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약속
성 경:
[갈 3:19-22]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갈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 지금까지 율법이 약속을 폐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증명한 후에 이제 바울은 율법의 목적에 대하여 설명한다.
율법의 목적은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고 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도 율법의 목적을 논하면서
본절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인간들은'죄'가 무엇인지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세상에 죄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죄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인식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 참조 :
(롬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 율법이 주어질 때 천사가 함께 했다는 암시는 신 33:2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 33:2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또한 스데반은 율법을 천사가 전한 것으로 언급한다.
(행 7: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바울은 스데반이 따랐던 개념을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본절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바는 천사가 중보자가 되었다는 사상이 아니라
율법이 누군가에 의하여,
즉 최소한 천사와 모세에 의하여 전달되었다는 사실이다(Boice).
[갈 3: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
본절은 본서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 가운데 하나이다.
학자들은 견해도 250-300여개 정도로 너무 많이 있어 하나의 견해를 취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수많은 견해들을 세 가지 부류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중보자'(메시테스)는 일반적인 의미로 앞절에서 제시한 중보 그 자체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즉 율법은 중보를 통해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주어졌으나,
하나님의 약속은 중보를 내세우지 않고 직접 세우셨다는 것이다.
(15-18절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2)'중보자'를 모세로 보는 견해가 있다.
(3) '중보자'를 그리스도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는 바울이 딤전 2:5에서 '중보자'라는 말을 그리스도에 관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근거한다(Jerome,Chrysostom,
Cole).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러나 이 해석은 문맥에 비추어 보면 어울리지 않는다.
결국 위의 여러 견해들이 일치를 보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본절에서 바울은 율법이 중보에 의하여 전달된 반면 약속은 하나님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한다.
이는 약속의 직접적인 전달과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일방적인 언약 체결을 보다 선명하게 나타내 준다.
또한 그리스도가 중보가 되었든지,
천사나 모세가 중보자가 되었든지 간에
율법이 직접 주어지지 아니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에 바울은 약속이 창15장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주권적이며 무조건적인 일방성(一方性)에 의하여 주어진 것임을
강조하면서 율법보다 약속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갈 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 율법이 약속을 폐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율법과 약속은 서로 대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양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율법과 약속이 서로 대립된다면 하나님의 속성이 내부에서 서로 대립되는 것이 되고 만다.
약속과 율법은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하여 주어졌다.
율법이 죄인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면,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게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둘은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필요한 요건이 되었다.
[갈 3: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 바울은 앞 구절에서의 의가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 뒤,
본절에서는 율법이 가진 실제적인 기능은 모든 사람을 죄의 굴레 속에 가두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율법은 인간을 정죄하기 때문에 사람이 율법주의를 통해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김을 받을 수 없으며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다.
▶ 모든 것
- 이는 가장 포괄적(包括的)인 범위를 뜻하는 용법이다.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2) 타락한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
즉 말,
행위,
생각 등을 가리킨다.
(3)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타락된 모든 피조 세계(롬 8:22)를 가리킨다.
(롬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아담의 타락에 의하여 모든 피조 세계가 타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절에서는 '모든 것'이 하반절의 '믿는 자'라는 인칭 대명사와의 연관하에 이해됨이 타당하다.
물론 본절에서 바울이 이방인에 대한 율법의 적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이 말이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될 자들의 옛 상태를 지시하는 말로 사용된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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