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적들에 대한 여호와의 경고 2
성 경: [사 33:17-24] 너의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
18) 너의 마음에는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여 내리라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공세를 칭량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망대를 계수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19) 네가 강포한 백성을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그 백성은 방언이 어려워서 네가 알아 듣지 못하며 말이 이상하여 네가 깨닫지 못하는 자니라
20)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21)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곳은 마치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넓은 하수나 강이 둘림 같을 것이라
22)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23) 너의 돛대 줄이 풀렸었고 돛대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였었고 돛을 달지 못하였느니라 때가 되면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
24)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사 33:17] 너의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 - 선지자는 계속해서 앞에서 말한 경건한 신자들을 향해 그들이 누릴 풍요한 미래의 모습을 말한다.
(17-24 네 눈은 아름다움 가운데 있는 왕을 보며 그들은 매우 멀리 있는 땅을 바라보고
18) 네 마음은 두려움을 묵상하리라.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돈을 받던 자가 어디 있느냐? 망대를 세던 자가 어디 있느냐?
19) 네가 사나운 백성을 보지 아니하리니 그 백성은 네가 능히 알지 못하는 어려운 말을 하며 더듬거리는 혀를 사용하므로 네가 깨닫지 못하리라.
20) 우리의 엄숙한 것들을 지키는 도시 시온을 바라보라. 네 눈이 평온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볼 터인데 그것은 곧 무너져 내리지 아니할 장막이니라. 그곳의 말뚝 하나도 결코 뽑히지 아니하며 그곳의 줄 하나도 결코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21) 오직 거기에서는 영광스런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은 강과 시내가 있는 장소가 되실 것이요, 그 안에서는 노를 젓는 큰 배나 화려한 큰 배가 옆으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22) 주께서는 우리의 심판자시요, 주께서는 우리에게 법을 주시는 이시요, 주께서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23) 네 밧줄이 풀렸으므로 그들이 능히 자기들의 돛대를 강하게 하지 못하고 돛을 펴지 못하였도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큰 노략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다리 저는 자도 그 탈취물을 취하고
24) 또 그 거주민은 이르기를,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하리라. 그 안에 거하는 백성들이 자기 불법을 용서받으리라).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여기 언급된 '왕'(מֶלֶךְ 멜레크)이 히스기야 왕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히스기야 왕은 유다의 위기 상황에서 찢긴 의복과 삼베 옷을 입은 수치스런 모습을 보였으나,
(37:1 히스기야 왕이 그것을 듣고는 자기 옷을 찢고 스스로 굵은 베를 입고 주의 집에 들어가)
위기가 끝나고 적들이 물러간 이후에는 다시 존귀의 위엄을 회복한 영광스런 모습으로 백성들 앞에 나타날 것이다(Delitzsch, Alexander).
그러나 이것을 배타적으로 히스기야 왕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 않다. 왜냐하면,
(1) 동일한 문맥 속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분명히 묘사하고 있으며,
(22 주께서는 우리의 심판자시요, 주께서는 우리에게 법을 주시는 이시요, 주께서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2) '왕' 앞에 관사가 붙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선지자가 역사상의 특정한 왕뿐 아니라 이상적인 왕을 염두해 두고 있음을 시사하며,
(3) 히스기야 왕이 다스렸던 협소한 영토와 본문에 언급된 '광활한 땅'과는 문자적인 의미에서는 잘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히스기야 왕은 메시야의 모형으로서 거론되었다는 견해를 취한다(Calvin).
[사 33:18-19] 너의 마음에는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여 내리라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공세를 칭량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망대를 계수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19) 네가 강포한 백성을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그 백성은 방언이 어려워서 네가 알아 듣지 못하며 말이 이상하여 네가 깨닫지 못하는 자니라 -
구원받은 백성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그들이 겪었던 두려웠던 순간들을 회고하게 될 때, 그들은 말할 수 없는 희열과 감격 속에서 승리의 환호성을 터트리게 될 것이다.
