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7일 수요일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염소와 양의 비유

 

마태복음 2531-46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는 다시 와서 사람을 심판하신다.

신자를 심판하신다. 불신자를 심판하신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사람들의 숨겨진 것을 심판하신다’(로마서 2:16)고 있는 대로이다.

 

그가 어떻게 신자를 심판하시는가?

그것을 보여 주신 것이 열 처녀의 비유와 달란트의 비유이다.

 

그가 어떻게 불신의 세상을 심판하시는가?

그것을 보여 주신 것이 염소와 양의 비유이다.

 

최후의 비유는 비유의 경지를 넘어서 사실의 서술이다.

일이 너무나 엄숙한 까닭에 비유는 바뀌어 사실로 된 것이다.

 

그 앞에, 모든 국인 모이게 할 것이다라고 있다.

이방의 국민이다.

이라는 등, 왕의 종속은 아니다. 지나인, 인도인, 터키인이라는 등,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교의 백성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서 불신자를 심판하신다는 것은 성서가 명시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교의 백성은 모두 멸망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자는 구조되고 어떤 자는 멸망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심판의 표준은 무엇인가 하건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대한 각자의 태도이다.

그리스도를 받는 자는 구조되고, 받지 않는 자는 멸망된다고 한다.

 

일은 아주 명백하다. 그 사업을 다짐받은 것 아니다.

또 그 종교를 규명받은 것 아니다.

 

그리스도를 어떻게 취급했는가, 그것에 의해 운명이 정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교의 백성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그 이름마저도 모른다.

어떻게 하여 그에 대한 태도를 정함 받을 수 있으랴!

 

그러므로 그들의 어떤 자가 심판의 주께 그 선행을 인정받고,

상찬의 말씀을 듣자, 그들은 놀라서 말한다.

 

주여 언제 당신이 주린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셨습니까?

언제 당신이 나그네 된 것을 보고 유숙케 했으며, 헐벗은 것을 보고 입혀 드렸습니까?

언제 당신의 병드신 것, 또 옥에 있음을 보고 당신에게 갔습니까?’.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무슨 선한 일을 했는지, 그것에 생각이 가지 않았으리라.

그때 왕이신 그리스도는 대답하여 말씀하셨으리라.

 

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형제인 이들 중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행한 것은 곧 내게 행한 것이다라고.

 

이 세상에 멸시되고, 배척되며, 학대되는 내 형제, 곧 제자,

이 세상에 있어서는 가장 작은 자로서, 먼지나 때처럼 취급되는 진정한 크리스천,

즉 정부는 물론, 교회에까지 인정되지 못하는 지극히 작은 자,

이 사람을 받은(영접한)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으로서,

그러한 자는 보상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여기서 자기를 신자와 동일시 했던 것이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자, 소아를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 빈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동을 구하고 빈자를 도운 자가 특히 심판의 주께 영접되는 것은 아니다.

아동교육, 빈민 구조의 필요는 말할 것도 없으나,

그것에 의해 사람이 의롭다 함을 입는 것 아니다.

 

그리스도와 동일시되는 자는 참된 크리스천이다.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아무런 가치도 인정되지 못하는 자이다.

바울이 말하는 이른바

세상의 티끌, 또 만물의 때이다.

 

참된 신자는 실로 그러한 자로서 이 세상에 있는 자이다.

대교사로서 정부나 사회에 존중되고, 대박사,

대감독으로서 교회에 존경되는 그리스도의 형제는 아니다.

 

오늘의 그리스도교국의 사절이나 교사를 영접했다고 해서,

그것은 조금도 그리스도에게 영접되는 공덕으로 되지 못한다.

 

참된 신자는 옛적도 지금도, 이 세상의 세력에는 인정되지 않는 자이다.

그들은 굶주리고, 목마르며, 유숙하는데 집 없고, 입을 옷 없는 자이다.

이 세상의 유랑자이다. 국가에도, 사회에도, 교회에도,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자이다.

 

중고시대의 알비젠시스(Alhigenses) 또는 왈덴서(Waldenses)의 도 같이,

정부와 교회에 몰아붙인바 되어 겨우 그 생존을 계속해 온 자이다.

그리고 그러한 (영접한)자가 구조되고, 그렇지 않는 자는 멸망된다는 것이다.

 

실로 정확한 테스트이다.

