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의 문제
성 경: [눅 5:33-35]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눅5: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 금식하며 기도하고 - 예수 당시에 금식은 아주 일반화되어 있었다.
원래 유대 민족은 금식을 속죄일(7월 10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실시하였다.
(레 16:29 이것은 너희를 위한 영원한 규례다. 일곱째 달 10일에 너희는 본토 사람이든 너희 가운데에 잠시 살고 있는 외국 사람이든지 근신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이나 네페쉬'('영혼을 괴롭게 하다')라 하여
율법으로 엄히 명한 것이었다.
이외에 유대인들은 금식을 국가적 재난이나,
(삿 20:26 그러자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든 백성들이 벧엘로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그들은 그날 저녁 때까지 금식하고 여호와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우리말성경),
병들었을 때,
(시 35:13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금식할 때,
(삼상 31:13 그들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에 있는 나무 밑에 묻고 이레 동안 금식하였더라),
회개할 때,
(왕상 21: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위험이 임박할 때, 재앙을 기념할 때나 기근 때에 실시했다.
(대하 20: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그런데 유대 민족은 바벨론 포로생활 당시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없었던
결과로 자신들이 당한 재앙에 대한 애도와 회개의 뜻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는 의미에서 금식을 시작했다.
이 금식은 예루살렘 파멸과 관련하여 나흘을 했는데
(1) 성전이 불탄 날(5월 7일) ;
(왕하 25:8-9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2) 그달리야 피살일(7월 2일);
(왕하 25:23-25 모든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24) 그달리야가 그들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인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며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25) 칠월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또 그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지라),
(3) 성전 포위 개시일(10월 10일);
(왕하 25:1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4) 성전 함락일(4월 9일)등 이었다.;
(왕하 25:3-4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4)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가 아라바 길로 가더니)
이 외에도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즉,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올라간 목요일과
그것을 가지고 내려온 월요일을 기념하여 금식일로 지켰고
경건한 사람은 더 자주 금식했다(외경 유딧서 8:6).
그러나 이 금식의 의미는 갈수록 개인의 경건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과시 행위로 전락하여 외적인 자기 과시와 위선이
많이 개재되어 예수의 질책의 대상이 되었다.
(마 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는 강제적이고 의식적인 성격을 띤 자기 과시나
종교적 공적을 쌓는 행위로서의 금식을 단호히 배격하시고 금지하셨다.
예수께서도 금식을 하셨지만 그것은 자발적 형태로서의
영적 훈련으로 실시하셨던 것이다.
(마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6:16-18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 바리새인의 제자들 - 침례 요한의 제자들에 관한 언급은
복음서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
(7: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막 6: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요 1: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그러나 '바리새인의 제자들'이라는 표현은 약간의 문제가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당시 대다수의 랍비들처럼
제자들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요세푸스와 렝스토르프의 견해처럼
'바리새인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 때때로
'예언자의 아들들’
(왕하 9:1, 개역성경에는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로 표현)이라는
표현을 '...의 제자들'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표현은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 교훈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 먹고 마시나이다 - 예수께 바리새인들이 하나의 질문 형식으로 묻지 않고
사실을 말하는 형식으로 묻는 것은 교묘한 질문 방식이다.
30절에서 대적들은 예수께서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고 비난하였으며
이에 대해 예수는 당신의 오신 목적이
바로 죄인 구원에 있노라고 대답하셨다.
(31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이제 여기서는 대적들이 '먹고 마시는' 일 자체를 가지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대적들은 예수의 제자들과 침례 요한의 제자들을
반대 입장에 둠으로써 예수를 배타적으로 소외시키려 하고 있다.
먹고 마시는 일은 인간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요
그 자체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특정한 날을 정하여
금식하는 형식적 행위에 연연한 나머지
그러한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으시는 예수를 비난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금식에 관한 형식적 틀을 초월하셨으며
진정 필요할 시에는 금식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35절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 9: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눅 5: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 구약성경과 유대교에서 신랑이라는 표현은
흔히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사 54:5-6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렘 2: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호 2: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이와 관련하여 예수는 자신이 세상에 있는 것을 혼인잔치와 비교한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와 교회와의 관계를
신부와 신랑의 관계로써 비교한다.
(마 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요 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계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21: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유대인의 혼인 잔치는 보통 일주일 동안 베풀어졌다.
이 잔치 마지막 날 신랑의 들러리를 맡았던 친구들은
신랑을 신부 방에 데려다 주고는 잔치 집을 떠난다.
이 일주일 동안의 잔치는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매우 요란하고 화려하게 치러지기 때문에
이때 금식일이 닥치어도 금식을 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신랑을 신부 방에 데려다 준 연후에 집에 돌아와서
금식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실로 금식은 강제적이고 형식적 절차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점을 경고하셨다.
그가 함께하여 자비로운 사역을 베풀고
생명과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현재는
결혼 잔치와 같은 기쁨과 행복의 순간이기 때문에
금식하며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금식의 실행 여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눅 5: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 예수는 당연히
기뻐해야 하는 결혼식을 비유로 들어 금식에 관한 자기의 뜻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결혼식에서 신랑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은 다소 어색한 일이다.
예레미야스(Jeremias)에 따르면
이는 위경 제4에스라 10:1에 나타나는 사상으로
"내 아들이 결혼식장에 들어가 죽임을 당한다.
이로써 나는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며
내가 죽을 때까지 슬퍼하며 금식하기를 작정하노라"는 내용이다.
(Jeremias, Theology I, 283).
이러한 사상을 예수께서 염두에 두었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으나
어쨌든 이 비유는 분명히 예수가 죽어서 제자들과 이별하게 되어
제자들이 금식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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