'지난날 우리를 그토록 괴롭히던 자들은 지금 어디 있느냐?...어디있느냐?‘
* 참조 ; (고전 1:20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15:55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한때 공물과 전리품들을 계산하고 장부에 기입하던 서기들과 그 공물을 저울에 달아 무게를 재던 관리들과 탑(망대)을 세워 도성을 습격하려던 계획을 세우던 앗수르 관리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더불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을 지껄이며 길길이 날뛰던 '강포한 백성' 곧 앗수르인들 또한 꿈과 같이 사라질 것이다.
[사 33:20]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
결코 정복되지 않는 도성 예루살렘은 그곳에서 하나님과 백성의 만남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축제(절기)의 성읍'이라 불린다.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란 말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예루살렘에 성소가 고정되기 전, 즉 광야를 떠들며 대적과 싸우던 불안정한 시절에는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장막'(성막)이라는 협소하고 유동적인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장막은 본래 하나님의 거주하심을 상징하는 처소로 세워졌다.
(출 25:8 또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그들이 나를 위해 성소를 만들게 하라;
29:44-45 내가 회중의 성막과 제단을 거룩히 구별하며 또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다 거룩히 구별하여 제사장의 직무로 나를 섬기게 하리라.
45) 내가 또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 '거주하심'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었다.
'거주한다'는 말은 성경적 의미에서 '친밀하게 연합함을 뜻한다.
(창 30:20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께서 내게 좋은 지참금을 주셨도다. 내가 내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거하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시 5:4 주께서는 사악한 것을 기뻐하는 하나님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거하지 못하리이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는 자력으로는 건널 수 없는 깊은 심연이 놓여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제사 드리는 행위를 통하여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과 백성의 참 교제는 그런 연후에라야 허락되었다.
이 경우 성막은 동물의 피를 뿌려 백성의 만남이 실현되는 '친교의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출 40:2 너는 첫째 달 첫째 날에 회중의 장막의 성막을 세우고).
성막은 언제나 12지파의 한 가운데 위치하였으며 그들과 더불어 진퇴(進退)를 같이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하시며(임마누엘의 원리), 왕으로서 그들을 다스리심(신정의 이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막은 하나님의 통치(하나님의 나라)의 모형론적인 표현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새것이 옛것을 대신하고 실재가 그림자를 대신하는 그때에는 응당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히 11:9-10 믿음으로 그는 낯선 나라에 머무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머물렀고 자기와 함께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가 된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들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를 바랐기 때문이라. 그것의 건축자와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적들로부터 구원하시는 미래의 그날에는 '임마누엘의 원리'(21절)와
'신정의 이상'(22절)은 더욱 완전한 형태로 구현될 것이다(G. Vos, Biblical Theology).
[사 33:21]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곳은 마치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넓은 하수나 강이 둘림 같을 것이라 -
참으로 '권능 있는 자'는 예루살렘을 위협하는 앗수르가 아니라 예루살렘과 함께하시며 그 도성을 지키시는 여호와이시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함께하시면 그 도성은 큰 강이 빙 둘러서 아무라도 접근할 수 없게 하는 천혜의 요새들처럼 그 영구한 안전을 보장받게 될 것이다.
(시 46:4-5 한 강이 있으매 그 강의 시내들이 하나님의 도시 곧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장막들이 있는 거룩한 처소를 즐겁게 하리로다.
5) 하나님께서 그녀의 한가운데 계시매 그녀가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그녀를 도우시되 이른 새벽에 도우시리로다;
겔 47:1-12 그 뒤에 그가 다시 나를 데리고 그 집의 문에 이르렀는데, 보라, 그 집의 문지방 밑에서부터 물들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더라. 이는 그 집의 앞면이 동쪽을 향해 서 있었기 때문이더라. 그 물들이 그 집의 오른쪽 곧 제단의 남쪽 편에서부터 내려오더라.
2) 그때에 그가 나를 북쪽을 향한 문의 길에서 데려다가 바깥 길로 인도하여 동쪽을 바라보는 길 옆의 바깥문에 이르렀는데, 보라, 거기서 오른쪽에서 물들이 흘러나오더라.
3) 손에 줄을 가진 그 사람이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큐빗을 측량한 뒤에 나를 데리고 그 물들을 지나가는데 그 물들이 발목에까지 이르렀더라.
