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6일 금요일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

 

마태복음 2745-50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참조 : 마가복음 1533-37.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 이것은 아람어이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시려 함에 있어서 이 말을 하신 것에 의해,

아람어가 그의 모어였음을 알 수가 있다.

 

사람이 이에 죽으려함에 있어서

그가 어머니의 품에서 배운 말로서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수는 당시의 시리아 지방의 통용어였던 신 그리스어를 해독했었으리라.

또 교회에 있어서 고() 히브리어로서 읽는 성서를 해득하셨으리라.

 

하지만 그의 일상의 사용어는 아람어였다.

그러므로 감사가 절로 그의 입에서 새어나올 때는 그는 아람어를 쓰신 것이다.

 

야이로의 딸을 고친 때에 그가 발한 달리다굼’ (마가복음 5:4-9201역주),

같은 아람어였다.

 

예수도 그의 어머니의 입을 통해 기억한 아람어의

시편 제221절을 외면서 명목하신 것이다.

실로 인간다운 죽음이다.

 

(시편 제221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 이것을 역하면,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죽음에 처하여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실 리는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고 함은,

이는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으로서 무신론에 가까운 회의이다.

 

가령 고통은 그 극에 달했다 해도 하나님을 믿는 일 매우 돈독하셨던

예수의 말로서는 아주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할 수가 있다.

 

예수는 죽음에 임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한 것일까?

그의 생애는 신앙으로 시작하여 회의로써 끝난 것일까?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

이것이 예수의 최후의 말씀이라고 하면,

그도 또 무신론자의 한사람으로서 세어야 할 것 아닌가?

 

예수도 또한 많은 의인과 한가지로 인생의 사실의 너무나도 비참함을 체험하여

마침내 무신론자로서 그 일생을 마치신 것 아닐는가?

그렇게 해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이 최후의 일언에 관하여, 많은 성서학자에 의해 많은 주해가 시도되었다.

그 하나에 이르기를,

예수는 여기서 자신의 불신을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인류를 대표하여, 그 죄로 고생하는 고통을 표현한 것이다.

 

, 그의 외침도 역시 속죄의 대가의 일부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맛보는 것이 아니면, 사람의 죄를 속량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이는 확실히 설명의 하나일 수 있음에 틀림이 없다.

 

또 하나로는, 예수는 여기서 이 소리를 발하여,

우리들 신앙 약한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일 있대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지 않음의 길을 마련하신 것이다.

 

예수는 그 전생애를 통하여 다만 1회의 이 말씀을 발하신 일에 그친다 해도,

우리는 수회 이것을 발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고통이 우리에게 임하는 때 마다,

우리는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의 비명을 올리는 것이다.

 

인생의 쓴 경험은 종종 우리를 회의자, 또는 더 나아가 무신론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신앙의 위기인 것으로서

이를 만나 우리들은 자칫하면 본래의 하나님의 적으로 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구원의 임금이,

이미 이 시련을 만나 이에 이기신 실례 있음을 알아,

우리는 쉽게 이 위기에서 면할 수가 있다.

 

예수 자신이,

하나님께 버려진 것이나 아닌가 하는 감을 일으킨 정도의 고통을 맛보셨다.

그런데 하나님께 버려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높이시는 바로 되셨다.

우리들이라 해도 또 같은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만약 회의의 친구를 구하려 한다면, 주 예수가 그 사람이다.

 

내 가령 하나님을 떠난대도, 예수를 떠날 수는 없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있는 동안은, 그는 나를 다시 하나님께로 데리고 돌아가신다.

예수는 불신의 때의 우리의 동정자이시다.

그는 몸소 회의에 빠져, 빠지기 쉬운 우리들을 구출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의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는,

우리들 박신의 도를 회의의 구덩이에서 구해 내는 능력이라고,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이상은 둘 다 위자로 찬 해석인데, 그러나 완전한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가장 명백한 해석이 달리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시편 제22편 전편이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는 그 제1절이다.

예수는 이것을 암송하고, 그 전편을 암송하시려 하셨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수 없이 이 편을 암송하셨음에 틀림이 없다.

