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8일 일요일

A.D 30~500년의 교회사

 2 () : A.D 30~500년의 교회사.

 

 

1. 광야에서 외치는 자인 침례요한의 놀라운 선포와 영도 아래

예수 그리스도 감동적인 사랑과 기적을 행하시는 권능 아래

그리고 열 두 사도들과 이어진 계승자들의 훌륭한 선교 활동들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초기 500년간은 힘차게 전파되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무서운 피흘림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와 이방 종교는 교회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었다.

침례요한은 그 위대한 지도자들 중에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즉 그는 참수형을 당하였던 것이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서 교회의 창시자인 구세주께서 돌아가셨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시어 비참한 죽음을 당하셨던 것이다.

 

 

2. 구세주의 뒤를 따라 지체없이 많은 순교의 영웅들이 쓰러져 갔다.

스테반은 돌에 맞아 죽었고,

마태는 에디오피아에서 살해되었으며,

마가는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거리에서 끌려 다녔으며,

누가는 목이 매여 죽었고,

베드로와 시몬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던 것이다.

 

그리고 안드레는 십자가에 달리었고,

야곱은 목베임을 당하였으며,

빌립은 십자가에서 맞아 죽었고,

바돌로매는 산 채로 가죽을 벗기웠으며,

도마는 창에 찔려 죽었고,

동생 야곱은 회당에서 내던저 져서 죽기까지 매를 맞았으며,

유다는 화살에, 맛디아는 돌에 맞아 죽었고,

바울은 목베어 죽임을 당하였다.

 

 

3. 이러한 모든 일이 일어나기까지는 백 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갔다.

유대교와 이교주의의 이런 가혹한 박해는 두 세기 이상이나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힘차게 전파되어서 로마 제국을 비롯하여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영국, 웨일즈 및 어느 곳을 막론하고

소위 문명이라는 것이 존재하였던 모든 곳에 침투해 가고 있었다.

 

교회는 크게 발전하였고 제자들의 수효도 계속 증가되어 갔다.

그러나 어떤 교회는 계속 과오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4. 신약성서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첫 번째의 배교는

그 운영과 교리적인 면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초기의 2세기 동안에 지역 교회들은 급속도로 번성하였고,

초대 교회, 즉 예루살렘, 안디옥, 에베소, 고린도 등의 교회는 대단히 컸으며

예루살렘 교회를 예로 들어 본다면 그 회원은 수천 명,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었고 남자의 수가 약 오천쯤 되더라,

 

5:14 믿는 사람들이 주께 더 많이 더해지니 곧 남자와 여자의 큰 무리더라)

 

 

아마 25천에서 50000, 또는 그 이상의 회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사도행전과 목회서신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라면 바울이 이미

그 당시에도 몇몇 교회들을 바로잡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베드로와 바울 같은 사도들이 미래에 대하여 예언한 것을 보자.

 

(벧후 2:12 그러나 이들은 잡혀서 죽도록 지어진 짐승들 곧 본래 이성이 없는 짐승들 같아서 자기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비방하므로 자기들의 부패 속에서 철저히 멸망을 당하며,

 

20:29-31 내가 이것을 아노니 곧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

30) 또 너희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

31) 그러므로 깨어서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계시록 2:1-29 에베소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있는 이 곧 일곱 금 등잔대의 한가운데를 거니는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또 네가 사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함을 아노니 네가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나 사도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하는 자들임을 알아내었으며

3) 또 네가 참고 인내하며 내 이름을 위해 수고하고 낙심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조금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

5) 그러므로 네가 어디로부터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하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네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네 등잔대를 그것의 자리에서 옮기리라.

6) 그러나 네게 이것이 있으니 곧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그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 한가운데 있는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을 주어 먹게 하리라.

8) 서머나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처음이요 마지막인 이 곧 전에 죽었다가 지금 살아 있는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9) 내가 네 행위와 환난과 궁핍을 알며 (그러나 네가 부유하도다) 또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인 자들의 신성모독을 아노라.

10) 네가 장차 당할 그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에서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넣어 너희를 시험하리니 너희가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하리라. 너는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아니하리라.

