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팔 년 된 병자를 고치시다 2
성 경:
[요 5:13-18]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 5:13]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
예수님이 그 병자를 고치신 뒤에,
많은 병자들이 고침 받기를 원하여 그에게로 모여들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 자리를 피하셨다.
그는 병 고쳐 주심보다 복음 전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병 고침 받고 믿는 것보다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을,
그는 더욱 원하신 것이다.
[요 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 이 구절에 대하여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 그 고침 받은 자의 병들었던 원인이 그의 어떤 특별한 범죄에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죄를 다시 범치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Luther).
이 해석에는 난제가 있으니,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치심 말씀 중에는,
어떤 질병의 원인을 특수한 죄악에 돌리지 않은 사실이다.
(요 9:1-3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나 성경은 다른 한편,
어떤 질병의 원인이 사람의 특수한 죄악이라고 하므로
(민 16:46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우리는 이 해석을 옳게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보다는 다음 해석을 더욱 적합하다고 본다.
(2) 여기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의 헬라 원어는,
"이 이상 더 범죄를 계속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의 38년 전의 범죄(처음에 그가 병든 원인)를
염두에 두신 것이 아니고,
38년 동안 병 중에서도 계속 범죄 하던 것을 염두에 두신 것이다.
크로솨이데(Grosheide)는,
이것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지 않는 그의 죄악을 가리킨다고한다.
(Maar de man leefde nu in zonde,
had zich niet aan den Heiland gegeben.-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P.352).
그렇다면, 여기 "더 심한
것"은 영적 형벌을 가리켰을 것이다.
* 참조 (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44)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위의 예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중대한 뜻을 보여준다.
(1) 예수님께서 친히 38년 된 병자의 과거의 죄악들을 모두 다 용서하여 주신 사실,
(2) 그가 그 고침 받은 자의 성화(聖化)를 요구하신다는 사실,
(3)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성화를 힘쓰지 않는 자는,
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히 2:2-3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그러므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의미심장하다.
그 고침 받은 자는 그 말씀에서 살아야 되며,
그 한 마디 말씀이 늘 그의 심령에 살아 있어야 된다.
루터(Luther)는 말하기를,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은,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것을 권장한다.
곧,
사람이 마땅히
그리스도의 충족성을
믿어야 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dass man an die Genugtuung
Christi glauben soll.-Evangeliem Auslegung, 4,P.206).
[요 5:15-16]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
그 병 고침 받은 자가 저렇게 보고한 것은
예수님을 배반하는 의미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공적으로 핍박하기는
여기 이 사건에서부터이다(Bernard).
"핍박하게 된지라."
이 말은 핍박하기를 계속한다는 뜻이다.
이 사건에서도 예수님은,
남들을 대신하셔서 항상 고난을 받으신 분으로 드러난다.
그는 병자를 고쳐 주셨고,
그 자신은 그 일 때문에 고난을 받으신다.
[요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
하나님 아버지께서 천지 만물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셨다는 것은,
(창 2:2-3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결코 하나님의 무활동을 의미하지 않고,
그의 창조 역사에서 쉬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대로 그가 계속하여 만물유지와 구원과 심판의 역사를 하신다.
그와 같이,
예수님도 구원과 심판의 역사를 하신다는 것이,
5:17,19-30에 나타난 변론이다.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9-30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그가 이와 같은 일을 하신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등 되신 증표이다.
예수님의 이 변론을 들은 유대인들 자신도 그의 변론을 가리켜,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그가 하나님과 동등이란 의미의 변론이라고 하였다.
(18절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예수님의 하신 일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이신 그로서 안식일에 오히려 하실 만한 것이었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안식에 속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안식은 사람의
활동 능력을
정지시킴이 아니고,
보다
참된 일로
돌림이다"라고 하였다.
(Asleep in Jesus, P.55).
[요 5:18]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
"이를 인하여"
란 말은,
위의 17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유로 함을 가리킨다.
곧,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신 것과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므로 자기도 일하신다는(하나님과 자기는 동등이라는 의미)
말씀을 이유로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은혜로운 계시(啓示)를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 때문에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가장 요긴한 점을 반대한 셈이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것은,
특수한 의미에서 아들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만이 저런 특수한 아들,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내 아버지"
라고 하셨고,
"우리 아버지"
라고는 하지 않으셨다.(Zahn).
독생자란 말은,
예수님의 영원 자존의 신자격을 가리킨다.
3:16, 18; 요일 4:9
을 보면,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독생자 되도록 보내신 것이 아니고,
독생자를(화육 전에도 이미 독생자였음)
보내셨다고 한 까닭이다.
독생자가 독생자 되심은,
역사상의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고 우리로서 측량하기 어려운 영원(永遠)에 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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