이것은 그의 특애의 시로서, 그는 여기서 그의 생애의 예언을 읽고,

수 없이 이에 대하여 침사묵고 하셨으리라.

 

그리고 이제 예언의 대부분이 문자대로 그의 실험으로서 실현하는 것을,

그는 여기서 이것을 복송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만약 보통 경우였다면 그는 말했으리라.

시편 제22,

이것은 내 생애를 말하는 것이다.

내 일생은 그 말씀에 나타났다.

내게 임한 고생은 모두 그 예언에 응함이다.

또 이것에 응하여 영광이 내게 나타날 것이다.

 

내 친구여 이것을 읽고 위로 받으라.

내 적아, 이것을 읽고서 두려워하라.

시편 제22, 22!’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말을 하실 경우가 아니다.

지금은 다만 그 제1, 또 그 반을 말하면 충분하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라고.

 

, 예수는 시편 제22편을 마음에 생각하면서,

그의 친구와 적에게, 그리고 또 그들을 통하여 전 세계에,

그의 유언으로서 이것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가신 것이다.

 

지금 시험 삼아 아주 불완전한 일본역으로서 이 편을 읽어 본다면,

그 전편이 십자가상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의 마음의 상태로서

얼마나 적절한 것인지 알 수 있으리라.

시편 그것이 예수의 이 말씀에 대한 가장 완전한 주석이다.

 

내 하나님(엘리), 내 하나님(엘리), 어찌하여(레마), 나를 (사바), 버리셨나이까(다니).

어찌하여 멀리 떠나 나를 구원치 않으시고,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 하시나이까

이상 및 제 2절은 그의 목하의 비탄을 말한다.

3절에서 제5절까지는 선민의 역사를 회고하며 희망을 말한다.

7절에서 제18절까지가 그의 목전의 고통의 상세를 말한다.

 

, 나를 에워싸고, 악한 자의 무리 나를 둘러 내손 및 내발을 찔렀나이다’(22:16)

그들 서로가 내 옷을 나누며, 내 속옷을 제비뽑나이다’(22:18)

 

수백 년 전에 기록된 예언이 이제 사실로 되어 그 상세에 이르기까지 나타난 것이다.

19절에서 21절까지가 기도이다.

그리고 기도는 감사로 끝난 것이다.

21절이 전편의 전구라고도 일컬어야 할 것이다.

나를, 사자의 입, 또 들소의 뿔에서 구출하옵소서

, 내게 응답하셨나이다라고.

 

즉 기도는 응답되었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내 신음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셨나이까라는

회의 비슷한 음성으로서 시작한 이 애소는 주 내게 응답하셨나이다라는

감사의 말씀으로서 끝난 것이다.

 

그리고 이하가 감사의 연속이다.

나는, 주의 이름을 내 형제에게 전파하고,

주를 집회 중에서 찬송하리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야곱의 모든 후예여, 여호와를 높이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이것은 대찬미이다. 그 안에 비조는 흔적도 없다.

모두 승리와 감사로 끝났다.

 

하나님, 나를 버리셨다가 아니다.

그 반대로, ‘그는 나를 도우셨다. 나를 높이셨다이다.

 

22절에서 26절까지가 감사와 찬미이다.

27절 이하가, 후세에 미치는 감화의 예언이다.

수난은 수난자에게 있어서 승리로 끝난데 그치지 않고,

후세를 선도, 은화하기에 이른다는 예언이다.

 

무의미, 무익의 고난은 없다.

의미심장, 효과무궁의 고난이라는 것이다.

 

땅 끝은 모두 상기하여 여호와께 돌아와

열국의 모든 족속은 모두 주 앞에 경배하라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는 열국민을 통치하시는 도다

그들이 와서 이는 여호와의 행하심이다라고 하여

그 의를, 후에 나는 백성에게 전파하리라

 

실로 위대한 노래이다.

그리고 예수는 이 노래를 입으로 하면서 이 세상을 떠나가신 것이다.