12) 버가모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양날 달린 날카로운 칼을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13) 내가 네 행위를 알고 또 네가 거하는 곳을 아노니 즉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안디바가 나의 신실한 순교자가 되어 너희 가운데서 곧 사탄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한 그때에도 나의 믿음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나니 이는 거기에 발람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네게 있기 때문이로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고 또 음행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있거니와 내가 그것을 미워하노라.

16)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내 입의 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감추어 둔 만나를 주어 먹게 하고 또 흰 돌을 그에게 주리니 그 돌에는 새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그 돌을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느니라.

18) 두아디라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눈이 불꽃 같고 발이 정제된 놋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것들을 말하노라.

19) 내가 네 행위와 사랑과 섬김과 믿음과 네 인내와 네 행위를 아노니 마지막 것이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으니 이는 네가 이세벨이라는 그 여자를 용납하기 때문이라. 그녀가 자기를 가리켜 여대언자라 하며 내 종들을 가르치고 꾀어 음행하게 하고 또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는도다.

21) 내가 그녀에게 그녀의 음행을 회개할 여지를 주었으나 그녀가 회개하지 아니하였도다.

22) 보라, 내가 그녀를 침상에 던져 넣을 것이요 그녀와 함께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자기 행실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속에 던져 넣을 것이며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녀의 자녀들을 죽이리니 그리하면 모든 교회가 나는 곧 속 중심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리라. 또 내가 너희 행위에 따라 너희 각 사람에게 주리라.

24) 그러나 내가 너희와 두아디라에 있는 남은 자들 곧 이 교리를 가지지 아니하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사탄의 깊은 곳을 알지 아니한 모든 자들에게 말하노니 내가 어떤 다른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리라.

25) 다만 너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붙잡으라.

26) 이기고 나의 행위를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리니

27) 그가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리며 토기장이의 그릇같이 부수어 산산조각 내리라. 이것은 곧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과 같으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계시록 3:1-22 사데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죽었도다.

2) 깨어서 남아 있으나 죽으려 하는 것들을 강하게 하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완전함을 찾지 못하였나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고 들었는지 기억하고 굳게 붙잡아 회개하라. 그런즉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네게 이르리니 내가 어느 시각에 네게 이를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사데에도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이름이 네게 있어 그들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걸으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들이니라.

5) 이기는 자 곧 그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7) 필라델피아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며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니 그가 열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그가 닫으면 아무도 열지 못하느니라.

8)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지 못하리라.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

1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그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네 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다시는 나가지 아니하리라. 또 내가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고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14)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한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그런즉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므로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니

17) 이는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내가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면서 네 비참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18) 내가 네게 권고하노니 너는 내게서 불로 정제한 금을 사서 부유한 자가 되고 또 흰옷을 사서 입어 네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말며 또 네 눈에 안약을 발라 볼지니라.

19)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런즉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20)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21) 이기는 자에게는 나 역시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왕좌에 앉게 된 것 같이 내 왕좌에 나와 함께 앉는 것을 내가 허락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러한 큰 교회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설교자나 장로(목자)들이 있었다.

 

(20: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니)

 

그런데 그중 어떠한 감독 즉 목사들은

신약성경에서 그들에게 부여하지 않은 권한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작은 교회들에 대하여 권한을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여러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의 기업 위에 군림하기 시작하였다.

 

(요한삼서 1;9 내가 교회에 썼으나 그들 가운데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니)

 

바로 여기에 여러 가지 심각하고도 교회에 해를 끼치는 일들이 싹 텄던 것이다.

 

이것이 가톨릭은 물론 다른 교파들이

오늘 날 실행하고 있는 선교상의 잘못된 방법의 시작이 되었으며,

초대 교회의 민주적인 근본정책과 운영제도와는

전혀 상이한 결과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법은 벌써 제 2세기 말 이전부터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것이 신약 성경적인 교회 제도에서의 최초의 중대한 이탈이었을 것이다.

 

 

5. 또 하나의 결정적인 배교는

역사상으로 제 2세기가 끝나기 전에 시작되었으리라고 생각되는

교리 그 자체에 관한 것이었다.

 

유대 사람들은 이교도들과 마찬가지로

오랜 세대에 걸쳐 의식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아 왔었다.

