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자기 증거
성 경:
[요 3:9-12]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 회의심(懷疑心)을 나타내는 질문인지
아니면 보다 정확한 설명을 요구하는 간청인지 명확치는 않다.
아무튼 니고데모는
그러한 사건이 어떻지 경험될 수 있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4절에서 니고데모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중생의 교훈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하는
가능성 자체를 놓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반면 본 구절에서는
일단 그 가능성만은 인정한 상태에서
그 방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자 하여
재차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유대교에서 이러한 영적 거듭남을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겔 36:25-28
등에서는
(겔 36:25-28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과 중생의 원리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유대교의 간과(看過)와 무시 때문에
니고데모는 예수로부터 책망을 받게 된다.
(1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사실 니고데모와 같은 바리새인들은
하나의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즉 그들은 혈통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창 17:1-8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자연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거듭남에 대한 예수의 교훈을 지극히 생소하다고 여긴 것이다.
[요 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 우선 예수는 니고데모 개인의
영적 무지를 지적하시고 이어서
바리새인들을 위시한 유대인들을 책망 하신다.
(11절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니고데모가 이스라엘의 지도자 층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지만
헬라어 본문에 `호'라는 정관사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그는 분명히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쇠트겐(Schottgen)과 뤼케(Lucke)는 여기서 사용된 `관사'가
산헤드린의 의장 또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현자(賢者)등,
어떤 특수한 직책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니고데모는 바리새파요,
율법학자요,
산헤드린 의회원으로서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진 그리고 공식적인 선생의 위치에 있던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 자신이 성령의 의미와 위로부터 태어난다고 하는
말의 의미를 구약성경의 연구를 통해
좀 더 잘 알고 있어야만 했다고 하는 점을
이 칭호(이스라엘의 선생)를 사용하여 상기시켜 주었을 것이다.
(Farrar).
더구나 니고데모 자신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참 진리와 거짓을 가리고 판별해 내는 일을 맡고 있던
산헤드린의 한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요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 우리 - 이들이 누구를 뜻하는가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있다.
(1) 메이어 (Meyer)는,
주님께서 단순히 자기 자신만을 가리켜 `권위의 복수'(pluralis
majestaticus)
즉 `경어적 복수'를 사용한 것이라고 하였으며,
(2) 바이스(Weiss)와 루타르트(Luthardt)는
`그리스도와 침례 요한'을,
(3) 벤겔(Bengel)과 스티어(Stier)는
`삼위 일체로서의 그리스도'를,
(4) 루터(Luther)는
`그리스도와 선지자들 전체'를,
(5) 고데(Godet)와 웨스트콧(Westcott)과 행스텐베르그(Hengstenberg)
등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중 두 번째와 다섯 번째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는 것 같다.
▶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 - 니고데모를 비롯한
영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알지 못하는
성령의 역사와 그 활동을 가리킨다.
▶ 너희 - 니고데모를 위시해서 예수가 행한 표적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나,
예수를 믿는 참 신앙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무지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와 구약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예수 당시의 유대 사람들 역시 예수의 교훈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어두움은 빛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기서 예수는 영생에 관한 자신의 가르침이
단순한 추상적 지식이나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엄연한 진리임을 분명히 하고서 이를 선포적 차원에서 증거하고 있다.
기실 이러한 신령한 지식은
성령의 조명을 통한 믿음의 눈으로만 감지할 수 있는
비밀에 속한 것이라 하겠다.
[요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 - 즉, 예수께서
자연 현상인 땅의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한 다면
`하늘 일'
곧 영적 실재를 직접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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