그 최초의 일구(一句)만으로서 그의 최후의 심중을 미루어 헤아릴 수는 없다.

처음의 일구는 전편을 소개하는 말이었다.

시편 제22편이, 십자가상에 있어서의 그의 실험 또는 위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여 죽음에 처하신 것은 아니다.

 

*내촌감삼의 십자가의 길을 연재 중임.

 

 

시편 22 (KJV, 한글)

 

(아엘렛 샤할에 맞추어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돕는 일로부터 또 나의 울부짖는 말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나이까?

(22:2)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 부르짖으나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나이다. 밤에도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나이다.

(22:3) 그러나, 오 이스라엘의 찬양 가운데 거주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22:4) 우리 조상들이 주를 신뢰하고 신뢰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22: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출을 받고 주를 신뢰하여 당황하지 아니하였나이다.

(22:6) 그러나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오니 사람들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멸시거리이니이다.

(22:7) 나를 보는 모든 자들이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내밀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22:8) 그가 주를 신뢰하여 그분께서 자기를 건지실 줄로 믿었도다. 그분께서 그를 기뻐하셨으니 그를 건지시리로다, 하나이다.

(22:9) 그러나 주는 곧 나를 모태에서 꺼내신 그분이시니 내가 내 어머니의 젖가슴에 있을 때에 주께서 나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하셨나이다.

(22:10)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께 맡겨졌으며 내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2:11)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고난이 가까이 있으나 도울 자가 없나이다.

(22:12) 많은 황소들이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황소들이 나를 둘러싸고

(22:13) 그들이 약탈하며 울부짖는 사자같이 나를 향해 입을 벌렸나이다.

(22:14) 나는 물같이 쏟아졌고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심장은 밀초같이 되어 내장 한가운데서 녹았나이다.

(22:15) 내 힘이 질그릇 조각같이 마르고 내 혀가 내 턱에 붙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티끌 속에 두셨나니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싸며 사악한 자들의 무리가 나를 둘러싸고 내 손과 발을 찔렀나이다.

(22: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쳐다보고 노려보며

(22:18) 자기들끼리 내 옷들을 나누고 내 겉옷을 놓고 제비를 뽑나이다.

(22:19) 그러나, 오 주여, 주는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오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2:20) 내 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사랑하는 것을 개의 권세에서 건지소서.

(22: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원하소서. 주께서 내 말을 들으사 나를 유니콘들의 뿔들에서 벗어나게 하셨나이다.

(22:22)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밝히 보이고 회중의 한가운데서 주를 찬양하리이다.

(22:23)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아, 너희는 그분을 찬양하라. 야곱의 모든 씨야, 너희는 그분께 영광을 돌릴지어다. 이스라엘의 모든 씨야, 너희는 그분을 두려워할지어다.

(22:24) 그분께서 고난 받는 자의 고난을 멸시하거나 몹시 싫어하지 아니하셨으며 자신의 얼굴을 그에게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그분께 부르짖을 때에 그분께서 들으셨도다.

(22:25) 큰 회중 가운데서 드릴 나의 찬양은 주로부터 나오리니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 앞에서 내가 나의 서원들을 갚으리이다.

(22:26) 온유한 자는 먹고 만족할 것이며 주를 찾는 자들은 그분을 찬양할 것이요,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리로다.

(22:27) 세상의 모든 끝이 주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민족들의 모든 족속이 주 앞에 경배하리니

(22:28) 왕국은 주의 것이요, 그분은 민족들 가운데서 다스리는 이시로다.

(22:29) 땅 위의 모든 기름진 자들이 먹고 경배할 것이요, 흙으로 내려가는 모든 자들이 그분 앞에 절하리니 아무도 자기 혼을 지켜 살아남게 하지 못하리로다.

(22:30) 한 씨가 그분을 섬기리니 주께서 그것을 한 세대로 여기시리라.

(22:31) 그들이 와서 앞으로 태어날 한 백성에게 그분의 의를 밝히 드러내되 그분께서 이것을 행하셨음을 드러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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