그들은 모형을 원형으로, 그림자를 실체로, 또 의식을 실체로

구원받는 방도로 여겨 왔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성경에는 침례에 대한 것이 많이 언급되어 있으며,

침례에 관한 의식과 개인의 의무가 많이 강조되어 있다.

그러므로 분명히 침례는 개인의 구원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침례에 의한 중생의 관념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Shackelford pages57;Camp p.47; Ben Benedict, p.286;

Mosheim, Vol.1.p.134; Christian p.28).

 

 

6. 다음에 숨어들기 시작한 중요한 과오는

침례에 의한 중생이라는 관념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결과라 말할 수 있는데

 

어떤 역사가에 의하면(전부는 아니지만) 바로 이와 동일한 시대에

시작되었으리라 생각되는 것으로서

침례의 대상이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잘못된 교회에서

침례를 하나의 구원받는 방법이라고 주장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침례를 일찍이 받을수록 더욱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결과 유아 침례(유아세례)가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전에는 믿는 자만이 침례를 받을 대상이 되어 왔었다.

 

관수례(灌水禮, 물을 무음)

적수례(滴水禮, 물을 뿌림)에 관한 것은 여기에서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훨씬 후에 일어난 일이며,

수세기 동안은 유아들도 일반 사람과 같이

침수례(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아 왔었다.

 

희랍 정교회(가톨릭의 큰 분파)는 금일에 이르기 까지

침례의 근본 형식을 변경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유아 침례를 실시하고 있으나

침수례에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하지 않고 있다.

(: 어떤 교회 역사가는 유아 세례의 시작을 이 세기에 두지만

필자는 로빈슨의 교회에 관한 제 연구에서 짧은 구절을 인용하려 한다.)

 

"처음 3세기 동안 동방에 있었던 모든 교회는,

각각 독립된 지체로써 존속하여 왔으며 정부의 원조도 받지 않았다.

그 결과로써 각 교회에는 어떤 세속적인 권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 당시에는 다 교회에서 침례를 받았던 것이다.

 

제롬(주후 370)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처음 4세기의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와 시리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성인의 침례에 대해서 많은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지만,

370년까지 유아 침례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다".

(Shackelford's Compendiam of Baptist History,

p.43; Vedder, p.51;Christian, p.31; Orchard, p.50, etc).

 

 

 

7. 여기에 기록한 이러한 변화는

하루 동안이나 일 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서서히 되어진 것이며

또한 전체의 교회에서 일어났던 것도 아니다.

어떤 교회들은 그것을 강력히 거부하였으며.

결국 AD 251년에 이 신실한 교회들은

그러한 오류(유아세례)를 받아들이거나

또한 실시하고 있었던 모든 교회와는

성도의 교제를 끊겠다고 선언을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교회 역사상 최초로 공식적인 분리가 일어나게 되었다.

 

 

8. 따라서 기독교 초기 3세기 동안에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세 가지의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이탈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하여 의미심장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니

그 개요를 주의해서 읽기 바란다.

 

감독과 교회 운영 방법이 신약성서의 가르침에서 벗어 난 것.

이 변화는 급속도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였고

교회에 커다란 해를 끼치는 요인이 되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신약성경의 가르침이

"침례에 의한 중생(침례를 받음으로 거듭난다는 주장)"으로 변질된 것.

 

믿는 자들이 받는 공개적인 구원 간증으로서의 침례가

유아 침례도 인정하는 것으로 변질된 것.

(이미 마지막 변화는 다음 세기가 되기까지는 일반적인 것으로 행해지던 것도

아니었고 자주 행하여진 것도 아니었다)

 

 

9. 침례에 의한 구원과 유아 세례.

이 두 가지 과오는 정설이 되어 있는 역사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수 세기를 지남에 따라 다른 모든 과오를 한데 뭉친 것보다는

그리고 최근의 세계 대전을 제외하고는 핍박에 관계없는 모든 전쟁보다도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피를 흘리게 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주로 이 두 가지 과오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암흑시대-12 또는 13세기 동안의 기간만 하더라도

50,000,000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자로서 죽었던 것이다.

 

 

10. 다음 3가지의 의미 깊은 사실들이 이 3세기 기간 중에

많은 교회 가운데 나타나 있음이 역사적으로 밝혀져 있다.

