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에 대한 예언
성 경: [사 21:1-10]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남방 회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주께서 가라사대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매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3)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임산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내게 임하였으므로 고통으로 인하여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4) 내 마음이 진동하며 두려움이 나를 놀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방백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6)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 보는 것을 고하게 하되
7)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떼와 약대떼를 보거든 자세히 유심히 들으라 하셨더니
8)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섰었고 밤이 맞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9)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그가 대답하여 가라사대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 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숴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10) 너 나의 타작한 것이여 나의 마당의 곡식이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고하였노라.
[사 21: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남방 회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 '해변 광야'는 바벨론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이다.
(9절 보소서, 사람들의 병거가 두 명의 마병과 함께 여기로 오나이다, 하매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바빌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그녀의 신들을 새긴 형상들을 그분께서 다 부수어 땅에 던지셨도다, 하더라)
아라비아 사막의 남단 대평원에 위치한 초기의 바벨론은 세미라미스(Semiramis)가 댐을 쌓기 전까지는, 아비데누스(Abydenus)가 '마치 바다 처럼 보인다'고 말했을 정도로, 범람하는 유브라데 강물에 자주 침수되었다(Alexander).
그러나 '해변 광야'란 상징적인 이름에는 물에 잠겨 있는 바벨론의 지형 조건만이 아니라,
그 모습을 통하여 선지자가 미리 내다본 바, 바벨론의 궁극적인 운명의 불길한 전조까지
내포되어 있다(Delitzsch)
(14:23 또 내가 그곳을 해오라기의 소유가 되게 하며 물웅덩이가 되게 하고 멸망의 빗자루로 쓸어버리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렘 51:13 오 많은 물들 위에 거하며 보물이 풍부한 자여, 너의 끝 곧 너의 탐욕의 한계가 이르렀느니라).
그것이 선지자의 환상 속에서 점점 구체화 된다.
▶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남방 회리바람같이 몰려 왔도다 - 바벨론에 임할 재난은 광대한 아바리아 사막에서 급속도로 불어오는 태풍에 비유된다.
이 태풍의 무서움에 대한 성구들,
(욥 1:19 보소서, 광야로부터 큰 바람이 와서 그 집의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집이 그 젊은이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여 주인께 고하나이다, 하더라;
37:9 남쪽에서는 회오리바람이 오고 북쪽에서는 추위가 오며;
렘 4:11 그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향한 말이 있어 이르기를, 광야의 높은 곳들에서 건조한 바람이 나와 내 백성의 딸에게 다가온다, 하리니 이것은 키질을 하려 함도 아니요, 깨끗하게 하려 함도 아니며;
13:24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광야의 바람에 의해 사라지는 지푸라기같이 흩으리로다;
호 13:15 그가 비록 자기 형제들 가운데서 열매를 맺을지라도 동풍이 오리니 곧 주의 바람이 광야에서 올라오매 그의 근원이 마르고 그의 샘이 말라 버리리라. 그가 모든 아름다운 그릇의 보물을 노략하리라;
슥 9:14 주께서 그들 위로 나타나 보이시고 자신의 화살을 번개같이 나아가게 하시며 주 하나님께서 나팔을 부시고 남쪽의 회오리바람과 함께 가시리로다).
광야 곧 두려운 땅에서 오리라고 예언된 적병은 다음 절에 나오는 엘람과 메대인들을 가리킨다.
[사 21: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주께서 가라사대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매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 혹독한 묵시 - 이는 '묵시'(חָזוּת 하주트)의 내용 자체가 견딜 수 없이 무겁다(קָשָׁה 카샤)는 뜻이다.
▶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 옛 주석가들은 본문을 포악한 바벨론 군주들에 대한 묘사로 본다.
이에 따르면, 바벨론이 왜 멸망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선지자가 여기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본문을 바벨론의 침략자들에게 적용시킨다.
두 가지가 다 문법적으로 가능하나 후자를 취한다(Alexander).
▶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 '올라가고 에워싸라'는 말은 바벨론에 대한 공격 명령이다. 이 명령은 엘람과 메대에게 주어졌다.
'엘람'은 현재의 이란 남부에 해당하며 바사 제국을 가리킨다.
'엘람'은 히브리인들에게 잘 알려진 반면,
(창 14:1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민족들의 왕 디달의 시대에),
'바사'는 그때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바사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엘람은 후에 바사에게 합병되었다.
바사와 메대는 B.C. 539년 고레스 왕의 주도하에 바벨론을 정복하였다.
'메대'에 대하여는,
(사 13:17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내가 격동시켜 그들을 치게 하리니)
(사 13:17에 처음으로 약탈자들로 메대 사람들의 정체가 제시된다.
메대인들은 아리안족의 후손으로서 소금 사막(the Salt Desert)과 페르시아,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저지대 사이에 있는 이란 북서부의 고원 지방에 거주하였으며, 성경 기록으로는 창 10:2에 처음 나온다.
