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2
성 경: [사 22:7-14] 병거는 너의 아름다운 골짜기에 가득하였고 마병은 성문에 정렬되었도다
8)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이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9) 너희가 다윗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래 못의 물도 모으며
10)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11) 너희가 또 옛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를 존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2)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13)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가라사대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22:7] 병거는 너의 아름다운 골짜기에 가득하였고 마병은 성문에 정렬되었도다 -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골짜기마다 적들의 병거가 가득하고, 성문 앞에는 마병이 정렬해 있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에서 예루살렘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다고 아니할 수 없다.
[사 22:8]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이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 직역하면 '그가 유다의 베일(מָסָךְ 마사크)을 벗기매'이다.
'마사크'는 사람의 눈을 가려 보지 못하도록 하는 무엇을 뜻하는데,
(출 26:36 또 너는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과 가늘게 꼰 아마 실로 바느질을 해서 장막 문에 달 현수막을 만들고;
민 4:5 진영이 앞으로 나아갈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와서 덮는 휘장을 걷어 내리고 그것으로 증언 궤를 덮고;
삼하 17:19 여인이 뚜껑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펴 놓으매 그 일이 알려지지 아니하니라;
시 105:39 그분께서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는 불을 펴사 빛을 주셨으며;
고후 3:15-16 이 날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베일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도다.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주께로 돌아서면 그 베일이 벗겨지리라),
여기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무지의 베일로 해석함이 가장 무난하다(Alexander, Leupold).
하나님께서 그들을 깨우쳐 주심으로 백성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 속에 놓여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이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회개하도록 하는 데까지는 이르게 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병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사 22:9] 너희가 다윗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래 못의 물도 모으며
▶ 아래 못의 물도 모으며 - 포위당했을 때를 대비하여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아래 못'은 시온 산 서쪽 맞은편 힌놈 골짜기에 아직도 남아 있는 저수지를 가리키는 듯하다.
[사 22:10]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 성읍 내의 가옥을 계수함은 그것을 헐어내기 위함이요, 그것을 헐어냄은 성벽을 견고케 하는 데 필요한 건축 재료를 얻기 위함이다.
(9절 또 너희가 다윗의 도시의 무너진 곳이 많음도 보고 아래 연못의 물도 함께 모으며;
렘 33:4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 도시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 곧 쌓아 올린 산들과 칼로 말미암아 무너진 집들에 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사 22:11] 너희가 또 옛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를 존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를 존경하지 아니 하였느리라 - 선지자는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백성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행위의 이면에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이 없음을 질책하는 것이다.
'앙망하다'와 '존경하다'는 히브리어로 'נָבַט 나바트 바라보다'(의지하다)는 뜻이다.
'이 일을 하신 자'(오세야)와 '이 일을 경영하신 자'(요체라)는 문자적으로는 각각 '그것을 만드신 자'와 '그것을 빚으신 자'인데, 이는 유다 앞에 놓인 위기를 조성하신 분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하나님께 돌아옴이 없이는 그들이 어떤 자구책을 강구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사 22:12]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 예루살렘 성읍 앞에서 벌어진 이러한 일련의 위기 상황들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경고요, 부르심이었다. 이것은 백성들이 특별히 깨닫기 어려운 것도 아니며, 올바른 지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능히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통고하며 애호함'은 가슴을 치고 우는 것이니, 하나님을 거스려 범죄하였음을 뉘우치는 행위이다.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띰'은 회개의 외적 증거로서 동방에서 널리 시행되어 온 관습이었다.
(15:2-3 그가 울려고 바잇과 디본으로 곧 산당들로 올라갔으니 모압이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 울부짖으리라. 그들의 머리는 다 대머리가 되고 사람마다 수염을 깎으리니
3) 그들이 자기들의 거리에서 굵은 베옷으로 몸을 두르고 자기들의 집 지붕과 거리에서 저마다 울부짖으며 크게 울리로다).
'굵은 베'(שַׂק 사크)는 슬픔의 날에 입는 굵은 삼베옷을 가리킨다.
(3:24 그때에 썩은 냄새가 향기로운 냄새를 대신하며 찢어진 천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잘 박힌 머리털을 대신하며 굵은 베옷이 화려한 가슴 옷을 대신하고 불탄 것이 아름다움을 대신하리라;
창 37:34 야곱이 자기 옷을 찢고 허리에 굵은 베를 두르고 여러 날 동안 자기 아들을 위하여 애곡하니라;
에 4:1 모르드개가 이루어진 모든 일을 깨닫고는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재를 뒤집어쓰고 도시 한가운데로 나아가 큰 소리로 비통하게 부르짖으며;
욘 3:6 말이 니느웨 왕에게 이르매 그가 자기 왕좌에서 일어나 자기 몸에서 옷을 벗어 내려놓고는 굵은 베옷으로 몸을 덮고 재 속에 앉았더라).
[사 22:13]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 그러나 회개에의 기대는 깨어졌다.
백성들은 미래의 재난 앞에서 찰나적인 쾌락으로 일관하였다.
참고로 니느웨가 보인 반응과 비교해 보자.
(욘 3:6-9 말이 니느웨 왕에게 이르매 그가 자기 왕좌에서 일어나 자기 몸에서 옷을 벗어 내려놓고는 굵은 베옷으로 몸을 덮고 재 속에 앉았더라.
7) 또 그가 왕과 왕의 고관들의 칙령으로 니느웨 전역에 선포하고 널리 알리게 하며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가축 떼나 양 떼나 어떤 것도 맛보지 말지니라. 그들이 먹지도 말고 물을 마시지도 말며
8) 사람과 짐승이 굵은 베옷을 입고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참으로 그들이 각각 자기의 악한 길과 자기 손의 폭력에서 떠날지니라.
9) 하나님께서 돌아서시고 뜻을 돌이키사 자신의 맹렬한 분노에서 떠나심으로 우리가 멸망하지 아니할는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라).
그들의 행위는 미래를 상실한 데서 오는 자기 파멸적 경향성일 수도 있고, 또는 '선지자가 내일 죽는다고 하니 그 말을 존중해주는 의미에서라도 오늘만큼은 실컷 즐기며 놀자'는 조롱의 표현일 수도 있다.
내일은 없으며 따라서 인생에는 영원한 것도, 가치있는 것도 없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은 먹고 마시는 쾌락의 한 순간으로만 존재한다.
그들의 눈에는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며 자기 부정과 희생의 길을 걸어가는 신앙인의 삶은 얼마나 기이하고 또 어리석게 보일 것인가.
(고전 15:19 만일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사는 동안에만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는다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니라,
32 내가 사람들의 방법대로 에베소에서 짐승들과 싸웠을진대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내일 우리가 죽을 터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자)
[사 22: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가라사대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 회개하기를 거부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절대로 맛볼 수 없음을 엄숙히 선고하는 말이다.
'속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파르'는 본디 '덮다', '가리다'는 뜻이다.
구약 시대에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뿌려진 황소와 염소의 피는 백성들의 죄를 없이 하지 못하고 다만 일시적으로 가리울 뿐이었으므로 해마다 반복될 필요가 있었다.
(히 10:3-4 그러나 그 희생물들에는 해마다 죄들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함이 불가능하니라).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제물로 바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으로 이 같은 필요가 소멸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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