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0일 수요일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에 편지를 보낸다


아버지 하나님에 의한 사도 바울

갈라디아서 1 1-24

[사람으로 부터가 아니고 사람을 통하여 것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아버지 하나님에 의한 사도 바울](1)

바울은 사도이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그리스도의 사도로 일컬어지는 이들과
직과 권능을 가지로 하는 자이다.

나도 그들과 가지로 직과 권능을 사람에게서 받지 않고 사람을 경유(통과)하여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나의 사도됨의 명은 하나님에게서 발하고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고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내게 전해졌다.

나는 독립신자이다. 독립전도사이다.
(말씀) 하나님께 들어 이것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이다.


[ 나와 같이 있는 모든 형제, 갈라디아의 교회에 (편지) 보낸다](2)

나는 갈라디아의 교회에 (편지) 보낸다.
하지만 혼자서 보내는 아니다.
나는 지금 나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함께 이것을 보낸다.
나는 그들의 찬동과 증명을 열어 이것을 보낸다.
이것은 사람인 그들의 원조를 얻어 너희에 대한 입장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신앙의 단독인 것이 아님을 너희에게 보여
너희로 하여금 스스로 돌아보는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원하기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들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총과 평강, 너희에게 있을지어다](3)

나는 지금부터 (편지) 가지고서 크게 너희에게 물으려 한다.
하지만 내가 이것을 하는 것은 너희를 미워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때로 다투지 않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의 분노는 원한에 잡혀 다투는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먼저 너희의 평안을 묻는다.
우리가 만약 다투지 않을 없다면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어서 다투게 하옵소서.
우리들의 논쟁의 종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강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약한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해 내시려고 우리의 위해 자기 몸을 버리셨다도](4)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에 대한 종순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우리도 또한 그에게 따르게 하옵소서

복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랴?
형제여, 우리가 교리를 논하고 서로의 오류를 바로 잡음에 있어서
가지 일을 잊지 않게 하라.
사랑은 모든 율법을 온전케 한다.
사랑은 모든 지식의 처음이요 나중이다.
우리들의 쟁론은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사랑의 경계를 넘지 것이다.


[영광, 세세 그에게 있도다. 아멘]

영광은 세세에 그분 그리스도에게 있다.
다른 자에게 없다. 지자에 없다. 용자에 없다. 변자에 없다.

우리들 죄인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그분 그리스도에 있다.
그는 우리들의 이상으로서 우리들의 모범이시다.
우리들의 공경할 주로서 다만 그가 계실 .
아멘 실로 그러하다.
나는 전성의 열심과 귀복을 그에게 바친다.


[나는 너희가 은혜로서 너희를 부르신 그리스도로부터 그렇게도 쉽게 떠나 다른 복음에 옮긴 것을 이상히 여긴다](6).

소식 있다.
내게 전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전한 은혜의 복음을 떠나서 다른 복음에 옮기고 있다고.
나는 이것을 듣고서 매우 이상히 여긴다.

그리스도는 은혜로서 너희를 부르셨다.
그는 너희를 부르심에 있어서
그에게 있어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신앙으로서 이것을 자신 받는 외에 아무런 요구도 너희에게 하지 않았다.

실로 너희가 받은 복음은 철두철미 은혜의 복음이다.
그런데 너희는 쉽게 이것을 떠났다고 한다.
내가 너희에 대하여 이상히 여기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사람은 쉽게 은혜를 버리고 떠나는 자가 아니다.
그런데 너희는 마음에 아무 고통도 느끼는 없이 쉽게 은혜의 복음과
목적물인 그리스도를 떠나
의식의 복음, 수양의 복음, 행위의 복음으로 옮기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것을 듣고서 매우 이상히 여긴다.


[이것은 복음이 아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 너희를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케 하려는 것이다](7)

나는 이것을 다른 복음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것은 복음이 아닌 것이다.
은혜에 기초하지 않은 , 어찌 이것을 복음이라 있으랴?

복음은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복음 이것이다.

