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근본
잠언 제1장 7-9절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9)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사람의 대다수는 생각한다.
'여호와를 경외함은 신앙의 근본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은 도덕의 근본이다. '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족하지 못하다.
여호와를 경외하기에 이를 때,
사람은 비로소 우주만물의 통일 및 그 상호관계를 깨닫는 것이다.
산만한 지식은, 참된 지식으로서의 가치 없는 것으로서,
상호의 관계통일이 있음으로써만 지식은 산 것으로 된다.
그리고 또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품기에 이를 때,
비로소 겸손하게 되는 것이다.
으쓱 대는(교만한) 사람 가운데 참된 학자는 없다.
스스로 아는 줄 생각하는 사람처럼, 실은 무지한 사람은 없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 안 최대의 학자 중에는 그러한 사람은 없었다.
Philosopher란, 세상에서 일컫는 소위 철학자는 아니다.
아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 그것이 참된 philosopher이다.
이것은 중요한 일이다. 제군의 주의를 촉구하고자 한다.
영국의 대정치가 글래드스턴(1권 9p 주)이 나이 70세에 달한 때,
원어로써 이프센을 읽으려고 노르웨이어의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본에 이런 사람이 있는가?
단순한 지식욕은 아니다. 신앙상 깊은데서 온 것이다.
다음으로
'미련한 자는 지혜와 교훈을 경시한다'(7)
이것은 상반절에 대한 것으로, 양자가 서로 어울려 일구를 이룬다.
따라서 그 사이에 의미의 연락이 있다.
잠언 중에 '미련한 자'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어 있다.
그리고 한가지로 미련한 자로 번역 한대도, 그 원어는 꼭 동일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evil(에빌)이라는 자가 씌어져 있다.
살집이 좋고, 턱없이 비만한데다가, 미련하여 이해 없는 사람,
영어의 Stupid(우둔한 멍청이)에 상당(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여, 지식을 얻고,
따라서 지혜와 훈회를 중히 여기기에 이르는데 반하여,
미련한 자는, 그것을 경히 여기는 결과,
무지무식의 사람이 되어 버린다.
다음으로 이 말은, 일반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또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해석할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사람에게서 배우려 하지 않고,
자진하여 지식을 엮으려고 하는 일 없이,
만족히 여기고 있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는데,
특히 또 이것을,
하나님께 배우려 하지 않는 자의 어리석음(미련)이라고 해석 할 수가 있다.
그리고 후에 배우듯, 하나님은 각양의 훈도와 교시를 사람에게 향해주신다.
하나님의 훈도(훈계)의 교시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
그것은 최대의 우둔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의 교시와 훈도(훈계)를 경시하는 자야말로 미련한 자이다.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지혜와 가르치심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아무리 학문이 깊대도, 박사일지라도, 철학자라해도,
성서를 버리고서 돌아보지 않으면,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한자기 일을 경시하는
부우의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들 다소라도 광명을 안 자에게는, 그들이 실로 미련함을 안다.
인생에 있어서의 실험(체험)을 통하여, 비로소 해득하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우리들을 경계(훈계)하는 깊은 의미 있는 일구(一句)가 기다린다.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네 어머니의 법도(규칙)를
버리는 일 없도록 하라. 이것은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 되고,
네 목의 장식으로 되리라'(8-9).
기원전 천년의 당시에는 서적이라는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은 oral tradition(구비)였다.
특히 오늘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의 교사 같은 것은 아주 없었고,
그 위치에 서는 자는, 실로 부모였다.
아라비아인은 지금도 그러하다고 듣는다.
모름지기 예수도 구약성서의 거의를 그 부모에게서 배운 것이었으리라.
인생최대의 것, 특히 하나님께 대한 신앙심,
이것은 실로 부모에게서 온 것으로, 이것만은 서적도, 학교도 줄 수는 없다.
미국의 대통령이 그 직에 나아갈 때(취임 시)는,
대개의 경우 먼저 군중의 목전에서 서약을 하는데,
그때는 언제나 자기 노모의 성서에 입맞춤 한다고 한다.
얼마나 impressive ceremonial이랴!
지난 해의 여름, 그 노부의 집에서 함께
백성 생활을 하고 있던 현 미대통령 쿨리지씨에게
'하딩 사거, 후임자는 귀하이다'라는 전보가 배달되었다.
