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3일 토요일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성 경: [21:1-5]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21: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그 후에 - 이는 20:26-29에 이어지는 사건을 도입하는 문구로서,

 

(20:26-29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구체적이고 정확한 시간을 나타냈던 20:26의 표현과는 달리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표현법이다.

 

이 문구로는 이후에 이어지는 사건의 발생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학자들은 20:26-29의 현현 이후

그리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고 본다.(Tenney).

 

디베랴 바다 - 요한은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로 내려갔음을

따로 기록하지는 않았으나 본문은 이를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디베랴 바다'

 

'갈릴리 바다',

 

(6: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긴네렛 바다',

(34:11 그 경계가 또 스밤에서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 동쪽에 이르고 또 내려가서 긴네렛 동쪽 해변에 이르고),

 

'긴네롯 바다',

(12:3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이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쪽으로 비스가 산기슭까지이며),

 

'게네사렛 호수',

(5: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기도 했는데,

 

'디베랴 바다'로 불리어진 까닭은

'디베랴'가 갈릴리 지방의 수도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타내셨으니 - 여기에 서술되는 예수의 현현은,

요한의 말대로 하면 세 번째이나 정확하게는 네 번째이다.

 

첫 번째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내셨고

 

(20:16-17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두 번째

도마 외의 다른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

 

(20:19-23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 번째

도마를 포함하여 제자들이 모였을 때

 

(20:26-29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그리고 지금이 네 번째이다.

 

아마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것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만을 구별하였던 듯하다.

 

 

[21: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함께 있더니 - 함께 있던 제자들은 모두 7명이었다.

 

이중 '세베대의 아들들'이란 요한과 야고보를 가리킨다.

요한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세베대의 아들'로 표현한 것은

아마 그의 겸손한 성품 때문일 것이다.

 

한편 본문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두 제자는

빌립과 안드레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J. Haubleiter).

 

또한 여기에 나온 제자들이 왜 갈릴리에 내려왔는지에 대해서

저자는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다.

 

(1)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시킨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그의 추종자들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혐의점을 찾아 핍박하려 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 갈릴리로 갔을 것이다.

 

* 참조 ;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자 실망에 빠진 나머지

과거에 자기들이 거주하였던 갈릴리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3) 갈릴리로 가서 예수를 만날 준비를 하라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리하였을 것이다.

 

* 참조 ; (28: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이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추측은,

현재의 상황이 이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라는 점에서

다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며 세 번째가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결코 하찮은 일이라 할 수 없는

갈릴리에서의 재회 약속이 언급되지 않은 점과

제자들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점 등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

 

이 이야기가 복음서의 현 위치에서 갖는 의미는

사도의 사명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즉 사람을 낚는 것으로서의 사도적 사명은

예수의 명령과 도와주심에 의해서만

온전(穩全)하게 수행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는 것이다.(Sanders).

 

본문 가운데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라는 표현은

베드로를 비롯하여 그의 동료 제자들이

주님과 관계없이 일을 시작했을 때 그들은

완전한 실패에 부딛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주며

예수께서 직접 관여하여 성공을 거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6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사도적 사명은

온전히 주님의 지시를 따를 때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날이 새어갈 때 - 지금 갈릴리 바다에는 여명이 밝아와

어느 정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밝아졌다.

 

그런데 바닷가라는 특성상 자주있는 일인 것처럼,

어느 정도 안개가 끼어 있었다.

그런데다 제자들은 설마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곳에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예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두 번씩이나 예수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 것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니면 눅 24:16의 상황처럼

제자들의 눈이 가리워져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24: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바닷가에 서셨으나 - 여기에는 예수께서

어디서부터 또 어떻게 그 자리에 왔는지 설명이 없다.

 

다만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다고 언급될 뿐이다.

아마 이것은 20:19에서 문이 닫혀 있었음에도

아무런 물리적 작용 없이 제자들 사이에 서셨던 것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얘들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이디아'

'아이'를 뜻하는 '파이스'에서 온 말인데

현재의 문맥에서 이에 호칭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로 갈린다.

 

혹자는

'! 여보게들!'의 뜻으로 보며,(Robertson)

 

또 어떤 학자는

'젊은이들!'의 의미로 본다.(Lenski).

 

현대 헬라에서는 성인(成人)들에 대하여 그 칭호를 사용한다고 한다(Barrett).

 

본문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애들아'(Children)라고 불렀을 때 그것이

부모가 아이들을 부르는 것과 같은 의미였든

아니면 젊은이들로 부르는 것이었든,

적어도 매우 친밀하고 애정이 담긴

부르심이었을 것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예수께서는 이런 마음으로 아침 식사를 마련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9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 예수께서는 이미

제자들이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 물음은 18:35에서 처럼

당연히 부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물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18: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본문에서 '고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라기온'

'먹다'라는 의미의 어근 '파그''와 함께'를 뜻하는

'프로스'가 결합된 것으로

'떡과 함께 먹는 양념'(특히 생선과 함께 요리함)을 가리키기도 하고

 

'일용 양식의 하나'를 가리키기도 하였으나

후에는 생선을 가리키는 '아폰'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Robertson).

 

그러니까 본문의 '고기'

'생선'이라는 의미에서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없나이다'라는 부정의 대답은

제자들이 철저한 실패의 상황에 직면하였음을 말해 주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은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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