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9일 수요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다 2

 

: [ 2:6-11]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2: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

 

유대인의 가정에는, 연회할 때에 물을 많이 사용하기 위하여 항아리를 비치하였다.

 

그것은, 주로 식사 전후에 씻는 예식을 행하기 위함이었다.

풍속은 성경이 제정한 것이므로, 진정한 종교적 의의와 효과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이런 번잡한 예식을 변하여,

맛있는 신약의 종교(포도주는 신약의 기독교를 상징함) 변화시켰다.

 

그것이 물론 포도주를 만드신 비유적 의미이다.

 

" 드는 항아리" 용량(用量), 77리터, 혹은 115리터에 해당된다.

 

이렇게 항아리가 여섯이나 놓여 있었다.

 

우리 본문이 이렇게 많은 분량에 대하여 관설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만드신 포도주의 많은 분량을 말하여, 그의 이적의 놀라운 사실을 지적하려는 까닭이다.

 

 

 

[ 2:7-8]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

 

하인들은 즉시 순종하였다.

 

"연회장", 풍속에 연회의 손님들 주빈이었다고 한다.

 

이적에 있어서, 물이 어떻게 포도주가 되었는지에 대하여 말한 없고, 다만 고요히 역사하시는 주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런 기적이 나타났다.

 

 

 

[ 2:9] 연회장은 물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연회장은 물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 주님의 기이한 역사의 유래를, 사람마다 알지 못하나 오직 주님께 충성하는 종들만은 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다음과 같다.

 

(1) 복종의 원리. 마리아는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침묵하며 순종한 하인들더러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였다.

 

(5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이것은, 무조건 순종을 말함이다.

무조건 순종은 하나님께만 하는 법인데, 여기서 예수님이 하나님 대우를 받으신 것은 당연하다.

 

과연 하인들은 조금 후에 그렇게 순종하였다(7-8).

 

루터(Luther) 말과 같이,

 

참된 신앙의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무슨 일을 지정해 드리지 아니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복속시킨다.

(Wahrer Glaube schreibt Christus nicht vor-wad er tunsoll-,sondern weiss sich darin zu schicken.-Evangelien Auslegung, 4, P.93).

 

 

(2) 변화의 원리

 

(6-9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결례의 항아리 물의 포도주로 변화된 것은, 예수님의 권능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이적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서 죄인들이 변화되어 성도가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악한 사람이라고 변화시킬 있다.

 

1733년부터 선교사들이 5 동안 창세기 1장을 가르쳤어도 하나님의 인상도 받지 못하던 에스키모족 중에서도 마침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생겼다.

 

루터(Luther),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변화시킬 있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Evangelien Auslegung, 4,P.98).

 

그리스도의 구원운동은 죄인들을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 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 기독교의 복음은, 사람들을 세상보다 선미(善美) 내세(來世) 인도하는 것이다.

 

여기 이른 "좋은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현되는 구원의 기쁨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1) 혹설에, 여기 "좋은 포도주" 취할 있는 강한 술을 의미한다고 하나, 반드시 그렇다고는 없다.

 

이유는, 그것이 이적으로 만든 것인 만큼 취하게 하는 성분이 강하지 않고도 좋은 술일 있다.

 

(2) 어떤 학자들은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만드신 술은 발효(醱酵)하지 않은, 취하지 않는 술이었을 것이라고 하나, 그렇게 주장할 만한 본문의 증거는 없다.

 

설혹 예수님께서 만드신 술은 취할 있는 성질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을 절제 있게 마시는 사람들은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절제" 덕을 가르친다.

 

(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2:11] 예수께서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여기 "표적"이란 말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리는 신령한 증표라는 뜻이다.

 

" 영광을 나타내셨다" 것은, 메시야의 증표로서의 권능을 나타내셨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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