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 마태를 부르심
성 경: [눅 5:27-32]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5: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 세리(텔로넨) - 로마 정부는 유대인들로부터
인두세(人頭稅, tax per head)(마 22:15-22)와 토지세, 통행세 등과
(마 22:15-22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같은 각종 세금을 거두기 위하여 감찰관(censor)들을 각 지방에 파견하였는데
이들은 돈을 받고서 위탁 형식으로 조세징수권을 유대 고위 인사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유대 고위층들은 이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다시금 조세 징수원을 고용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세리이다.
이들 세리도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곧 세관에 근무하면서 통행세와 같은 간접세를 받는 세리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인두세와 같은 직접세를 징수하는 세리이다.
아무튼 이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창녀와 같은 죄인 취급을 당하였는데,
그 이유는
(1) 이들이 유대를 지배하는 로마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점에서이고
(2) 이들이 동족들에게 그것도 가난한 자나 부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똑같이 과다한 세금을 부과하여 그 잔액을 자신들이 착복하였기 때문이다.
▶ 세관(稅官) - 가버나움에 있던 로마의 세관이다.
가버나움은 로마 군대가 상주해 있을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는데
(7:1-10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마 8:5-8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특히 북쪽으로는 수리아 지방으로,
남쪽으로는 유대와 애굽 지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목에 위치한 탓에
통관세를 징수하는 로마의 세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레위'(마태)는 이곳에서 근무하던 세관원이었다.
▶ 보시고 - 이 동사는 관찰자가 주의 깊게 보는 것, 즉 '눈여겨 보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예수께서 레위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
그를 특별히 골라 내셨음을 알 수 있다.
[눅 5: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 자신을 따르라는
예수의 직접적인 명령에 레위는 주저하지 않고 즉시로 그를 따라 나섰다.
레위가 예수를 따라나선 것이 세리라는 직업을 버리고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모든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았으리라고 짐작된다.
레위의 이런 행동은 후에 상세히 밝혀지게 될
제자도(discipleship)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누가는 레위의 행동의 두 가지 면,
즉 모든 것을 버리는 소극적인 면과
그를 따르는 적극적인 면을 모두 보여준다.
(9:23-25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눅 5: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 큰 잔치 - 신약성경에서 잔치는 기쁨을 상징하며,
때로는 하나님이 성도들을 위해 베푸실 종말론적인 천국 잔치를 암시하기도 한다.
(13: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14: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레위가 예수를 모시고 잔치를 배설한 것은 접대와 송별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또한 자신들의 옛 친구 들도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함이었을 수도 있다.
[눅 5: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 세리와 죄인 - 29절에서 '다른 사람'이라고 언급된 사람들은 결국 '죄인들'이었다.
'죄인들'을 나타내는 '하마르톨로스'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적 신분을 규정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막 2: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죄인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율법의 준수 여부였다.
이는 곧 율법을 지닌 사람들은 본래 거룩하며 반면에
율법 밖에 있는 사람들(이방인)은 본래 죄인임을 의미했다.
바리새인들은 또한 그들의 계명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
즉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죄인으로 간주했다.
(K. H. Rengstorf, TDNT. I, 317-35).
(마 12: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15: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특히 압제자인 로마의 앞잡이로 동족의 고혈을 짜는 세리는
죄인중의 죄인이요 극단적 경멸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불경스런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의 계명의 본질적인 한 부분을 범하는 행위였다.
이들 바리새인들은 특히 유대교적 신앙과 생활을 고수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러한 헌신의 노력으로 그들은 도덕적, 의례적 순결성에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분리시켰다.
여기서 분리된 사람들은 죄인으로 간주가 되어 반드시
정결 예식을 거쳐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갈릴리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 제시하는 그러한 율법의
조항들을 경멸하고 무시한다는 평판을 듣고 있었다.
▶ 먹고 마시느냐 - 바리새인들이 특별히 먹고 마시는 행위에 대해 비난한 것은,
식탁에서의 교제가 그들의 사회에서는 '서로를 받아드린다'는 것을
말해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눅 5: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건 – 예수는
속담이나 비유를 만들어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퍼져있던 속담이나 비유를 지혜롭게 사용하셨다.
이 구절에서 '건강한 자'와 '병든 자'의 대비는
32절의 '의인'과 '죄인'의 대비와 연결된다.
(32절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한편 영혼의 의사로 이 땅에 오신 예수는 아픔을 호소하는
모든 병자를 진단하시고 치료하신다.
그러나 의사의 몫까지 자처하여 스스로를
건강한 자로 진단내리고 처방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는
예수의 처방이 적용되어질 수 없었다.
오직 그들에게는 자신의 오진(誤診)으로 인한
죽음의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눅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
예수께서 이같이 말씀하신 것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기 위함이었다.
사실상 그들의 의인(義人)인체하는 태도는 스스로의 무지와 잘못을
폭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실상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물리치시며
자신의 무가치함과 구원의 필요를 깊이 느끼는 자들에게
구원의 초대를 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구원의 초대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진실된 회개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예수의 말씀의 요지는
누구든지 회개에의 호소에 진실로 응답하려면
먼저 죄인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행 구절인 마 9:13과 막 2:17에는 빠져있는 '회개'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누가는 예수께서 인용한 속담의 신학적 의미를 밝혀준다.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또한 이 '회개'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누가는 매우 중요한 주제를 도입한다.
그것은 은혜와 용서의 복음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임은 사실이지만,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18:13, 14에 나오는 세리는 이런 전제조건을 충족시켰지만,
(18:13-14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18: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한편 본 구절의 '회개'라는 주제는 15:7, 10, 22-27, 32에서
'기쁨'이라는 주제와 연결되고 있다.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22-27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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