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백성에게 말하되
베드로의 답변
성 경:
[행 3:11-16]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 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 나온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 어깨에 매달렸다는 뜻이며 이는
(1) 많은 사람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이런 기적이 일어났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고
(2) 사도를 향한 애착과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고
(3) 사도들이 자기를 그냥 떠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동이다.
▶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 솔로몬 행각은
(1) 성전 바깥 뜰 동편 끝에 있는 기다란 집채 곧 회랑(回廊)으로 교사들이 자유롭게 강론하던 곳이었다.
(2) 대중 집회를 할 만한 장소로서 초대 교인들이 이곳에서 자주 집회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5: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3) 예수께서 이곳에서 설교하신 일도 있었다.
(요 10: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아무튼 기적으로 인하여 많은 군중이 사도들 주위에 몰려들었다는 것은 기적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고 사도들로 하여금 기적을 베풀어 주신 분에 대해 중거케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음을 보게 한다.
왜냐하면 기적 때문에 크게 놀라서 모인 군중들은 이제 하나님 나라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생생하게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행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 백성에게 말하되
- 걸인이 고침 받게 된 기적은
(1)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2) 그들을 사도들 앞에 모이게 했고
(3) 이제 사도들로 하여금 기적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서 '말하되'를 가리키는 헬라어 '아페크리나토'는 어떤 일에 대한 답변으로 경위(經緯)를 설명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는 기이한 일을 보고서 그 일에 대한 설명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설교할 기회를 얻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본절 이하는 2:14에 나타난 오순절 이후의 베드로의 설교에 이어 두 번째 설교로서 본절은 그 서론에 해당한다.
(2: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 이스라엘 사람들아
- 설교를 듣는 대상을 호칭하는 표현으로서 의미심장하고 중대한 선포를 할 때 베드로가 자주 쓰는 표현이며
(1: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2: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들이 율법과 약속을 받은 선민임을 상기시킨다.
▶ 왜 기이히
여기느냐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 사람들의 잘못된 관심을 책망하면서 설교의 서론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질문이다.
즉
(1) 사도 자신들의 어떤 특별한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고친 것이 아니라는 선언이며 그러므로 자기들을 눈여겨 보지 말라는 것이다.
(2) 과거에 하나님의 수많은 능력을 체험한 이스라엘 사람들로서 왜 이 일을 기이히 여기느냐는 것이다.
이는 곧 그 이적의 동인(動因)이 하나님께 있음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3) 결국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를 오직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리는 표현이다.
자기들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심부름꾼인 도구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기가 믿음이 좋고 대단한 영력(靈力)이 있어서 이적적 권능을 행사하는 것처럼 은근히 자신을 강조하여 모든 존경과 영광을 다 받으며 기적과 그로 인해 모든 군중들을 지극히 인간적으로 이용하는 종교적 영웅주의자들,
즉 거짓 선지자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인기주의로 자기를 나타내는 일에는 흥미가 없는 사도들은 오직 어떻게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이 기적의 실체가 되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며 또한 그로 인해 자기들의 죄를 깨닫게 하여 이들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할 수 있을까에 만 관심을 집중하였다.
이것이 기적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 절에서 사도들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목도한다.
[행 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 이는 본래 출애굽기에서 최초로 사용된 표현이며
(출 3:15-16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출 4:5
또 가라사대
이는 그들로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하시고)
이 표현을 사용한 의도는25,
26절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25-26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즉 이 말은 유대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자들이라는 실감을 가지게 하는 표현이며 이 같은 표현은 신약성경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마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막 12:36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더 나아가 자신들이 율법과 예언에서 멀리 떨어진 새로운 종교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바탕 위에서 구약의 완성자이신 예수에 관한 복음을 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여기서 '종'을 나타내는 헬라어는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는 '휘오스'가 아니라 '파이스'이다. 따라서
이 종의 의미는 일찍이 이사야가 예언했던 고난의 종을 말한다.
(사 42:1-9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사 49:1-13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정녕히 나의
신원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5)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 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8)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9)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10)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
11)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12) 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오리라
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사 53:1-12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구속자로 오셔서 세상으로부터 배척과 수욕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의 항변도 없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 즉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 모든 일을 감당하는 예수의 낮아지신 신분과 그 직무를 말한 것이다.
(2: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예수와 종을 직접 함께 언급한 곳은 4:27,30
등이며,
(4: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고난받은 종에 관한 암시적 언급은 8:32,
33; 막 10:45;
14:24; 벧전 2:22-24등에도 나온다.
그런데 이 종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이제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롭게 했다'는 말의 뜻은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그가 종으로서 죽었지만 하나님이 3일 만에 부활시키고 승천케 하셔서 이제 하나님 우편에 앉히기까지 그를 높이신 사실을 말한다.
(F. F. Bruce, Lenski).
이로써 베드로는 예수가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증거하고 있다.
