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 수훈 2
성 경: [눅 6:23-26]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 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 마태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한 반면에 여기서는 '뛰놀라'로 되어서 더 적극적이고 격렬한 태도를 암시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앞절의 박해와 고난을 당할 바로 그때에
기뻐하고 뛰놀라는 의미이다.
이는 주님 때문에 받는 박해에 대한 대가가
얼마나 큰가를 극적(dramatic)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 박해를 받는 자들의 고난은 헛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 하나하나를 세세히 기억하고 계신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큰상이 예비되어 있다.
'하늘에서의 큰 상'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천국에 참예함'을 의미한다.
(마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여기서 예수께서 '하늘의 큰 상'을 말씀하신 것은
박해를 피해가거나 박해로 인해서 믿음을 저버리거나
주를 배반하지 말 것을 격려하시기 위함이다.
그런데 박해만큼이나 사람들을 믿음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은 세상의 명예와 부귀이다.
따라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명예나 물질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장차 그들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축복,
곧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일할 것을 요구하신다.
이처럼 살기 힘든 세상에서 환란과 핍박과 어려움이 몰려온다 할지라도
끝까지 인내하는 자에게는 하늘나라가 큰 상으로 주어질 것이다.
[눅 6: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 여기서 '부요한 자'는 20절의
'가난한 자'의 반대개념으로서 등장한다.
본문의 의미가 이 땅의 모든 부자들이 화를 당할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는 상징적 의미로서 복음 사역을 방해하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자들을 뜻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신뢰하지 않고
죄를 회개하지 않으며 자신만을 신뢰하고 자만하며,
자신들의 교육, 학문, 지혜만 자랑한다.
더욱이 이들은 마음이 심히 완악하고 강퍅하여
그리스도의 경고의 메시지에 귀 기울일 줄 모르며
하나님의 축복과 하늘나라의 기업이 없이도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삶의 모든 의미를 두고 허탄한 일만 일삼는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심판 때에 돌이킬 수 없는 큰 화(禍)
곧 하나님의 영원한 사망의 형벌이 임하게 될 것이다.
▶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 부요한 자들은 미래의
영원한 축복 대신 현재의 육신적 만족을 스스로 택하였고
더욱이 다른 사람을 착취한 대가로 이기적 욕구를 충족시켰으므로
더 이상 받을 것이 없음이 당연하다는 뜻이다.
이 사람들은 앞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될 축복받은 자들과 잘 대조된다.
(23절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여기서 '받았도다'란 의미의 원어 '아페코'는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 또는 '완전하게 수령했다'를 뜻하는 상업적 용어이다.
[눅 6: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 배부른 자 - 이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느끼지 못하고
영혼의 굶주림을 외면한채 재물을 방탕하게 사용하여
육체의 쾌락을 만족시키는데 급급하는 자들을 지칭한다.
이는 21절의 '주린 자'와 대조가 된다.
▶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 여기서 웃는 자의 웃음은
세상에 속한 것들을 즐기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에서 오는
육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심판 때 대가로 받을 울음은 영원한 것이 되어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한편 이 '웃는 자'는 21절의 셋째 축복 '우는 자'와 대조된다.
이처럼 20절로부터 계속 묘사되는 일련의 역전(逆轉) 상황들은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과 인간의 완악한 본성에서 기인하는
진리의 역설(paradox)을 선명하게 노출시킨다.
이와 같은 역전 상황 내지는 역설의 논리는 성경 도처에서 발견된다.
이를 테면,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는 말씀이나(마 10:39)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는 말씀이 바로 그러하다(고후 6:10).
[눅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 일반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달콤한 말로 비위를 맞추는 자들을 칭찬하기 쉽다.
예로부터 거짓 선지자는 항상 그들의 간사한 행위를 인하여
칭찬을 받지만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함으로써 핍박을 받아 왔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의 칭찬은 모두 일시적인 것이고 머지않아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빛가운데 백일하에 드러나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22절의 넷째 축복 '핍박을 받는 자'와 대조된다.
▶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 본문에 대한
구체적 사례로서 이스라엘 왕 아합 당시의 왕실 선지자들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아합왕과 왕후 이세벨의 귀에 즐거운 거짓예언을
일삼은 대가로 부를 누리며 칭찬을 들었다.
(왕상 18: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이 외에도 이스라엘은 달콤한 통치자와 예언으로써
일반 백성들의 눈을 멀게 하며 나아가 그들을 우상 숭배에
빠뜨리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예레미야 등과 같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을 책망하며 그들의 득세를 애통해 했다.
(렘 5: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예수께서도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을
'양의 옷을 입은 이리'로 표현하며 경계하셨다.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