[도덕의 복음], [수양의 복음], 이는 모두 복음의 이름의 남용이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전한 은혜의 복음을 떠나
보다 좋은 다른 복음에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스스로 미혹되지 말라.
너희는 하나의 복음에서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고 있는 아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 너희를 미혹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복케 하려고 하는 것이다.

너희는 은혜의 복음을 떠나서 전연 복음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버리고 있는 것이다.


[가령 우리들이거나 하늘에서의 사자이거나 만약 우리가 일찍이 너희에게 전한 바가 아닌 것을 너희에게 전한다면 사람은 아나테마일 것이다](8).

복음은 하나이다. 달리 있을 없다. 십자가의 복음 이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변경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복음이 아니다. 천사의 그것도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음이다. 하나님의 무궁한 말씀이다.
천지는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이것 이외의 것을 너희에게 전하는 있을진대
사람은 아나테마일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길 것이다.
생명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은 그리스도 복음에 있어서만 나타났기 때문이다.

* 아나테마 Anathema 그리스어 명사인데, '굳게 맹세한다', '저주 받는다' 등의 뜻이 있는데, 갈라디아 18,9절의 말은 '저주 받으라' 뜻으로 쓰여있다.

( 1:8-9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한 같이 이제 말한다. 만약 사람이(누가), 너희에게 너희가 받은 바의 것이 아닌 것을 전한다면 사람은 아나테마일 것이다](9)

나는 거듭 말한다.
그리고 내가 일찍이 바나바 실라와 함께 너희 중에 있을 때에 이것을 말했다.
나는 지금 우리 3인이 너희에게 말한 것을 여기서 반복하여 말한다.

만약 사람이 누구이건 우리가 일찍이 너희에게 전한 복음 이외의 것을
너희에게 전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길 (아나테마일 )이라고.


[내가 지금 하나님보다도 사람에게 친근하기를 바라랴? 사람을 기쁘게 하기를 원하랴? 만약 내가 아직 사람을 기쁘게 하련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것이다](10)

나는 이렇게 단언하여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는 사람보다도 하나님께 친근하기를 구하는 때문이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미 육체에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힌 자가 어찌 지금에 이르러서도 또한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람에게 친근히 하기를 구하랴?

내게 대하여 그러한 의혹을 가지는 자는 오늘의 나를 모르는 자이다.
만약 내가 지금도 평상인 같이 사람을 기쁘게 하련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것이다.

이미 그리스도의 종이다.
어찌 지금에 이르러서도 또한 사람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복음 아닌 것을 복음이라 칭하여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랴?


[형제여 내가 너희에게 고한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다](11)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떠나 복음 아닌 다른 것으로 옮겨 갔다는 것을 듣는다.
내가 지금 복음에 대하여 조금 너희에게 고하는(말하는) 있다.
너희는 이것을 알라.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에 의해 전해진 것을 내가 받아 너희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나는 이것을 사람에게서 받지 않고 배우지 않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묵시에 의해 받았기 때문이다](12).

나는 복음을 사람에게서 받지 않고
사람에게 배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았다.
내가 사람이라는 교사는 없었다.
그리스도, 영으로서 이것을 영에 보여주시었다.
나는 실로 그리스도의 직제자이다.
간접의 제자가 아니다. 직접의제자이다.
나는 육에 있어서 나사렛의 예수를 모른다.
하지만 영에 있어서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내게 직각 없을 것인가?
나는 사도라든가 전도사의 자격 없는 자이다.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의 행위를 너희는 들었다. 심하게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고 이것을 해쳤다](13)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님은,
경력에 비추어 보아 분명하다.
너희가 종종 내게서 들은 같이,
나는 전에는 격렬한 유대교의 사람(신자)으로서,
심하게 그리스도 교회를 박해하고, 이것을 해쳤다.


[ 유대교에 있어서는, 국인 , 동년배의 많은 동지에 앞서, 선조들의 유훈에 열심이었다](14)

나는 보통의 유대인은 아니었다.
나는 가장 열심 있는 자였다.
나는 동배의 사람보다 승하게 선조들의 유훈을 엄수하고,
전심으로 모범적 애국자 되기를 원했다.

