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8일 목요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몽학 선생


: [ 3:23-29]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율법 아래 매인 되고 - '매인 되고' '점진적으로 조여오다' 의미이며 때로는 '보도하다'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모세가 율법을 받은 때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었음을 암시한다.



[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초등교사) - 율법의 한계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몽학 선생' 해당하는 헬라어 '파이다고고스'
'아이를 돌보는 ', '어린아이에게 시중드는 '라는 의미로 원래 6세에서 16세까지의 아이들을 돌보는 노예 신분의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몽학 선생은 가정교사로서 가정의 예법(禮法) 가르치기도 하며 아이가 학교에 오고 때에 길을 인도하는 노예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몽학 선생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교사'(디다스칼로스)로서의 개념으로만 이해되지는 않았다.

바울은 율법이 그리스도보다 낮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율법을 몽학 선생에 비유하고 있다.



[ 3:25] 믿음이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믿음이 후로는 - 믿음이 오기 전까지(23) 율법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시는 역사적인 성육신 사건에 의하여 율법의 임무는 끝났다.

율법으로부터 믿음으로 옮겨지는 역사적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든 자들에게 있어서 되풀이 되어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궁극적인 목표가 성취된 율법은 이상 그리스도안에 있는 성숙한 자녀들을 지배하지 못한다.

(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 3:26]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양자'(휘오데시아)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크게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1) 아래 놓여 있던 자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만물을 만드신 자이시며,

(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모든 인간들의 아버지가 되시나,
아래 매인 인간들을 이제 죄로 부터 해방되어 회복된 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2)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라 부를 있는 것은 성령에 대한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왜냐하면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하시기 때문이다.

( 8:14-16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 성령의 약속이 성취된 증거이다.



[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입었느니라

침례를 받은 - 본서에서 '례주다'(밥티조) 본절에서만 등장한다.

례는 복음의 핵심을 설명하는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본절에서 례는 할례를 대신하는 구원의 방편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례는 믿음을 통해서 이미 이루어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나타내는 외적 의식(儀式)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하게 되고 이로써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은 약속된 성령의 사역으로서 구원의 인치심을 확증한다.

그리스도로 입었느니라 - '침례받는 ' 다른 표현이다.

' 입었느니라' 일반적으로 '겉옷을 입는다' 의미로 사용되나

바울서신에서는 새로운 인격과 연합한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곤 하였다.

( 13:14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세상 가운데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따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은 세상의 정욕과 썩어져 가는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며

(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옷을 입는 것이다.

( 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하나가 된다.

'믿음' 공통분모로 하는 자들은
인종이나 신분이나 성별의 차이에 상관없이 하나이며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교회가 통일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아마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혼란과 분쟁 가운데 빠져있음을 염두에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유대주의자들의 독선적인 우월주의(優越主義) 의식하였을 것이다.



[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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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통해서만 유업을 이을 있다고 생각했고 유대인이 되려면 먼저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할례를 행하는 자들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있으며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유업을 받게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상태에 있는 갈라디아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율법이 갖는 역할과 의미를 아브라함의 약속과 견주어 설명하고 나서 지금까지의 논쟁을 결론짓는다.

진정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는

'그리스도께 속한 '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스도께 속한 '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나 인종에 관계없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 영접한 자를 가리키는 관용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