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서론
성 경:
[갈 1:1-5]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갈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이암은
것도 아니요
-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이 인간적인 기원이나 수단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처럼 자신의 사도권을 편지의 서두에서 강조하는 것은 당시 바울이 예수의 열두 제자들 중에 하나가 아니었다는 이유를 들어 바울의 사도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대주의를 고수하는 거짓 교사들로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을 심하게 미혹(迷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바울은 실제로 예수의 열 한 사도들처럼 예수의 지상 사역을 목격하거나
맛디아처럼 공식적으로 선출되지 않았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였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소명을 받았으므로 조금도 사도의 자격에 부족한 것이 없었다.
(행 9:1-17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26:14-18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 바울은 자신이 가진 사도권의 기원을 언급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함께 언급하였다.
이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신 분이심을 전제하였음을 보여준다.
▶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의 기원(起源)이 부활하신 주님에 있음을 밝힘으로써 더욱 그의 논지를 분명히 한다.
주의 부활은 당시 초대 교회성도들의 신앙의 근거요 '다메섹의 경험'(행 9:1-18)을 통해서 회심한 바울 자신의 신앙의 근거였다(Longenecker).
▶ 사도된 바울
- '아포스톨로스'('사도')는 관사 없이 사용되었다.
이는 사도 바울 자신만이 유일한 사도인 것은 아님을 암시한다.
사실 예수의 열두제자들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도'라는 칭호는 사용되었다.
원래 '아포스톨로스'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이나 단체의 권익을 옹호하는 대표자를 의미했으나 예수께서 오신 이후에는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Boice).
한편 초대 교회는 사도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행 1:21-26
이러하므로 요한의
침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1)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과 부활하신 주를 목격하고,
(2) 그리스도에 의해 복음 사역자로 택함 받은 자가 그것이다.
[갈 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 함께 있는
모든 형제
- 바울은 보통 그의 서신서의 서두에서 인사말을 할 때에 동역자들의 이름을 밝히지만,
(고전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빌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골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등),
단지 '형제들'이라고 표현한 경우도 종종 있다.
(살전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여기서 '형제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혹자는 이 편지가 수리아 안디옥에서 남쪽 갈라디아에 보내는 것이라고 보고 '형제들'이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Longenecker).
혹자는 이 편지가 고린도에서 북쪽 갈라디아에 보낸 편지라면 고린도에 선교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믿기 시작한 사람들을 통틀어 가리킨다고 본다(Hendricksen).
▶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 다른 서신들에서 나타나는 수신자에 대한 칭찬과 존경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아마 그의 불편한 심기(心氣)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교회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교회냐 하는 문제는 논란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1차 전도여행 때(A.D.
47-48) 복음을 전했던 곳으로서 바울로부터 복음의 진리를 들었던 교회들임에 틀림없다.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곁길로 가고 있는 자들을 책망하기 위해 본서를 쓰고 있다.
[갈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버지'(파트로스)로 부르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주'(퀴리오스)라는 칭호를 붙여 쓰고 있다.
이 두 칭호는 사도 바울의 신앙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리오스'는 히브리어의 '아도나이'와 같은 뜻으로 70인역에서는 '야웨'를 읽을 때 사용되었다.
따라서 신약에서의 예수의 호칭 가운데 하나인 '주'의 헬라어 '퀴리오스'는 구약의 '야웨'와 예수 그리스도가 본질상 동일함을 보여준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를 '주'로 섬김으로써 유일한 믿음의 대상으로 여겼으며
(행 5: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9: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또한 그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는 분으로 믿었다.
(행 7:59-60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고후 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 은혜와 평강
- '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는 죄로 인해 더러워진 인간에게 자유와 용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선물을 뜻하며
'평강'의 헬라어 '에이레네'는 히브리어의 '샬롬'(으로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이루어진 평화를 뜻한다.
[갈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 이 악한
세대에서 - '세대'의 시간적 개념은 현재적인 시점과 다가오는 시점을 포함한다.
그러나 본절에서의 '악한 세대'는 '다가오는 세대'
즉 영원한 축복의 세대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서 '이 세대'를 의미한다.
한편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오심'을 기준으로 이전 시대를 가리켜 '이 세대'(*,
하올람 하제)라 칭하였고,
메시야가 도래한 이후의 시대를 '올 세대'(하올람 합바)라고 하였다.
결국 '세대'에 대한 신약의 개념은 구약에서 유래(由來)된 것이다.
바울은 본절에서 이러한 맥락을 염두에 두고 '이 세대'를 언급하면서
'악한'(포네루)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여 '이 세대'가 갖는 특성을 강조하였다(Longenecker).
▶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 이는 앞 구절의 '예수 그리스도'를 수식하는 형용사절이다.
이렇듯 그리스도에 대해 설명하는 예를 다른 서신들의 서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류가 독특하였고,
따라서 바울이 이를 시정해 주기 위해 본 구절을 덧붙여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Mare).
즉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희석시키고자 하는 유대주의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을 제시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외에 다른 것을 통해 구원받고자 하는 행위는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며,
율법을 섬긴다는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무시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임을 경고한 것이다.
[갈 1: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 바울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다.
이는 흔히 인사말 뒤에 나오는 부드러운 송영(頌詠)의 의미라기보다는 롬 1:25절에 나타나는 송영과 같이 하나님과 아들 예수에 대한 헌신과 충성을 다짐하는 의도를 지닌다.
(롬 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 아멘 - 헬라어 '아멘'은 히브리어(아멘)에서 유래되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아멘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나 서신서의 결미어로 사용되었다.
(롬 16: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빌 4: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본절에서 '아멘'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영광이 영원히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 악한
세대'의 일시적이며 덧없는 속성과 선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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