날이 서늘할 무렵, 아직 밭에 있던 그의 아버지는,
그를 함께 데리고 집에 들어가, 다년 읽어서 낡아진 자기 성서를 취하여,
손을 그 위에 놓고서 말했다.
'네 아버지의 성서가 여기 있다. 그 위에 네 손을 놓고서 맹세하라'.
이렇게 하여 이 위대하고, 경건한 부자는
고요한 버-몬트주의 전원(田園)의 저녁에 기도를 함께 했던 것이다.
이는 또 실로 장엄 엄숙한 극적 장면이 아닌가?
이것이 있음으로써, 대국의 운명을 일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어서의 최대 행복은 크리스천 부모를 가지는 일이다.‘
(회원 중에 이런 행복한 자가 4, 5명 있었다)
신자의 부모는 실로 귀한 것이다.
자식 된 자는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정도의 차는 있어도, 귀한데 있어서는
불신자의 부모라고 해서 아무 다를 바 없다.
나의 아버지는, 나보다 후에 신앙에 들어왔지만도,
내게 가장 중요한 교훈을 준 것은, 실로 나의 아버지였다.
즉 무사(사무라이)로서 밟아가야 할 길,
즉 무사도를 어버이만큼 진실을 사람의 자식에게 말하는 자는 없다.
아버지는 현세에 있어서,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대표자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소위 신인으로서 자처하는 근대인,
그 부모를 낡고, 완고하다고 하여,
경시하며 돌보지 않고, 비웃으며 욕되게 하는 그들 사람의 자식이여!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까지 사악에 이르게 한 책임은,
도대체 누구위에 있는가?
개탄해야 할 것은, 신문지상의 광고기사이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돈 것일까?
그들은 말한다.
'도덕이란 무엇인가?
적당하게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타인과의 약속이 아닌가!
우주가 존재함은 자기 위해서다. 천지의 주는 자기라'고.
이리하여 그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생최선의 지혜에서 영구히 인연을 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떠날 때 사람의 지식은 결코 설 수 없다.
특히 인생의 기본문제에 있어서 그러하다.
이것은 그릇됨 없는 사실이다.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교훈을 듣고, 네 어머니의 법도를 버리는 일 없도록 하라'.
이같이 말할 때,
우리들은 솔로몬의 입에서 논어(1권 4주)를 듣게끔 된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교이다.
그리스도교에 충효 없다고 한 자는 누구인가?
여호와를 경외함은 지식의 근본이라고 가르친 솔로몬은,
'아버지의 교훈을 듣고, 어머니의 법도를 버리지 않도록 하라,
이것 또한 지식의 근본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즉, 9절에서 읽을 수 있는 대로이다.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여호와를 경외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순종하는 것이,
지식에 있어서 공헌하는 일 가령 근소하다 해도
그것이 그 사람의 생애를 어느 만큼 장식하는지 모른다.
훌륭한 학자들이 그 부모에게 쓰이는데
종순의 덕으로써 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있으랴!
가끔 이야기한 죤 애덤즈의 이야기를 여기서 다시 해 보자.
미국 제 6대 대통령 죤 퀸시 애덤즈씨가 대통령의 직을 물러난 후,
대의사로서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대의사는 지금과 달라, 특히 일본의 그것과 달라, 매우 검소했다.
어느 때,
그는 수인의 동료와 같은 여관의, 같은 방에 숙박하게 되었다.
밤 잠자리에 들려할 때 그는 무릎 꿇고,
침상위에 머리를 얹고서 소리 높이 기도한 것은 '주기도'였다.
옆에 있던 동료는 혹은 놀라고, 혹은 웃었는데,
그는 말했다.
'이것은 내 어머니의 기도이다.
내가 어린아이 때부터 하루도 빠뜨리는 일 없이,
나와 함께 기도해 준 내 어머니의 기도이다.
나는 이 해에 이르기까지,
무어라 해도 이렇게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렇게 말하고 미소 지은 그의 머리에서,
나는 빛나는 금관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지식과 지혜 위에, 이 마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참으로 장식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장식 같은 것은 없어도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훌륭한 학자, 박사이면서, 이 점에 있어서 견딜 수 없도록 흉한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이
'아버지의 교훈을 듣고, 어머니의 법도에 따라서’
서는 때,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아름다운 인생의 장식이다.
(내촌감삼의 1924년 6월 '성서지연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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