 

모든 교회들의 분리와 독립

 

감독, 곧 목자(pastor)의 종속적 성격(, 한 교회의 종일뿐)

 

믿는 자만의 침례

 

 

 

나는 여기에 루터파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 모세임의 저서에서 인용하기로 한다.

 

 

 

1p.7172

이 황금 시대의 교회 감독이 다음 세기의 감독들과 일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전혀 다른 그 성격을 혼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기와 다음 세기에 있어서의 감독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집에 있었으리라 생각되어지는 단독 교회를 맡아보고 있었으므로

그는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실제로는 교회의 봉사자 또는 종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창기의 모든교회들은 다 독립된 단체였으며

그중 하나도 다른 교회의 관할 밑에 종속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사도 자신들이 세운 교회가 때때로 의문이 있을 때에는

상의하는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재판권이나 지배권,

또는 입법권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모든 그리스도 교회는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점에 있어서 평등한 입장을 존중하고 있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11. 2세기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환란과 무서운 핍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들은 놀랄 만한 발전을 하고 있었다.

대 로마제국의 전 영토를 훨씬 넘어서 당시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즉 전 세계라고는 할 수 없지마는 거의 모든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이다.

 

어떤 교회 역사가들에 의하면 사도들이 조직한 많은 친교회는

여전히 서 있었으며 사도들의 가르침에 충실하였던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아주 뚜렷하고 현저하게 나타난 과오가

여러 교회 안에 숨어들어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되었으며

마침내 어떤 교회들은 대단히 무질서하게 되어 버렸다.

 

 

12. 박해는 더욱더 심하여 갔다.

4세기 초기에 정부로부터 아마 최초의 박해령이 발표되었다.

교회들의 이 놀라운 발전은 로마에 있었던 이교도 지도자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으므로

갈렐리우스 황제는 더욱더 가혹한 박해의 명령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AD 303224일에 일어나 일이다.

이때까지 이교도들은 어떤 일정한 법령없이 박해를 가해 왔었던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13. 그러나 이 칙령은 복음의 성장을 저지 시키려는 그 목적에서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같은 황제 갈렐리우스는 그 후 꼭 8년 만에 (AD 311)

첫 번째 칙령을 철회하고 실제로 신앙의 자유를 용납하는

다른 하나의 법령을 발표했던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을 허용하는 법령이었다.

아마 이것이 교회들에게 유리한 최초의 법령이었을 것이다.

 

 

14. A.D 313년이 시작됨에 따라 교회들은

이교주의에 대하여 압도적인 승리를 얻었다.

 

새 황제가 로마제국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계속하는 이 교회들에게는

반드시 어떤 신비적인 힘이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역사에 의하면 이 훌륭하고도 현실적인 관찰력을 가지고 있었던

이 새 황제야말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콘스탄틴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창공에 있는 불과 같은 빨간 십자가를 보았고

그 십자가 위에 빨간 문자로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로써 네가 정복하라" 그는 이 말씀을 그 자신이 해석하기를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또한 사교(邪敎)를 버리고 복음의 이 신령한 권능을

로마 제국의 세속적인 권력 위에 첨부시킨다면

세계를 쉽사리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는 실상인즉 세계의 종교가 되었고

로마 제국은 전 세계의 제국이 되었던 것이다.

 

 

15. 그리하여 콘스탄틴 황제의 지도 아래

휴전과 구애(求愛) 와 구혼(求婚)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로마 제국이 그 황제를 통하여 교회와의 결혼을 모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그대의 신령한 권능을 우리에게 부여하라.

그러면 우리는 지상의 일시적인 권력을 그대에게 주리라 하는 것이었다.

 

 

16. 이 부정(不淨)한 결혼을 완성시켜서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교회회의(혹은 종교회의)가 소집되었던 것이다.

A.D313년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그 대표자들을 회합시키기 위한

소집 통고가 발표되었다.

전부라고는 할 수 없으나 많은 대표자들이 참석하여 동맹(同盟)을 체결하였다.

 

이리하여 교권제도(敎權制度)가 형성되었다.