신자 불신자란 교회에 입교한 자가 신자이고,

입교하지 않은 자가 불신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그리스도 같은 사람이 크리스천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굶주린 자, 목마른 자, 베개 할 곳 없는 자,

정부와 교회에 학대 되어, 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힌 자였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된다,

물리쳐서 멸망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그의 형제인 이 세상의 지극히 작은 자를 영접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된 크리스천이 그것이다.

 

구원되고 구원되지 못하는 것은, 이 한 가지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이,

염소와 양의 비유의 가르치심이다. 실로 간단한 가르치심이다.

 

하지만, 간단하면서 심원하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신자라 해도,

아직 이 간단한 가르치심을 해득하지 못한다.

그들의 다수는 사람이 구원되는 것은 세례를 받고,

교회에 들어가 그 제정한 의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믿는다.

그들은 아직 이른바 신자로 되지 못하고서 죽은 자는 영구히 멸망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수는 그러한 불합리한 조건을 마련치 않으셨다.

이 세상의 지극히 작은 자로서 대표되는 자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

구원되고, 못되는 것은 이 한 가지에 의해 정해진다.

 

옳다. 이 한가지이다.

어떠한 의식에 참여하느냐, 어떠한 교의를 믿느냐, 그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대표자를 받느냐, 이 한가지이다.

그리스도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

그리고 그리스도는 허다한 가난한 자, 약한 자, 세력 없는 자로서,

언제나 이 세상에 거하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하늘의 사자를 대접한 것 같이,

우리들은 때로 부지중에 그리스도를 접대하는 것이다.

또 허다한 경우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내 문에서 쫓아버리는 것이다.

 

원한다, 성령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그리스도를 못보고 지나쳐 버리는 일이 없기를.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자에 대하여 그가 발하신 말씀은 준열을 다한다.

 

저주받는 자여, 나를 떠나 악마와 그 사자 위해 예비한 영구한 불로 들어가라 ’(41).

 

영구한 형벌에 붙여지리라는 것이다.

영구한 불이란 반드시 영구한 고통은 아니다.

하지만 영구히 꺼지지 않는 불인 것으로서

모든 반역자를 불태워 버리는 불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그러한 불을 예비하실 리 없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여기에 그리스도가 분명히 발하신 말씀으로서 이 말씀이 있다.

 

너는,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우리들은 삼가 이 말씀을 받아 이것을 믿고,

자신 그 불에 들어가지 않도록 경계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만나 이를 영접하지 않는 자가,

그러한 형벌을 받을 그 이유를 알기에 어럽지 않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에 반대하고, 감독, 목사, 선교사에 복종치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자비한 마음을 끊어버리는 일이다.

그리스도는 말씀하셨다.

 

나는 자비를 좋아하고, 희생(제사)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으로서 자비 같은 것은 없으시다.

그는 실로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그 반대로 그가 미워하시는 것으로서, 무자비한 마음 같은 것은 없다.

 

그 점에 있어서 여호와의 마음과 무사의 마음과 흡사하다.

약자를 보고 이것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도리어 이것을 괴롭히는 것으로서 기쁨으로 여기는 일 등은 무사가

견딜 수 없어 하는 바이듯, 또 하나님께서 사하지 않는 바이다.

 

세상에 참된 크리스천만큼 약한 자는 없다.

그에게 정부 또는 교회의 보호는 없다.

그는 사랑을 말하고 무저항주의를 표방한다.

 

예수 자신이 그러하셨다.

그의 참된 제자 즉 형제가 모두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를 괴롭히며 기뻐하는 자는,

어떠한 형벌에 처해 진대도 발뺌할 길이 없다.

세상에 죄악 많다해도 그리스도를 괴롭히는 것보다 더한 죄악은 없다.

대저 이는 소아를 괴롭히는 죄악과 한가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이 죄악이다.

이것을 범한 자에 대하여

 

저주받은 자여, 나를 떠나 악마와 그 사자를 위해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말했대도 조금도 이상한 것은 없다.

 

이리하여 이러한 자는 가서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고

의인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주는 나중에 말씀하셨다.

 

심판은 판별이다. 선악을 심판하여 나누는 일이다.

밀과 가라지와 양과 염소가 판연하게 나뉘는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그리스도와 상대하여 절로 분별 되는 것이다.

그를 영접하는 때에 하나님의 것으로서 나타나고,

그를 배척하는 때에 하나님의 적으로서 정해진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는 이르는 곳마다,

이 의미에 있어서의 재판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내촌감삼의 십자가의 길을 연재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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