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4일 금요일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번째 제자들 2

 

: [ 1:38] 예수께서 돌이켜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 1:38] 예수께서 돌이켜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무엇을 구하느냐 - 여기에서 '구하느냐' '찾아다니다', '구하다'라는 뜻이며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 구해야 것을 의미하는 동사로서,

 

( 17: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신약성경에서는 주로 구원에 연관되어 사용되었다.

 

( 18: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일백 마리가 있는데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9:10 인자의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따라서 예수의 질문은 '너희가 궁극적으로 찾아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뜻이다.

 

이는 요한의 제자가 예수를 따르는 동기를 확고히 상기시키는 말씀이다.

 

본서에서 예수의 말씀으로서는 최초로 나오는 문장은 죄악된 세상이 참으로 구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궁극적인 가치와 숨겨진 보화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아버지께로 좇아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것이라).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의 소중함을 깨닫는 자들은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보화를 것이다.

 

(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팔아 밭을 샀느니라).

 

 

랍비여 - '랍비' '나의 존경하는 '이란 뜻을 지닌 아람어이다.

 

초기 유대교에서 부터 용어는

 

(1)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상급자를 지칭하거나

(2) 제자들이 선생을 칭할때 사용되었다.

 

B.C. 2세기경부터 용어는 제자들이 선생을 공손히 부를 때에만 주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용어는 복음서에만 나온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서기관들을 비난하기 위해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반해서

 

( 23: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가복음에서는 베드로나 유다가 예수를 부르는 칭호로 사용되었다.

 

( 9: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11: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14:45 이에 와서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본문에서 칭호는 침례 요한의 제자들의 단호한 결단과 아울러 그들의 영적 제한성(制限性) 함께 시사한다.

 

 

(1) 먼저 칭호는 그들이 예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어디든지 따르겠노라고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참조 : (37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2) 그러나 그들은 아직 예수의 신분이나 행하고자 하시는 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이다.

 

바로 앞에서 사람은 침례 요한으로부터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29)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34)이시라는 말을 들었지만,

 

진정 그들의 마음속에 신앙 고백적 차원의 깨달음이 없었기 때문에 스승을 일컫는 정중한 어투인 '랍비'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계시오니이까 - 헬라어 '푸 메네이스' 문구는 '랍비'라는 호칭과 함께 사용되었던 유대인의 관용적 표현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 교사들에게 대화를 요청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제자의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며 또한 겸손하게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번역하면 - '번역하다', '해석하다'라는 뜻의 용어는 그리이스의 신들 중에서 변론(辯論) 전령(傳令) 신인 '헤르메스'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또는 신약성경은 같은 의미인 '메데르메뉴오'라는 표현도 사용하며, 개역 성경에서는 용어를 모두 '번역하면' 또는 '번역한즉'이라고 옮겼다.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에 1

 

(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가복음에 3,

 

( 5:41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15: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번역하면 해골의 ) 이르러,

 

34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요한복음에 4,

 

( 구절 예수께서 돌이켜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사도행전에 3,

 

( 4:36 구브로에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 하니;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13:8 박수 엘루마는 (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히브리서에 1 쓰였다.

 

( 7:2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살렘 왕이니 평강의 왕이요)

 

이러한 표현이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이유는

예수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용된 히브리적 용어나 아람어를

헬라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함이었다.

 

특히 저자 사도 요한은

당시의 상황을 현장감 있게 재현하기 위하여 아람어를 사용했으며,

용어들이 헬라인들에게 이해될 있도록

번역을 첨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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