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3일 월요일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성 경: [51:17-23]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너의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19)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도다

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22) 네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23)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의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 같게, 거리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51:17]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 - 당시 바벨론의 포로로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상태를 분노의 잔을 마신 자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 담긴 잔을 마신 자는 전적으로 파멸 당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비유는 그리스도에 대속적 죽음과 관련해서도 사용된 바 있다.

 

(10: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나를 잠기게 한 그 침례로 너희가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하시니).

 

한편 9절에서 사용된 '히트오레리' '깰지어다'가 여기서도 두 번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1차적으로 진정 깨어나야 할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회복될 것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51: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너의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포로 상태의 이스라엘을 회복할 존재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은 바사 왕 고레스의 개입에 의해 실현되었다.

 

아울러 본문은 영적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신적 존재 곧 메시야를 통해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51:19]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이 두 가지 일 - 정확히는 '이 두 가지 일들'이다. 말하자면 두 쌍, 곧 네 가지 일들을 가리키는데,

 

먼저 한 쌍은 땅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황폐와 멸망이며,

또 다른 한 쌍은 사람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기근과 칼, 곧 전쟁이다.

 

한편, 이를 내적 사건과 외적 사건으로 구분하는 견해(Aben Ezra, Kimchi),

혹은 기근으로 인한 황폐,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멸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Clark).

 

 

[51: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도다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 여기 '모퉁이'(רֹאשׁ 로쉬 rosh)란 그 문자적인 뜻이 '머리', '꼭대기'인데 거리의 '머리'(꼭대기)란 당시 한 도시의 모든 거리와 도로의 출발점이자 중심지였던 성문을 가리킨다.

 

당시 성문은 밤이 되면 폐쇄되었는데 문 안으로 들어오고자 했던 자로서 밤이 되어 그 문이 폐쇄되면 그 문 앞에 모여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모습 곧 여럿이 성문 앞에 모여있는 모습을 저자는 그물에 걸린 영양 떼에 비유하고 있다. 어쩔 도리 없이 그 발이 묶인 나그네와 같이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있다.

 

 

[51: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 - '포도주 없이 취한 자'이다.

 

포도주 때문이 아니라 외적의 침입으로 비틀거리고 쓰러진 이스라엘의 형편을 지적으로 표현이다.

 

(29:9 너희는 스스로 멈추며 놀랄지어다. 너희는 부르짖고 부르짖을지어다. 그들이 취하되 포도주로 취하지 아니하였으며 비틀거리되 독주로 인해 비틀거리지 아니하나니;

 

3:15 그분께서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51:22] 네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 문자 그대로는, 다시는 바벨론 포로와 같은 시련과 재난을 허락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 후에도 로마의 침공으로 동일한 시련과 재난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제 경건한 참 이스라엘 백성, 곧 남은 자들은 세상에서는 시련과 재난을 겪으나 결국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결코 동일한 고통을 겪지 않고 살게 될 것이다.

 

 

[51:23]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의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 같게, 거리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들의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 같게, 거리 같게 하였느니라 -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잔혹하게 대하였던 사실에 대한 생생한 묘사이다.

정복자들이 문자 그대로 그 피정복 국가 왕의 목을 밟았던 관습은 성경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10:24 그들이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군사들의 대장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니 그들이 가까이 와서 그들의 목을 밟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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