사도는 이어서
유대인들의 죄악을,
즉 그들이 이 예수를 어떻게 배척했는가를 담대하게 지적한다.
▶ 넘겨주고 - 이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로마인,
즉 이방 통치자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던 것을 말한다.
(사 53: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부인하였으니 - 이는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함을 발견하고 놓아주고자 했으나 저희가 바라바를 택하고 예수를 부인하여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사실에 대한 지적이다.
(눅 23:13-2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7) (없음)
18) 무리가 일제히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러라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21) 저희는 소리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23)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사도는 그들의 죄를 깨우치기 위해 통렬하게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죄의 무서움과 심각성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의 자비 앞에 두손들고 나올수 있기 때문이다.
[행 3: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 거룩하고 의로운
자 - 사도는 계속하여 예수가 어떤 분이었던가를 증거하면서 동시에 그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흉악했던가를 대조용법을 통해서 신랄하게 지적한다.
여기서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막 1: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요일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그리고 '의로운 자'란 모든 블의에서 완전히 떠나서 절대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뜻이다
(7: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22: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사 53: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렘 33: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따라서 '거룩하고 의로운
자'란 구약에서 말하는 메시야의 칭호이다.
▶ 살인한 사람
- 이는 거룩하고 의로운 자와 대조적으로 묘사되어 그들의 사악한 성격을 더욱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다.
이 사람은 바라바를 가리킨다.
그는, 유월절 사면(赦免)의 관례에 따라 총독 빌라도가 예수와 바라바 둘 중 하나를 석방해 주겠다고 유대인에게 제의했을 때 유대인들의 선택에 의해 풀려난 죄수였다.
(마 27:15-16
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이 사람에 대해서
(1) 마27:16에는 유명한 죄수로,
(마 27:16)
그 때에
바라바라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2) 막15:7에는 민란(民亂)
중에 살인하여 포박된 자들 중 하나로,
(막 15:7)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포박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3) 요18:40에는 강도로 각각 언급되어 있다.
(요 18:40)
저희가 또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행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 생명의 주
- 본절은 베드로 설교의 절정으로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강조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예수께 집중시키고 있다.
'생명의 주'는 '생명을 주관하는 자',
'생명의 근원',
'구원의 원천'
등을 뜻하는 말로서 살인자 바라바와 절대적으로 대조됨과 동시에 그들이 저지른 죄의 극악성을 계속하며 강조한다.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죽였도다 - 살인자는 놓아주고 오혀려 생명의 주는 죽였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만한 일인가!
특히 원문상으로는
'너희들이'라는 '휘메이스'를 강조하여
(14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그들의 죄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공격하고 있다.
즉
'너희들이 예수를
죽인 죄인들이요
살인자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없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오순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워 숨어 지내던 비겁했던 사도들의 변화된 이 담대한 증거를 보라.
▶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 유대인들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죽였지만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으니 이는
(1) 유대인들이 저지른 모든 불의와 그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이며
(2) 예수가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는 표였다.
따라서 구약에서 부터 예언된 메시야임을 온 천하에 선포한 것이다.
(요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3) 죄의 세력과 그로 인한 모든 결과들에 대한 승리,
즉 구속 사역의 완성을 의미하므로 예수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신 생명의 주이심을 입증하신 것이다.
(4)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유의 주로 그리스도를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셨다는 표이다.
(빌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 사도들의 담대한 증거와 무엇보다도 사도들 곁에 온전한 사람으로 서 있는 고침 받은 그 사람이 부인할 수 없는 생생한 증인이 된 것이다.
따라서 그 기적 사건은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했다(부활)는 표가 될뿐만 아니라 사도들이 지금 증거하는 그 내용이 참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행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 이제까지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를 증거한 사도는 이제 결론적으로 앉은뱅이가 고침받게 된 그 능력의 근원을 대구법으로 표현된 삼중적 묘사로서 엄숙하게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다.
사도는 이 표현에서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가?
(1) 자신들이 이 사람을 고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밝히고 있다.
(12절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2) 그 이름,
곧 저희들이 죽인 그 예수께서 지금 무덤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고 다시 살아나셔서 이 사람을 낫게 했다는 선언이다.
왜냐하면 이름이란 그 사람의 인격과 그 사람자신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하늘에 앉으셔서 지금도 살아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활동의 계속성을 진술한 말이다.
(3) 예수께서 하늘에서 계속 역사하시되 성도들의 믿음을 통하여 일을 하시는 것을 말한다.
즉 그의 몸된 교회와 지체된 믿는 자를 통하여 친히 능력을 베푸시는 것을 아울러 강조한 것이다.
여기서 '믿으므로'는 그 믿음이 예수를 통하여 얻어지는 믿음임을 말했다.
따라서 이는 믿음의 근원적 출처 또한 주님이라는 사실,
즉 믿는 자를 통한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하겠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믿으므로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고침을 받게 했다는 것과,
예수께서 낫게 하셨다는 말은 서로 상충되는 말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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