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치료하시는 능력
성 경: [눅 6:17-19]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눅 6: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 '그들'은 이미 택하신
열 두 사도들뿐 아니라 그외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까지 지칭한다.
밤이 맞도록 기도를 하시고 제자들을 택하신 예수께서
계속해서 산에만 계실 수 없었다.
이제 택한 제자들과 '함께' 세상으로 나가서 죄악에 빠진 영혼들을
구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셔야 했다.
▶ 평지에 서시니 - 여기 언급된 '평지'는 마 5:1의
'산 위'(mountainside)의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여기서 '평지'를 나타내는 헬라어 '에피 토푸 페디누'는 반드시
저지(低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평지를 뜻하기도 한다.
누가의 기록은 예수께서 산 위의 높은 곳에서 기도하시고 12제자를
선택하신 뒤 산 아래 낮은 곳을 향하여 내려오신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마태의 기록은 사방 각지에서 몰려든 군중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산 위를 향하여 올라간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일단의 두 일행이 산언저리의 어느 한 평평한 곳에서 만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두 복음서간의 차이점은 해결될 수 있다.
▶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
마태는 '무리'와 '제자들'(5:1)을 언급하고 있는 반면에,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누가는 이 구절에서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다른 여러 곳에서 온
많은 백성들을 말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평지에 멈추어서 가르치실 때 그 주위에
몇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예수께서 택하신 열 두 사도들,
그들 보다 좀 많은 제자들의 무리,
그리고 일반 군중들이었다.
백성들이 허다하게 몰려든 목적은 예수의 권능있는 말씀을 듣고
또 그의 치유 능력을 보고자 함이었다.
한편 여기서 각 지방의 이름은 곧 팔레스틴 지역을 뜻한다.
앞 페이지의 지도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예수의 치유 사역은
이스라엘은 물론 이방 각처에서도 행해졌다.
여기서 '유대 지방'이라함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남쪽 지역 전체를 말하는 것이고,
두로와 시돈은 갈릴리 동북쪽으로 베니게에 속한 항구 도시이며 이방 지역이다.
따라서 팔레스틴 남. 북부 지역을 언급함으로써 사방 각처에서 예수의 말씀과
병고침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음을 강조한다.
한편 마태의 평행 구절에서는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요단강 건너 지방까지
언급함으로써 팔레스틴 전지역을 서술적 형태로
표현해 의미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눅 6: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 누가는
귀신들린 자들과 단지 육체적인 질병을 앓고 있던 자들을 구별한다.
이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더러운 귀신에게'가 '고난 받는'과 연결될 수 있고
둘째는 '고침을 받은지라'와도 연결될 수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고치다'(데라퓨오)는
예수의 기적적인 치유를 말할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로서
서술적인 반복의 뜻을 나타내는 미완료 수동태(에데라퓨온토)로 쓰였다.
본 구절과 19절에서 묘사된 바와 같은
이적적 권능(power)과 고침(healing)에 관한 강조는 누가복음의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이 기사는 평지 수훈 직전에 위치함으로써
그 가르침의 권위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눅 6: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 예수의 치유 능력이 알려지게 되자
무리들은 예수를 만지기만이라도 하려고 모여들었다.
병자들은 예수의 권위와 능력에 압도되어 예수에게 감히
개인적인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요청하지 못했다.
예수를 만짐으로 병을 고치는 기사는 8:43-46에서도 나타난다.
(8:43-46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물론 예수의 옷자락 자체에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다만 예수께서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과 병자들이
예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하나가 되어 빚어진 결과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께 몰려온 병자들의 무리 개개인이
예수를 통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준비되어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수를 만진 병자들이 나음을 얻은 것은
그들을 불쌍히 보신 예수의 주권적인 은혜를 시사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