4) 다시 그가 천 큐빗을 측량한 뒤에 나를 데리고 그 물들을 지나가는데 그 물들이 무릎에까지 이르렀으며 다시 그가 천 큐빗을 측량한 뒤에 나를 데리고 지나가는데 그 물들이 허리에까지 이르렀더라.
5) 그 뒤에 그가 천 큐빗을 측량하였는데 그것은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 물들이 솟아올라 헤엄칠 물이 되고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더라.
6) 그가 내게 이르되, 사람의 아들아,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고 그 뒤에 나를 데려다가 그 강가로 돌아가게 하기에
7) 이제 내가 돌아왔는데, 보라, 그 강둑의 이쪽과 저쪽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때에 그가 내게 이르되, 이 물들이 동쪽 지역을 향해 흘러나와 사막으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가리니 그것들이 바다로 들어갈 때에 그 물들이 치유되리라.
9) 그 강들이 이르는 곳마다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살고 또 물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는 이 물들이 거기에 이르므로 그것들이 치유될 것이기 때문이라. 그 강이 이르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살리라.
10) 또 어부들이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에 이르기까지 그 강 위에 서리니 그 지역들이 그물을 치는 곳이 되리라. 그 지역들의 물고기가 그것들의 종류대로 대해의 물고기같이 심히 많으리라.
11) 그러나 그 지역들의 수렁과 늪지대들은 치유되지 아니하고 소금에게 넘겨지리라.
12) 또 그 강가의 둑 위에는 이쪽과 저쪽에 먹을 것을 맺는 모든 나무가 자라되 그것들의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것이 자기의 달들에 따라 새 열매를 맺으리니 이는 그것들이 자기들의 물들을 성소에서 내었기 때문이라. 그것들의 열매는 먹을 것이 되며 잎사귀는 약이 되리라;
슥 14: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나가되 그것의 반은 앞 바다로 그것의 반은 뒤 바다로 나갈 것이요,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선지자는 아마도 유브라데 강에 둘러싸인 바벨론이나 나일 강에 둘러있는 애굽의 테베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사 33:22]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
예루살렘과 함께하시며 그 권능으로써 도성을 방비하시는 여호와가 본문에서는 거의 동일한 뜻을 가진 세 가지 칭호로 불려진다.
(1) 그는 우리의 재판장이시다. 그는 공의에 입각하여 백성들의 옳고 그름을 준열하게 판단하신다.
(11:3-4 그로 하여금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속히 깨닫게 하시리니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책망하지 아니하며
4) 오직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의롭게 재판하고 땅의 온유한 자를 위해 공평하게 꾸짖으며 자기 입의 막대기로 땅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사악한 자를 죽이며).
(2) 그는 우리의 율법 수여자이시다. 그는 하나님으로서 마땅히 따라야만 되는 삶의 규범을 제정해 주신다.
(신 33:21 그가 자기를 위하여 첫 부분을 예비하였으니 그가 법을 주는 자의 몫 안에 자리를 잡았도다. 그가 백성의 우두머리들과 함께 와서 주의 정의를 집행하며 이스라엘과 함께 그분의 법도를 집행하였도다).
(3) 그는 우리의 왕이시다. 그는 이스라엘을 통치하신다.
(삼상 12:12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온 것을 너희가 보고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말하기를, 아니니이다. 왕이 우리를 통치하여야 하리이다, 하였도다).
그에게 현대적 의미의 입법권, 사법권, 행전권이 모두 속해 있다. 이는 그분만이 인생과는 질적으로 다른 완전한 분이시며, 우리의 참된 주관자이시며, 우리의 유일무이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사 33:23] 너의 돛대 줄이 풀렸었고 돛대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였었고 돛을 달지 못하였느니라 때가 되면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
24)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 너의 돛대 줄이 풀렸었고 돛대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였었고 돛을 달지 못하였느니라 때가 되면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 -
앞에서 승리자로 묘사되었던 유다가, 여기서는 정비조차 제대로 안 된 낙후한 배로 묘사된다. 그러나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뒤바뀐다.
유다의 결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앗수르에게 대승을 거두게 된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는 간명하다:
승리는 외적인 조건에 달려 있지 않고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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