나는 애국의 정에 잡혀, 그리스도와 복음을 미워했다.
애국이 얼마나 열렬했는지를 아는 자는 내가 부조의 귀한 종교를 버리고,
사람의 전설에 복종하여, 타교에 옮길 그런 자가 아님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태내에서 나를 택하시고, 은혜로써 나를 부르신 하나님, 아들을 이방인 중에 전하게 하시기 위해, 그를 내게 보이시기를 기쁘시게 여긴 , 나는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다. ](15-16)

나는 유대교의 신자로서 열렬한 애국자였다. 나는 죽는대도 국교를 버릴 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
그리고 부르시는데 은혜로써 하신 ,
죄는 모두 이것을 사하시고, 내게 돌리는데 성자의 의로써 하신 ,
그리고 나를 부르심이 과거부터 나를 부르신 것을 ,

하나님의 지도하에, 가계도, 교육도, 경우(환경), 모두 나로 하여금 이방인 중에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기 위한 준비였음을 ,
내게 확신 일어난 ,
나는 모든 정실을 배척하고 골혈붕우와 의논하지 않고,
맹연혼자 뜻을 결하고, () 떠나 () 속했다.


[ 나보다 앞서 사도되어 예루살렘에 있는 이에게도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 그리고 다메섹으로 돌아왔다](17).

나는 골육과 의논하지 않았을 아니라,
나보다 앞서 사도되어 예루살렘에 있는 이에게도 가지 않았다.

나는 사람 없는 마을인 아라비아로 갔다. 그리고 엘리야처럼, 혼자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


(왕상 19:12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나는 적막 중에서, 하나님께 배웠다. 그리고 때가 지난 후에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


[ 3년을 지나서, 나는 베드로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 15일간, 그와 함께 있었는데](18)

나의 상경은 내가 개신 3 뒤에 있었다. 나는 베드로를 방문하기 위해 올라갔다.
전도의 일에 대하여 그와 의논하기 위해 올라갔다.
하지만 그에게 배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리고 15일간, 서울(예루살렘) 머물면서 종종 그를 만났다.


[다른 사도들에게는, 주의 형제 야고보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만나지 않았다](19)

나는 15일간, 수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당시의 교회의 수장이었던 주의 육체의 형제 야고보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도는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따라서 것이다, 내게 , 사도들에게서 복음의 오의를 알았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하여 사도들에게서 배울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내가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보라, 하나님 앞에 나는 거짓말 않는다](20)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사실이다. 간요한 사실이다.

보라, 나는 하나님과 양심에 맹세하여 말한다.
나는 일에 있어서 거짓말하지 않는 것을 나는 실로 베드로 야고보와의 처음 면회에 있어서 복음의 오의에 대하여 그들에게서 새로이 아무 것도 배운 없었다.


[ 나는 시리아(수리아)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다](21)

나는 오랫동안 예루살렘에 머물지 않았다. 북방 시리아 길리기아로 가서 10년이라는 오랜 동안 땅에 머물렀다.


[나는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의 여러 교회에 얼굴을 모르게끔 되었다](22).

원격한 지방에 머물기 10 나는 마침내 유대에 있는 여러 교회에 얼굴마저 잊혀지게 되었다. 따라서 것이다.
12사도들과 나와의 교제는 결코 친밀한 것이 아니었음을 나는 개신하여서부터 다만 1, 그들 중의 2인과 상견했을 나는 복음을 그들에게서 받았다는 유언이 전연 근거 없는 참무이라는 것은 여기 이르러 더욱 분명하다.


[다만 그들은 전에 자기들을 괴롭히던 자가 지금은 그도 전에 해치던 신앙의 도를 전한다고 듣고 나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했다](23-24)

그들은 얼굴을 잊어버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전의 박해자는 지금의 전도사가 되었음을 듣고서 나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름이 그들에게 전해졌을 그들과 나와의 사이에 깊은 교통이 있는 아니다.

*내촌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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