(창 10:2 야벳의 아들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이들은 오랫동안 앗수르의 시달림을 받아왔으며 특히 사르곤 왕 때에는 부족의 일부가 점령당하여 일단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메대의 여러 마을에 강제로 이주되기도 하였다.
(왕하 17:6 호세아의 제구년에 아시리아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아시리아로 끌어다가 할라와 고산 강가의 하볼과 메대 사람들의 도시들에 두었더라).
선지자가 이 예언을 할 당시만 해도 메대는 앗수르의 지배를 받는 미약한 세력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본래 호전적인 그들은 B.C. 714년경에 독립된 나라를 형성하였으며 그로부터 1세기 뒤에 바벨론과 함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공략하기도 하였다(B.C.612년).
B.C. 539년, 메대-바사 연합군이 바벨론을 점령한 사실에 기초하여 일군(一群)의 학자들은
본문이 그 후에 기록되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맞다면 후대의 작가가 본문을 작성할 때, 바벨론 점령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바사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선지자가 본문에서 바사 대신 메대만을 언급한 것은 아마도 그들이 당시 사람들에게 광포하기 그지없는 사나운 민족들로 알려졌었기 때문일 것이다(Oswalt, G.W.Grogan).
이사야 선지자 당대에 엘람과 메대가 바벨론의 연합국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그의 묵시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이러한 혜안(蕙眼)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영감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에 틀림없다.
[사 21:3-4]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임산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내게 임하였으므로 고통으로 인하여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4) 내 마음이 진동하며 두려움이 나를 놀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전절의 '혹독한 묵시'는 선지자에게 두 가지 신체적인 반응, 즉 극심한 요통과(3절), 마음의 진동(4절)을 야기 시켰다.
포로기의 선지자들이 바벨론의 몰락을 환호한 데 비하면, 본문에 묘사된 선지자의 반응은 다소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카이저(Kaiser)는, 이 같은 표현은 선지자들이 자기 계시의 엄중함을 부가시키기 위하여 즐겨 사용하는 수사학적인 기교라고 설명한다(Oswalt).
(15:5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으리로다. 그의 도망자들은 삼 년 된 암송아지인 소알로 피하리니 그들이 울면서 루힛의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멸망의 부르짖는 소리를 내리로다;
16:9 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과 더불어 십마의 포도나무로 인하여 애통하리라. 오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내가 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네 여름철 열매와 네 수확으로 인하여 크게 외치는 소리가 땅에 떨어졌도다,
11 이러므로 내 속 중심이 모압으로 인하여 하프처럼 소리를 내며 내 속 중심부가 길하레셋으로 인하여 그리하리로다;
겔 21:6-7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아, 너는 허리가 끊어지게 탄식하며 그들의 눈앞에서 비통하게 탄식하라.
7)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네가 탄식하느냐? 하면 너는 대답하기를, 소식 때문이니 곧 그것이 임하기 때문이라. 모든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게 되고 모든 영이 기진하며 모든 무릎이 물같이 약하게 되리라. 보라, 그것이 임하며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하라;
단 10:2-3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온전히 애곡하며
3) 세 이레를 다 채우기까지 좋은 빵을 먹지 아니하고 고기와 포도즙을 입에 대지 아니하며 몸에 전혀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반면에 칼빈(Calvin)은, 자기가 본 것을 백성들에게 생동감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선지자가 자신을 바벨론과 동일시하여 마치 배우처럼 자신을 입을 통해 바벨론의 참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느 쪽을 취하든지, 묵시의 혹독함이 간접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 본문의 히브리어 'חַלחָלָה 할할라'는 '춤추다', '꼬이다'는 뜻의
'훌'에서 파생된 명사로, 몸부림치는 고통을 의미한다.
(겔 30:4 이집트 위에 칼이 임하고 죽임 당한 자들이 이집트에서 쓰러질 때에 큰 고통이 이디오피아에 있으리라. 그들이 그녀의 무리를 빼앗아 가며 그녀의 기초를 허물 것이요,
9 그 날에 사자들이 나를 떠나 배로 나아가서 염려 없이 지내는 이디오피아 사람들을 두렵게 하리니 이집트의 날에 이루어진 것과 같이 그들에게 큰 고통이 임하리라. 보라, 그것이 임하는도다).
선지자는 이 고통을 '임산한 여인의 고통'(치림)으로 비견한다.
(13:8 그들이 무서워하고 산고와 고통에 사로잡혀 해산하는 여자같이 아픔을 느끼며 서로를 보고 놀라며 그들의 얼굴은 불꽃같이 되리로다).
▶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 '희망의 서광'(네쉐프 히쉐키)은 직역하면 '나의 기쁨의 저녁'이니, 한 날의 근심을 벗고 안식하리라고 기대되었던 저녁 시간조차 두려움의 때로 변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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