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4일 일요일

갈라디아서 제2장의 재해석(解釋)



갈라디아서 2장에 나타난
해석(解釋) 곤란, 자역(字譯)

갈라디아서 2 1-21 : 십사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6)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것이 없고
7)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것을 보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것이 아니요 오직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개역한글)



성서의 해석은 극히 쉬운 일로서
이것을 지혜도 학문도 필요 없고
누구에게도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한 사람은 불신자인 비평가 중에 많다.
그들은 성서를 손에 가진 일이 없다.
혹은 가졌대도 깊이 이것을 연구한 일이 없다.
그러므로 그러한 천박한 말을 발하는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러므로 이에 의미가 불명한 있을 없고
이것을 명명백백한 낮의 태양 같은 ,
이것을 정당히 해석할 없는 것은 해석자의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
열심 있는 기도로서 모를 성서의 말씀이 있을 없다고
이것 성서 외에 아무것도 기대지 않는다는
어느 파의 교회신자가 언제나 말하는 바이다.

그들은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도그마적 전제를 두고서 문자, 문법등에는 특별히 눈을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러한 낙천의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의 해석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신앙만으로서 있는 일은 아니다.

지금 곤란의 일반을 보이기 위해
여기서

갈라디아서 2장에 나타난 해석상의 곤란의 주요한 것을 들고자 한다.


1) 14
개신 14년인지 1 예루살렘 상경 14년인지 문법적으로 판정할 없다.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분명히 오역이다. 적어도 애매한 역이다.
바울은 자신이 디도를 데리고 바나바와 함께 상경했다.
디도는 바울에게 속한 자이다.

2) 이름 있는
원어의 dokousi 단지 [보이는 ]라는가, [일컬어 지는 ] 등의 뜻이 있다.
유력자라든가, -소리티로 역하는 적당할 것이다.

그리스인인데도
3) 헬라 사람이었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밥티스트교회(침례교회) 성서는 [ 사람에게 까지도] 더한다.

5) 복음의 진리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기를. ]
그리스어의 pros 경우에 있어서는
[함께] 역할 것인지 [위해] 역할 것인지
이것을 문법적으로 교의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8) 베드로에게 능력을 주어.
[능력을 주어] 원문으로는 일어이다. 역하기에 어려운 말이다.

베드로라는 고유명사 앞에 en 이라는 전치사가 빠진 까닭에
어떤 주해자는 [베드로 위해 일하심]으로 역할 것이라 한다.
그를 위해 도를 예비하신 뜻이다.

9) 기둥으로 생각되는
[생각되는] 2절에 있어서 [이름 있는 ] 역된 말이다.
[생각 되는] 원의 일찍이 결정키 어렵다.
어떤 학자는 이것을 [일컬어지는]이라고 해석하여 조금 조롱의 뜻을 담는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야고보, 게바, 요한의 세제자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그리 좋지 않았던듯 하다.

11) 그에게 책할 있어서
불명한 문자이다.
[(베드로) ( 행위로 말미암아) 자기를 죄로 정했다고 하여]. . 역할 것이라는 설을 가진 주해자 있다.

12) 할례를 받은
필경 오역이다. 할례파의 사람으로 ()하는 적당할 것이다.
할례의 구령상 필요를 믿는 자이다.

14) 복음의 진리() 대로
대로(따라) 역자는 의심스럽다.
[위해서] 역하는 온당할 것이다.
혹은 [따라 행하는] 하나의 숙어로 해석하여
바르게(옳게) 복음의 진리를 취급치 않음(해득 못함) 보고로 역할 것이라는 이도 있다.

경우에 있어서의 베드로의 오류는
도덕적인 것이었는지 교리적인 것이었는지
전치사의 해석법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베드로에 대한 바울의 견책의 말은
14절로서 끝날 것인지 혹은 18절까지 계속되는 것인지
혹은 본장 말절도 포함하는 것인지
문법적으로 결정할 없다.

하지만 문제를 결정치 않고서 14 이하를 해석하는 아주 곤란하다.

16) 행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해서] 애매하다.
뒤에 있는 [믿음에 의해서] [의해서] 별사이다.
앞의 [의해서] [결과로서]이다.

그렇게 해석하는 , 적당할 것이다.
[다만] (한글 개역에는 오직 새번역에는 없다) ean me 난해사이다.