이 교권제도가 조직됨에 따라(-다만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에서 추방되었고

콘스탄틴 황제가 교회의 머리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17. 이 교권제도는 마침내 오늘날 알려져 있는 가톨릭, 또는 우주적 교회로

발전될 하나의 뚜렷한 시작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가톨릭이 시작된 것은 일부 감독 및 목자들이

성서에 있지 않은 교회정책 운영에 관한 새로운 관념이

현실화되기 시작하였던 2세기 말이나 3세기 초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8.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콘스탄틴 황제가

그 교회 회의를 소집하였을 때 거기에 응하기를 거부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침례교도)과 교회들이 있었다는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국가와의 혼인관계를 원치 않았으며

중앙집권적인 교회 정치나 또는 개개의 교회 이외에 어떤 종류의

계급적인 교회 이상의 정치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침례교도)과 교회들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가톨릭의 교권제도 속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19. 이 교권제도가 창설되었을 때에 그 통솔자가 되었던 콘스탄틴은

그 자신은 당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었지마는

그와 함께 이 조직체 안에 들어온 그릇되고 무질서한 교회들이

침례에 의한 중생이라는 이 과오를 채택함에 따라

다음과 같은 심각한 의문이 콘스탄틴의 머릿속에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즉 만약 내가 침례로 말미암아 내 죄를 씻고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침례로 말미암아 내 죄를 씻고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침례를 받은 후에 범하게 될지도 모르는 내 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는 후세의 모든 사람들을 당황케 하는 질문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침례는 아직 범하지 않은 죄까지라도 씻어 버릴 수 있는 것인가?

 

또는 침례 받기 전에 범한 죄를 한 가지 방법(즉 침례)으로써

씻어 버릴 수 있으면 침례 받은 후에 범한 죄도

다른 또 하나의 방법으로써 씻어 버릴 수 있을 것인가?

 

 

20. 이와같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의문을 원만히 해결할 수 없었으므로

콘스탄틴은 결국 교회들과 연합하기로 결심은 하였으나

침례만은 자기가 범한 모든 죄를 한꺼번에 시어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해서

죽기 직전에 받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죽기 직전까지 침례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21. 전 로마 제국을 위하여 이방종교를 추방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받아들인 콘스탄틴의 이러한 행동은

오마 원로원의 원망을 사게 되었다.

 

그들은 그의 방침을 저지시키려 하였으며 반대를 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의 반대는 마침내 황제의 보좌를

로마에서 비잔틴 고대의 도시이며 후에는 콘스탄틴에 의하여

콘스탄티노플이라 개칭하게 된 도시로 옮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래서 로마 제국에는 두 개의 수도,

곧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이 새긱게 되었고,

서로 대항하는 이 두 도시는 수 세기 후에는 분열된 가톨릭,

로마 가톨릭과 희랍 정교회를 다스리는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22. 교권제도가 형성되어 교회와 국가가 서로 결합하기 이전에 있었던

교회에 대한 박해는 유대종교와 이교주의에 의하여 행하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중요한 변화가 생기게 되었으니

곧 이름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콘스탄틴은 그리스도인들이 국가 종교라는 그의 새로운 이념에

협조하여 주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가르침에서 멀어져 가는 이 중대한 분리에 대하여

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으므로

그는 이러한 사람들을 복종시키기 위하여 정부의 강권을 발동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쳤던 근본 진리에 충실하였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가혹하고도 참담한 핍박의 세대와 세기가 시작되게 되었던 것이다.

 

 

23. 지금 우리는 주후 300년에서 500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콘스탄틴의 영도 하에 조직된 교권제도는

소위 오늘날 천주교라고 알려져 있는 것으로 급속도로 발전되어 왔었다.

 

새로 발족된 이 교회는 세속적인 정부와 결합하여

이미 신약성경에 완성되어 있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실행기관이 아니라

말씀을 수정 또는 삭제하며

신약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새로운 율법을 제정하는

입법기관이 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24. 이 입법부가 제정한 최초의 법령,

그리고 결과적으로 가장 파괴적인 것의 하나는 유아세례를

법으로써 제정한 것 바로 그것이었다.

 

이 새로운 법률로 말미암아 유아세례는 의무적인 것으로 되어 버렸다.

이는 A.D.416년에 되어진 사실이다.

