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제6장의 대의
요한복음 해석의 열쇠는
그 서문 즉,
1장 1절에서 5절까지에 있다.
'처음에
도(말씀)가 있었다.
도는 하나님과
상대하여 있었다.
도는 즉
하나님이었다.
이 도는
하나님과 상대하여
있었다.
만물 그에
의해 창조되었다.
창조된 것으로서
하나라도 그에
의하지 않고서
창조된 것은
없었다.
그에게 생명이
있었다.
이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빛은 어두움에
비쳤다.
하지만 어두움은
이것을 알지
못했다'
'도'
(말씀)는 만물의 영이다.
그러므로 우주가 있기 전에 하나님과 상대해 있었던 이로서,
그 자신이 하나님이시다.
이 영에 의해 만물은 창조되고,
하나라도 그에 의하지 않고서 창조된 것은 없다.
이 영이 육체를 취하여 나타나신 이가 나사렛의 예수이시다.
그는 생명의 근원이셨다.
실로 생명 그것이었다.
생명이시고 또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두운 이 세상을 비추셨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비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슬퍼해야 할 일로는
어두움에 빠진 이 죄의 세상은
빛을 빛으로서 인정하지 않았다고.
요한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것이다.
다시 이것을 요약하여(간추려)
말한다면,
예수에 대해 다음의 3대 사실을 말하려 했던 것이다.
제1,
예수는 하나님이시고 만물의 창조주이시라는 것
제2,
그는 생명이시며 또 빛이시라는 것,
제3,
그의 체현하심을 보고도,
세상은 그를 받지 않고,
도리어 그를 배척한 것.
주의하여 요한복음을 읽는 자는,
그 각 장에 걸쳐 이상의 3대 사실의 실증을 보는 것이다.
언제나 난해로서 일컬어지는 요한복음 제6장도,
이것을 마음에 두고서 읽는다면,
해득하기 어렵지 않은 것이다.
즉,
저자가 목적으로 하는 예수에 관한
이상의 3대 사실을 표명하는 것으로 보고,
그 의미를 찾기는 어렵지 않은 것이다.
요한복음은 신약성서 중에 있어서 가장 조직서 있는 글(책)이다.
일정한 취향(taste)은 그 전편을 통해 관철하여 있는 것이다.
그 제6장도 또 이 취향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예수는 만물의 창조주라는 것은,
이 장에 기록된 둘(혹은 셋)의 기적에 의해 명시되었다.
예수는 조금의 빵과 물고기를 배증하여 이것으로서
대충 5천인을 먹게 하신 것에 의해,
그가 분명히 만물의 창조자이심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만물이
그에 의해
창조되고, 창조된 것으로서
하나라도 그에
의하지 않고서
창조된 것은
없다'(요1:3)는 것은,
이 기적에 의해 잘 증명된 것이다.
예수는 여기서
그가 만물의 창조주이심의 자격과 실력을 표명하신 것이다.
이 기적이야 말로,
이는 처음부터 하나님과 상대하신 분,
즉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신이신 예수에게 있어서는 아주 쉬운 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예수,
빵을 가지사,
기도하시고 제자에게
주시니,
제자 이것을
앉은 사람들에게
주니라'(6:11)고 있다.
그동안에 아무런 떠들썩거림은 없다.
수선스러운 바는 없다.
놀라운 기적은,
고유히 아주 쉽게,
아무런 노력도 요하지 않은 듯이 행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때는 이러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가
말씀하시니 되어졌다'(시편33:9)고 있다.
사람이 물건을 만드는 때에 소음이 많다.
제조장의 연기가 오른다.
그 기계가 돌아간다.
제조인은 땀을 흘리면서 일한다.
성대하게 제품을 광고한다.
시끄럽게 떠들썩거리며,
사람은 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에 반하여,
자기 자신 안에 모든 능력을 보유하신 하나님은,
사물을 만드시려 할 때 곧 이를 만드시는 것이다.
그는 천연의 순서를 따름의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말하고자 할 때 말하듯,
하나님은 만들고 자 할 때,
만드시는 것이다.
'예수,
빵을 가지사
기도하시고 제자에게
주시니'라고 있다.
실로 하나님다운 행위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놀라운 기적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당연한 행위이다.
그리고 예수는 여기서 이 행위로 나오심으로서,
그가 참으로 하나님이신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
빵을 지으시고 또 고기를 지어,
자신이 만물의 창조자이심을 증거 하신 후에는,
예수는 다시 수상에 보행하시고 배를 나아가게 하시어,
그가 우주의 주재자이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일리(한국)쯤 저어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았다'(요6:19)
고 있고,
또
'그가
배에 오르시매,
(배는) 곧 그
가려하는 땅에
닿았다'(요6:20)고 있다.
천연의 주는 천연의 법칙에 매임 없이 이것을 지배하신 것이다.
그는 수상을 보행하시어 그 삼킨 바로 되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는 바람과 노(oar)에 의함 없이 배를 나가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불가사의(a
wonder)라면 불가사의(기적)이다.
하지만 '만물이 그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하신
그 분의 행위로서는 결코 이상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를 목격했기에 만이,
요한복음의 기자는 말한 것이다.
'말씀(도)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도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실로 아버지께서
낳으신 외아들(독자)의 영광으로서,
은혜와 진리(참)로 가득하더라'(1:14)고.
예수께서 하신 기적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의 증거였다.
그 영광의 표현이었다.
처음에 하나님과 상대하여 계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이가,
인류의 구원 주로서 세상에 나타나신 표적으로서,
이러한 기적을 행하신 것이다.
예수는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우주의 주재자이시다.
이는 요한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첫째이다.
그리고 그 제6장에 있어서는,
이것은 두 가지의 기적으로서 명시된 것이다.
빵과 물고기와의 배증의 기적과,
수상보행,
단정(a
boat) 착안의 기적으로서,
보여주셨던 것이다.
다음에 명시될 것은 예수께서,
생명과 빛 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가 생명이심이 특히 명시된 것이다.
그가 빛이신 것은,
다른 기적에 따라 다른 곳에서 명시되셨던 것이다(요한복음 제9장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생명을
세상에 주는
것이다'(요6:33)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생명의
빵이라고'(요6:35)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요6:41)
'나는
생명의 빵이라'(요6:48)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참으로 너희에게
고한다. 만약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생명
없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
있도다.
내가 끝
날에 이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6:53-54)
이렇게 하여 예수는 생명이시라는 것이 허다한 방면에서 서술되었던 것이다.
생명은 예수에 있어서(예수 안에)
있는 것이다.
그를 떠나서 생명은 없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빵이시다.
생명의 빵이시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빵이시다.
그리고 그를 먹음으로서 영세가 있다.
부활은 그로 말미암아서만 행해지는 것이라고.
일은 거의 지나치게 세밀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까지 면밀하게 진술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 무익한 중복이라고는 일언도 없는 것이다.
실로 생명은 모든 방면에서 절연하게 서설된 것이다.
특히 생명의 정점이라고도 칭해야 할 부활에 대하여 서설된 것이다.
'내가
끝 날에
이를 다시
살릴 것이라'고.
예수는 세 번 거듭 여기서 말씀하셨던 것이다.
*내촌감삼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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