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感想)
전도의 사명은 이것을 그리스도에 의해 곧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사람에 의해 사람으로부터 받을 것 아니다.
법왕, 감독, 목사,
신학자들에 의해 교회에서 받을 것 아니다.
옛적의 사도 그랬다.
오늘의 전도사 그렇다.
세상에 소용없는 것으로
사람에게 임명되어 사람으로부터 파송된 전도사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우리는 진리 위해 다투어도 가하다.
옳다. 때로는 논쟁의 의무이다.
하나님의 명하심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리 위해 다툰다고 해서 사랑과 평화의 경제를 넘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바울 따라 다투기에 앞서
우리들의 반대자 위해 아버지 하나님 및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은총과 평강이 있기를 기도할 것이다.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의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죄인 위해 자기를 버리신 주이시다.
그를 주로 앙망할 때 우리가 적을 미워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영광은 세세에 그에게 있다.
우리들 그와 함께 그의 영광을 지려면
그와 같이 우리에게 대적하는 자도 사랑해야 할 것이다.
(4-5.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상히 여길 일은 일단 복음을 믿었던 자가 이것을 버리는 일이다.
은총의 복음을 버리고 본래의 윤리 도덕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이는 자유를 버리고 속박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아들의 권리를 집어던지고서 노예의 무자격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리스도 신자로서 이 길을 취하는 자 아주 많음은 탄식 할 일이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복음은 하나이다.
하나여야 한다.
십자가의 복음 이것이다.
구원의 조건으로서 선행을 요구하는 길은 달리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만이 홀로 선행에 의하지 않는 구원의 길을 사람에게 준다.
이 세상의 도덕가가 아연히 여겨 마지않는 일,
그러나 복음의 오의는 그 중에 있다.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하지 않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전통교회의 면허 목사가 이렇게 할 것인가?
그는 아나테마(Anathema-
여기서는 이단)이다.
감독 이렇게 할 것인가?
그도 아나테마이다.
법왕 이렇게 할 것인가?
그도 아나테마이다.
옳다.
만약 천사가 이렇게(십자가 없는 복음을 전)할 것인가?
그도 아나테마이다.
진리에 관용 없다.
2와 2를 합하면 4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 없다.
이것은 천지가 없어진대도 그렇다.
(8-9.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사람은 관용을 사랑한다고 칭하여 신앙의 방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사람에게 친근히 하고 이를 기쁘게 하려 하는 자는,
종종 속중의 이 요구에 응하려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종은 결단코 그럴 것 아니다.
그는(그리스도 신자는)
협애하다는 말을 들어도
완고하다는 말을 들어도
단호히 십자가의 복음을 지켜야 할 것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도에 잘 종순하는 자는 전에는 이에 거슬리던 자이다.
쉽게 신자로 되는 자는 쉽게 이것을 버리는 자다.
박해자 사울은 사도 바울이 되었다.
오인은 오인의 박해자를 물리칠 것 아니다.
그들 중 혹은 허다한 사도 바울이 있을 것이다.
(13-14.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오인,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을 때는 혈육과 의논 한 대도 도리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오인의 행위를 방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구의 부르심으로써 오인을 부르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일시로 오인을 부르신 것이다.
오랜 과거부터 오인을 택하신 것이다.
오인의 부르심은 오랜 과거에 있어서 시작되어
오늘 비로소 사실로 되어 나타난 것이다.
혈육 누가 능히 오인에 관계되는 하나님의 이 영구하신 기도를 막을 수 있으랴.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으로부터 묵시를 받은 후는 교사에게로 달려 갈 것 아니다.
또 증인 앞에 이것을 공표할 것 아니다.
아라비아로 갈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적요 중에 하나님과 사귀도록 할 것이다.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그를 내 아버지여 라고 불러 모시기에 이를 것이다.
지금의 리바이벌 신자에게 일고를 촉구한다.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하나님께 배우고 사람에게 배움을 요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홀로 스승 없고,
사람 없는 산간 마을에서,
하나님과 친교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도시의 신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벽지의 신자, 도리어 잘 하나님을 안다.
그리스도는 지금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그는 산 중 또는 해변의 사람 없는 곳에 있어서 그를 사랑하는 자를 가르치시기 때문이다.
(18-19.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사도 바울은 독립신자의 모범이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자를 일으켜 후세의 교회 없는 신자를 격려하셨다.
우리가 무엇 두려울 바 있으랴.
맹연히 전진할 것이다.
(20-23.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내촌감삼의 갈라디아서 해설에서 발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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