[다만](오직)일지,
[으로가 아니면]일찌 다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전혀 율법의 행함을 떠나서)구원됨일지,
혹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아니면 율법으로 행함으로서 해도 구원되지 못함일지
신앙만으로서 구원됨일지
혹은 신앙 행위로서 구원됨일지?
이는 경우에 있어서 ean me 해석 여하에 따라 결정될 문제이다.

17) 죄인이라면
역문 부족하다.
[죄인으로 인정된다면] 혹은 [죄인으로서 발견된다면]
전후의 관계에서 절의 의의를 발견하기 아주 어렵다.
주석자 중에 이론 많다.

18) 내가 누구일지?
바울일지, 혹은 베드로를 가리켜 말함일지,
혹은 부정 대명사일지?

19) 율법에 의해 율법에 향하여 죽었다.
난구이다. [ 의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해 법률에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율법 아래 있으면서의 뜻일 것이다. 이설 많다.

20절은 지난(至難) 일절이다. 주석자 이설 많다.
바울은 너무 간결한 문자를 썼기 때문에 우리들 후세의 주석자를 괴롭히는 , 아주 크다.

우리는 절에 나타난 바울의 대의를 세밀(細密) 대해서는 이것을 성서해석학의 진보에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상은 오인의 천학으로써 대도
본장에 있어서 쉽게 발견할 있는 해석상의 곤란이다.

다음에 실은 역문 같은 것은 제역을 절충하고
이에 오인의 자기의 소견을 가해 이룩한 것이다.


식자의 비평을 기다린다.

1) 14년을 지나서 나는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나는 나와 함께 디모데를 데리고 갔다.

2) 나는 묵시에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방인 가운데서 전한 복음을 그들에게 진술했다. 특히 사사로이 [유력자]앞에 진술했다.

3) 이는 내가 지금 하는 바의 , 혹은 이미 행한 바의 것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렴에서 이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던 디도는 그리스인(헬라사람)이지만 그마저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다

4) 이는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 있어서이다. 그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바의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고 몰래 들어온 것이다.

5) 우리들은 그들에게 일시도 양보치 않았다. 복종치 않았다. 이는 복음의 진리가 너희 가운데 있기 위해이다.

6) 유력자라고 하는 이들 보다는. . 그들이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간에 내개 있어서 무엇이 문제랴. 하나님은 얼굴에 의해 사람을 받지 않는다.

7) 옳다. [유력자] 내게 아무 더하여 준것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복음 전할 것이 맡겨진 대로 내가 비할례자에게 복음 전할 것을 맡겨진 것을 보고. .

8) 실로 할례자의 사도되게 하시려고 베드로 위해 역사()하신 이는 이방인의 사도되게 하기 위해 위해서도 역사()하셨다.

9) 그들은 내게 주신 은혜를 알게 되어 기둥이라 일컬어지는 야고보, 게바, 요한은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오른 손을 주었다. 이는 우리들은 이방인 중에 그들은 할례자중에 가기 위해서이다.

10) 그들은 다만 우리들이 빈자를 기억할 것을 요구했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나아가 하고자 바였다.

11) 베드로, 안디옥에 왔을 , 나는 목전에서 그에게 반대했다. 그에게 책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것은 야고보로부터의 사람이 오기 전에는 그는 이방인과 음식을 같이 했다. 하지만도 그들이 이른 때에는 할례자의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물러가 헤어졌기 때문이다.

13) 그를 따라 다른 유대인도 거짓 위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끌려 들어갔다.

14) 하지만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 따라 바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 사람 앞에서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만약 당신 유대인인데 이방인 같이 행하고 유대인 같이 행하지 않으면서 어찌하여 이방인을 강요하여 유대인 같이 행하게 하려는가.

15) 우리들은 성래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의 죄인이 아닌 것이다.

16) 그렇지만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되는 것을 아는 까닭에 우리들도 또한 율법의 행위에 의하지 않고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도 없다고 있는 대로이다.

17)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고자 하는 자가 스스로 죄인으로 인정된다면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죄의 역자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18) 실로 내가 만약 전에 헐었던 것을 지금 다시 세운다면 나는 스스로 죄인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19) 나는 율법에 의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기 위해서이다.

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다. 이미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다. 지금 내가 육체에 있어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여 위해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서이다.

2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만약 의롭다함을 얻은 일이 율법에 의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는 필요 없는데 죽으신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촌감삼의 갈라디아서 주석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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