술과는 하나님께 대한 죄,
구한이하,
흉살까지 아홉은 이웃사람에 대한 죄,
취주방탕은 이상을 총괄하여 자포자기의 죄라 칭하여 가할 것이다.
자제 없음이 육의 행동의 특성이다.
그러므로 통일이 없다.
임의자행이다.
자기를 더럽히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이웃사람을 해친다.
자기존재의 파괴이다.
육의 세력은 이것을 목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세력에 자기를 맡긴 자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지 못할 것은 말하지 않고도 분명하다.
육의 행동에 대하여 영의 맺은 열매가 있다.
열매는 그리스어의 HO
KARPOS 영어의 fruit로서 단수명사이다.
말하는 바는 영의 맺는 열매는 육의 행동과 달라 다만 하나이다.
다만 그 나타나는 방면이 다를 뿐이다.
이것을 총칭하여 사랑이라고 한다.
자기 안에서는 환희와 평화이다.
이웃에 대해서는 인내 또는 자비 또는 양선이다.
인내는 이웃의 흠점에 대하여
자비는 그 궁핍에 대하여
양선은 그들 이웃에 대한 전체의 태도이다.
그리고 그의 성격은 충신,
유화로서 만사에 있어서 절제이다.
모든 점에 있어서 육의 행동과 정반대이다.
육은 사람을 파괴로 이끌어 가고 영은 보전으로 인도한다.
육의 마지막은 방탕이다.
영의 마지막은 절제이다.
자기 파괴와 자기 보전,
[자기
육 위해
심는 자는
육에서 파괴를
거두고
영 위해
심는 자는
한없는 생명을
거둘 것이다](6,
8)라고 있는 대로이다.
참된 선행은 열매이다.
행동이 아니다.
자연으로 맺는 것이지 노력하여 이룩되는 것 아니다.
그러므로
[하라.
하지 말라]고 명하는 율법의 지배의 밖에 이룩되는 것이다.
*내촌감삼의 주석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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