아마 유아들은 이에 앞서 한 세기 동안이나 세례를 받아 왔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법률이 발효됨에 따라

신약성경에 있는 두 가지의 중요한 가르침이 폐기되었으니

이는 믿는 자의 침례와

자유의사에 의하여 침례를 개인적으로 받으려는 순종이 그것이다.

 

 

25. 이 새로운 교리와 법률의 필연적인 결과로써 이러한 잘못된 교회들은

곧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로써 가득 차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그리 오래지 않아서 회원의 대부분이

중생하지 않은 사람들로써 이루어지게 되었으므로

신령한 하나님의 위대한 영적 사업이

거듭나지 아니한 세속적인 권세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26. 물론 충실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은 이 새로운 법을 거부하였다.

 

믿는 자의 침례

 

물론 신약성경적인 침례만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법이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아이들이 세례받는 것을 거절하였을 뿐 아니라

비성경적으로 조직된 교회에서 침례받는 것까지도 거부하였던 교회의 회원이

성경적인 교회의 회원이 되려고 할 때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체험과 재침례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27. 물론 충성된 교회들의 그 정책은 곧 국가 교회 주의자를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순결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던 많은 사람들의

심한 원망을 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이 칭호는

그때부터 이 새로운 과로를 받아드리기를 거절하였던 충성된 성도들에게는

쓰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이름을 빼앗기고 많은 다른 이름으로,

즉 때로는 어떤 사람에 의하여 때로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써 불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몬타니스트, 터툴리안, 노베이셔니스트, 페이터린 등등,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유아 때에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베푼다는 이유로 아나 밥티스트(재침례파)라 불렀던 것이다.

 

 

28. A.D 426년 곧 유아세례가 법령으로 제공된 지 꼭 10년 만에

암흑시대라 불리는 무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얼마나 무섭고 캄캄하며 피 비린내 나는 시기였는지!!!

이때부터 10세기 이상이나 걸쳐서 충성된 그리스도인들의 발자취는

대부분 그들 자신이 흘린 피 속에서 물들게 되는 것이다.

 

도표에 나타나 있는 박해받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에 유의하시기 바란다.

 

때때로 이러한 명칭은 어떤 특수한 지도자들에 의하여

때로는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사람들에게 붙여진 명칭이라 할지라도

때때로 시대가 다르고 국가가 달라짐에 따라 그 명칭이 변하여 갔던 것이다.

 

 

 

29. 실제로 교황제도가 뚜렷하게 시작된 것은 암흑시대의 초기였으며

이는 A.D. 440년에서 461년에 있었던 레오 2세로 인하여 시작되었다.

그러나 교황이라는 칭호가 사용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천주교 역사와 비슷한 이 칭호는 크게 발전하였으며

이는 296년에서 304년까지 로마에 있었던 감독에게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그리고 384년에서 398년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감독으로 있었던 시리시우스가

공식적으로 이를 채용하였고 그 다음에 레오2세가 (440~461)

정식으로 이를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707년부터는 보편적인 것으로 주장되었고

그 다음 수 세기 후에는 그레고리 7세에 의하여 교황에게 독점사용이 선언되었던 것이다.

 

 

 

30. 이제 이 처음 5세기 동안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을 요약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적인 제도에서 성직자 교회제도로의 점진적인 변화

 

은혜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에서 침례에 의한 구원으로의 변화.

 

믿는 자의 침례에서 유아세례로의 변화

 

교권 제도의 확립. 교회와 국가와의 결혼.

 

황제의 거소(居所)가 콘스탄티노플로 옮아간 것.

 

유아세례가 법령으로써 제정되어 의무적으로 된 것.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한 것.

 

426년에 암흑시대가 시작된 것.

 

복음보다도 검()과 횃불이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 것.

 

신앙의 자유라고 볼 만한 모든 것은 시들어 매장되었으며

매장된 그대로 여러 세기를 지나게 된 것.

 

충성된 신약성경적 교회들은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 우고 있었든지 간에

가톨릭의 새로운 세속적인 권력에 의하여 최후의 곤경에까지 쫓기게 되었다는 것.

 

온 세상에 흩어진 생존자들은 숲이나 산속, 그리고 산 골짜기나 동굴 속에서

그 불안한 피난처를 찾고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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