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일 수요일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아굴의 고백과 교훈

 

성 경: [30:1-9]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6)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 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8)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30: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야게, 아굴, 이디엘, 우갈 - 학자들은 이들을 실존 인물로 보거나

가상 인물로 이해하기도 한다.

 

가상 인물로 보는 학자들의 경우

아굴은 솔로몬, 야게는 다윗, 이디엘과 우갈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데

무리한 추측에 근거한 해석이라 하겠다.

 

본장의 형태 혹은 일부 내용들은

본장의 기자가 솔로몬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예를 들면 2,3,8절 그리고 9절 등은

솔로몬의 삶이나 그의 상황과 부합되지 않는 내용들이다.

 

(2-3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8-9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왕상 4:30, 31은 솔로몬의 주위에는

적지 않은 지혜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데

아마도 본장은 그들 중의 하나가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왕상 4:30-31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31) 저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30: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 문자적인 뜻은

'확실히 나는 그 어느 사람보다 더욱 짐승과 같다'이다.

 

아마도 본장 저자의 주위에는 지혜가 뛰어난 자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가 비교한 지혜는

다른 어떤 사람의 지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지혜였던 것 같다.

 

자신만이 지혜롭다고 외쳤던 많은 이방 현자들과는

대조적인 자세를 나타내고 있는 저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 아삽을 연상케 한다.

 

(73: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30: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 저자는 지혜자였다.

 

그러나 그가 이와같이 말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검토해 본 결과 참 지혜인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종교 개혁가인 칼빈(Calvin)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기독교 강요, 11)고 말했다.

 

 

[30: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너는 아느냐'는 알지 못한다는 답을 염두에 둔

일종의 수사학적 표현인데 저자는 이같은 표현법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감히 비교될 수도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강조하고 있다.

 

본 구절은 2,3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인간의 지식의 한계 및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저자 스스로 던진 질문의 내용으로 보면 될 것이다.

 

저자는 가시적 피조 세계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사색을 통해

인간은 먼지처럼 낮아져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 여기서 '하늘'

단순히 천체, 우주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처소'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2: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며 특별한 목적을 위해

때로는 지상에 몸소 내려오신다고 믿었다.

 

(11:7 ,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17: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그리고 그들은 뚜렷한 내세관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15: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33: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하늘'은 더더욱 외경의 대상이었다.

 

결국 본 구절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초월성과

아울러 낮고 천한 인생을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암시한다.

 

그 이름이 무엇인지 -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이 지니신 속성,

곧 그의 영원성, 전지성, 편재성, 전능성 따위를

온전히 이해하였으면 설명해 보라는 것이다.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본 구절에 근거하여

아굴이 삼위(三位) 하나님 중 제 1위와 제 2위에 대하여

본 구절을 통하여 언급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 (Clark).

 

그런가 하면 고대 랍비 문헌인 미드라쉬(Midrash)에서는

'아들'을 이스라엘과 동일시하고

또 어떤 학자는 이를 창조주, 로고스(the Logos)

혹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시적 평행어 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들 중 어느 것이 타당한지 명확히 단정내리기는 상당히 어렵다.

 

 

[30: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純全)하며 - '순전하며'에 해당하는

'체루파'의 문자적인 뜻은 '정화되었으며'이다.

 

이 표현은 그 이미지를 불순물이 제거된 금속에서 따온 것이다.

정화된 금속은 순결하다는 이미지와 함께 귀한 것이라는 이미지도 내포한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 후 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계시해 주는

살아 있는 말씀의 고귀함에 대한 인식이다.

 

 

[30:6]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 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 정결한 금속에 더러운 찌끼를

다시 섞어서는 안 되듯이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인간의 상상력이나 전승(傳承) 따위를 섞어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다.

 

보이지 않는 실체 및 진리에 대한 사색에 있어서

곡해(曲解)의 위험성은 항상 상존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4:2).

 

특히 지식의 교만에 빠진 자의 경우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이것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겠다는 교만을 드러낸 것이며

인간의 이성이 지극히 유한하며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소치이다.

 

 

[30: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두 가지 일 - 문맥이 인간 지혜의 한계성을 말하고 있으니

본 구절도 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저자는 자신의 지식의 한계성을 인식하고서

그의 소원도 그러한 인식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30:8]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 두 가지 요구의 서술 순서가 의미심장하다.

지혜자인 저자는 인간의 물질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허탄'은 모든 거짓된 모습, 거짓된 행복의 외양들, 헛된 기대들을 가리키며

 

'거짓말'은 모든 속임수, 겉치레, 지키지 못할 약속 등을 가리킨다.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 문자적인 뜻은

'나에게 정해진 몫의 빵을 음식으로 내게 주소서'이다.

 

이 기도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바라보게 한다.

 

(6: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30: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본 구절에서 두 극단의 위험이 묘사되고 있다.

 

자칫하면 부유함은 자만과 불신앙.

혹은 바로가 그랬던 것과 같은 냉소주의로 빠지게 하고

 

(5:2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극심한 가난은

부정직, 거짓 맹세등으로 나아가게 만들 위험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두 극단 중 하나라도 빠지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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