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31일 수요일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성령을 거역하는 이스라엘

: [ 7:44-60]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저가 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사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49)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50) 모든 것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 저희가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저희가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앞에 두니라
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예수여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말을 하고 자니라.



[ 7: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저가 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증거의 장막 -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을 새긴 개의 돌판을 장막 안에 보관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 9:15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장막(帳幕) 실체가 하늘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장막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투영(投影)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셔서 택한 백성과 교제를 나누셨기 때문에 '회막'(會幕)으로도 불리었다.



[ 7: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사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여호수아 역시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장막을 가지고 다녔다. 장막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중앙에 위치해 항상 그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였다.

여기서 '받아'라는 '물려받다', '상속으로 계승하다' 뜻을 나타낸다.
이는 장막의 계승이 여호수아 세대에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초기부터 다윗 시대까지 계속해서 이어졌음을 나타내 준다.



[ 7: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 여기서의 처소란 다윗이 건축하려고 했던 집으로 있다.

(삼하 7:5-16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7)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모든 대적을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10) 내가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 수한이 차서 조상들과 함께 때에 내가 몸에서 자식을 뒤에 세워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 저는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 나는 아비가 되고 그는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은총을 빼앗은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16) 집과 나라가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다윗이 건물성전을 구상했음을 암시한다.
특히 다윗은 자기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함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여러가지를 준비해 두었다.

이는 그가 건물 성전을 염두에 두었음을 입증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처소' ''이나 ''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것이다.



[ 7: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솔로몬이 집을 지었느니라 - 이제 여기서는 앞서 언급된 '증거의 장막' 솔로몬이 지은 하나님의 '성전' 비교되고 있다.

사실 광야에서 40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시며 수많은 역사를 일으키신 하나님을 견고한 성전 안에서 번제나 희생제를 받으시는 정적인 하나님으로 가두어 놓았다는 사실은 여호와 신앙의 정체(停滯) 내지는 후퇴로 규정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성전 안에서만 예배 받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데반은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을 냉소적으로 진술한 것이 아니다.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건물적 의미가 아니라 영적 의미로 바뀌었음을 진술하기 위해 성전에 대해 언급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솔로몬의 성전이나 스룹바벨의 성전은 구약 시대에서는 자체로서 그림자적 의의를 지니면서 존속해야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 7: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 실제로 유대인들도 하나님께서 성전 안에 거하시면서 제한을 받으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의 '성호'(聖號) 그의 '임재하심' 성전 안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스데반이 본절에서 진술하고 전하는 요지는 예루살렘 성전 예배가 바뀌어야 한다는 있다. 이를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가 운명하실 성소가 찢어진 것과 연관시키고 있다.

(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15: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구절의 진술을 통해 비록 자세하지는 않으나 스데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보이면서 이상 하나님께서 성전에만 제한되어 성도를 만나지 않으심을 역설한다.



[ 7:49-50]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50) 모든 것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50) 모든 것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 구절은 66:1, 2 인용한 것이다.

( 66: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모든 것을 지어서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스데반의 설교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정점에 다다르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창조물 안에 거하실 있는 분이 아니시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 역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으로서 그분이 거하실 처소가 없다.

그래서 스데반은 그동안 유대인들이 수많은 이방 세계의 신전들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을 자신들의 신을 위한 거처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전제하고 그러한 유대인들의 생각을 통박(痛駁) 내지는 후퇴로 규정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성전 안에서만 예배 받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데반은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을 냉소적으로 진술한 것이 아니다.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건물적 의미가 아니라 영적 의미로 바뀌었음을 진술하기 위해 성전에 대해 언급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솔로몬의 성전이나 스룹바벨의 성전은 구약 시대에서는 자체로서 그림자적 의의를 지니면서 존속해야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 지금까지 스데반은 청중들의 마음을 자극시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본절에서 자극시키는 표현을 사용하여 극적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그는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에 대해 즐겨 사용된 구약적 표현들을 사용함으로써

( 3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순식간이라도 너희 중에 행하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 단장품을 제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일을 알겠노라 하셨음이라;

26:41 나도 그들을 대항하여 대적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할례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9:13 여호와께서 내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말라;

4:4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자가 없으리라;

9:26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광야에 거하여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청중들도 그들과 같은 부류에 포함시켰다.

말씀은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배교했던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 지금 성령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치 아니하는 완악한 마음을 갖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동일하게 내려지게 것임을 암시한다.



[ 7: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의인이 오시리라 - 여기서 '의인'이란 표현은 '무죄한 '라는 의미에 가깝다(I. H. Marshall). 이는 예수가 무죄한 자로서 십자가를 사실과 연관짓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의인' 메시야이신 예수로 보는 데에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다. 왜냐하면 '오시리라' 표현이 메시야의 오심과 관련된 것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하여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는 사실은 비일 비재하다.

(대하 36:15-16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성과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사자들을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16)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없게 하였으므로;

9:26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뒤에 두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크게 설만하게 행하였나이다;

2:30 내가 너희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 그들도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 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그리고 이렇게 선지자들이 핍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한다는 주제는 유대 문학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다. 유대 사회에서 높은 학식을 갖추고 있는 공회원들은 구약성경과 유대 문학에서 반복되고 있는 이러한 내용들을 수없이 접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심지어 메시야까지도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만행(蠻行) 저질렀다.

