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독법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고 믿는 것은 틀리는 것 아니다.
다만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필연적으로 성취되는 것과
조건적으로 성취되는 것과의 구별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별이라든가, 지구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대로 필연적으로 성취되리라.
하지만, 국가, 인류, 즉 사람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조건부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 이외의 만물은, 모두 무의적인데 대하여,
사람만은 유의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라 해도, 그 뜻을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고, 또 결코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여, 이를 존중하신다.
마치 현명한 부모가, 그 자녀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하여 예언하시는 것은, 사람의 운명을 정한 연후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으로 정하지 않으시고, 또 악으로 정하지 않으신다.
사람에게는 의지의 자유가 있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환영하여 선할 수 있고,
또 이에 거슬려 악할 수가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악(善惡), 어느 것으로 정 하셨다면,
선인은 선인이 아니고, 악인은 악인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고, 선악의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서는 분명히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성서의 예언을 읽음에 있어서 이것을 유의하지 않으면, 그 진의를 놓칠 위험이 있다.
즉 사람에 관한 예언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일이다.
인사는 모두 조건부이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애굽기 20:5-6 한글 개역)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우(처우)하시는 길이다.
벌도 은혜도,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 따라 내리는 것이다.
이것을 가장 분명히 가르쳐 주는 것이, 신명기 제 28장이다.
모세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말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 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네 대적들이일어나 치려하며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길로 너를 치러들어 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신명기 28:1-8 한글 개역)
청종하면 축복, 또 축복, 또 축복을 주시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청종치 않으면, 이 여러 가지 저주가 네게 임하리라는 것이다.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공구와 견책을 내리사
망하여 속히 파멸케 하실 것이며.'(신명기 28:15-20 한글 개역)
청종(순종)하지 않으면, 저주, 또 저주, 또 저주이다.
여기서 축복의 예언에 덧붙여 저주의 예언이 있다.
이자 어느 것이 성취될 것인지는,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다.
'너는 땅의 여러 나라에서 학대를 받으리라'(신명기 28:25 일역하반)고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정해진 운명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것을 피할 수가 있었다.
바벨론의 포로 생활(포수)은 이스라엘 역사에 없어도 될 일이었다.
가열 모든 예언자가 이것을 예언했다고 해도,
이스라엘은 포로 되어 바벨론에 가서 70년 동안 학대받을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같은 일이, 앗시리아(앗수르-2권 195p 주) 제국을 대표하는 니느웨 시에 대해서도 말해지고 있다.
많은 예언자가 니느웨의 복멸에 대해 예언했다.
예언자 나훔 같은 이는, 이것이 그의 예언의 유일한 제목이었다.
하지만, 니느웨 일지라도 그 복멸은 필연적이 아니고, 조건부였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하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니느웨일지라도 이것을 복멸로 정하지 않으셨다.
이것의 복멸(멸망)을 면함의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그 임무를 담당했던 이가 예언자 요나였다.
요나가 큰 성읍 니느웨에 가서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멸하리라(무너지리라)'고 외치니,
니느웨 사람은 왕에게 짐승에 이르기까지 금식(단식)을 행하여 회개를 표시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 하시니라'(요나서 3:10 참조)고 있다.
'백성이 돌이키매 하나님도 또한 돌이키셨다'는 것이다.
실로 특이한 말씀이다. 하지만 진리이다. 사실이다.
하나님께 뉘우쳐 돌이키심이 없다고 우리는 단언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를 벌하려고 생각한 때, 사람이 자기 죄를 뉘우치면,
하나님도 또한 처벌의 생각을 뉘우쳐 이것을 철회하신다고 한다.
사람의 위대성은 여기에 있다.
그는 마음을 바꿈으로서, 하나님의 마음(뜻)까지도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예언자 아모스는 대담하게 이것을 진술하여 말했다.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아모스서 7:3-6 한글 개역)고.
하나님의 예언은 절대적 불변의 것은 아니다. 조건부의 것이다.
사람의 의지와 행위로써 이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예언은 약속 또는 경고로서 읽어야 할 것이다.
불변적 고시로서 해석할 것이 아니다.
*내촌감삼의 (1930년 4월 '성서지연구')을 참조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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