그래서 스데반은 유대인들을 살해했던 같이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오신 메시야를 살해한 무리임을 폭로하였던 것이다.



[ 7: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

'천사의 전한 율법'이란 천사의 중보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진 율법( 3:19) 말한다.

(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33:2 아니라 구약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율법 전수 과정에서 천사들이 중보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 33:2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오른손에는 같은 율법이 있도다)

신약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사상이 보편화된 것으로 짐작된다.

( 2:2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아마 바울이나 히브리서 저자는 율법이 복음보다 계시의 차원에서 열등하다는 의미로 율법 수여에 있어서 천사의 중보개념을 수용했을 것이다(W. Neil).



[ 7:54] 저희가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이를 갈거늘 - 표현은 유대인들이 극심한 분노를 나타낼 머리에 재를 뿌리거나 옷을 찢는 행위와 유사한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 16:9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군박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대적이 되어 뾰족한 눈으로 나를 보시고;

35:16 저희는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같이 나를 향하여 이를 갈도다;

112: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악인의 소욕은 멸망하리로다).

이는 그들이 스데반의 질타를 듣고 얼마나 격분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성령이 충만하여 -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있는(6:3, 5, 8, 15) 표현은 분노한 청중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스데반의 모습을 부각시켜 준다.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5 무리가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스데반의 권고적 설교에도 불구하고 완악함을 버리지 않은 청중들과는 반대로 성령의 능력으로 성품조차 변화된 스데반의 모습을 누가는 간략하게 보여주었다.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 말에 대하여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의 모습이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언급된 것은 앞에서 진술된 예수의 죽으심과 깊은 연관이 있는 듯하다.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예수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대적했다는 간접적 표현임과 동시에 스데반 자신의 증거가 신적(神的) 권위를 지녔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예수가 계신 모습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 예수를 '인자'라는 명칭으로 사용한 경우는 복음서들 외에는 구절과 1:13;14:14 뿐이다.

(1: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14 내가 보니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머리에는 면류관이 있고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예수께서는 명칭을 ''라는 대명사에 대한 하나의 관용어법으로 사용하셨고 7:13-28 용례를 반영하는 명칭의 하나로 사용하셨다.

( 7:13-28 내가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15)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16) 내가 곁에 모신 하나에게 나아가서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고하여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17) 짐승은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18)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이는 철이요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그것의 머리에는 뿔이 있고 외에 다른 뿔이 나오매 뿔이 앞에 빠졌으며 뿔에는 눈도 있고 말하는 입도 있고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밞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뿔은 나라에서 일어날 왕이요 후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것이며 그가 때와 법을 변개코자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되어 때와 때와 때를 지내리라
26)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27) 나라와 권세와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
28) 말이 이에 그친지라 다니엘은 중심이 번민하였으며 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일을 마음에 감추었느니라)



[ 7:57] 저희가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

공회의 스데반에 대한 사형 집행은 불법이었다. 이들은 당시 로마법에 따른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감정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여기서 그들이 큰소리를 지른 것은 스데반의 말을 이상 듣지 않겠다는 의미와 함께 그들의 감정이 얼마나 고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 7:58]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앞에 두니라 -

유대인의 죄인 처형 방법은 먼저 죄인을 3.5m 정도 사형 집행 장소에서 아래로 떨어뜨린 그가 죽지 않았을 경우에는 크고 무거운 돌들을 죄인에게 던져 죽게 하였다고 전한다(Mishna).

그리고 죄인에게 돌을 던질 증인들이 먼저 던진 주위의 사람들이 던졌다.
그런데 스데반의 청중들은 자신들이 모두 스데반의 설교를 들었다는 의미에서는 증인들이었으나 공식적인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불법이었다.

특히 그들은 로마법에 의해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제한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돌발적으로 행동했던 것이다. 이는 예수의 사형 집행 과정에서와 유사하게 그들의 종교적 편견과 독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편 증인들이 옷을 벗었다는 사실은 어떤 이유로 증인들이 사울 앞에 옷을 벗어놓게 되었는지는 없으나 누가는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 사울이 주도적으로 동참했음을 보여주고자 표현을 사용한 같다.

이는 22:20에서 기록된 바울 자신의 회고(回顧) 의해 입증될 있다.

(22:20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저희도 아나이다)



[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예수여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

여기서 영혼을 부탁하는 스데반의 기도는 23:34, 46 십자가상에서의 예수의 기도를 생각나게 한다.

(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46 예수께서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말씀을 하신 운명하시다)



[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말을 하고 자니라. -

59절에서 스데반의 기도가 1차적으로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본절에서 그가 기도하기 위해서 무릎을 끓었다고 보기 힘드나 돌에 맞는 과정에서 그가 쓰러져 있던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기 위해 그리고 대면하게 하나님께 겸손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고 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편 스데반의 순교는 예루살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대박해의 시발점이었다. 이로 인해 예루살렘교회는 팔레스틴 각지와 아시아 지역까지 흩어지게 되었다.

(8: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해는 결과적으로 교회를 지역으로 흩어지게 하여 선교의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결국 스데반의 순교의 피는 초기 기독교 확산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