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따르라
성 경: [요 21:18-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
'진실로 진실로'라는 도입 문구는 현재 분위기의 엄숙함을 시사한다.
그리고 도입 문구의 엄숙함에 걸맞게 베드로의 순교(殉敎)가 예고되고 있다.
다음절(19절)과 관련시켜 볼 때 베드로가 자연적인 죽음이 아닌 방식
즉 순교의 형태로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본다.
베드로에게 주어진 소명은 이제 거역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기의 삶을 자의적(自意的)으로 살 수 없다.
그는 주님께 붙잡힌바 되었는데 그것은 억지로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과 감화로 말미암아 자발적인 결단에 의한 것이다.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그러므로 주님께서 양들을 위하여 예고된 죽음을 자취한 것처럼,
베드로도 노쇠하여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하는 양들을 위하여 죽음의 길을 자발적으로 걸어가게 될 것이다.
(15-17절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요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 여기서의 '죽음'은 자연적인 죽음이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고 양들을 돌보는 목회적(牧會的) 직무를
수행하다 강제적으로 부과된 죽음,
곧 순교를 가리킨다.
이 순교는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점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베드로는 이런 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것은 그의 주님이신 예수께서 죽음으로 하나님을 영광되게 한 것과 같다.
그런데 성경에는 베드로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순교를 당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마지막 행적은
헤롯 아그립바I세(Herod Agrippa I, 37-44)의 박해를 받아
옥에 갇혔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탈출한 후,
(행 12:1-19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예루살렘 공의회에 나타난 것으로 끝을 맺는다.
(행 15:1-1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성경 외의 초기 문헌들에는 베드로의 최후 행적에 대한 기록이
어느 정도 보존되어 있다.
로마의 감독 클레멘트(Clement, 88-97)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클레멘트1서)에는 베드로가 바울과 함께 로마에서
순교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터툴리안(Tertullian)은 베드로가 네로(Nero) 황제의 통치 하에서
바울과 같은 십자가에 처형되어 순교했다고 말했으며
그는 베드로의 십자가 죽음에서 '남이 네게 띠 띠우고' 라는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보았다.
유세비우스(Eusebius)는 베드로의 십자가 처형과 관련하여
그가 자청하여 머리를 아래로 두는 형태로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었다고 전한다.(HE, III, i. 2).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진술의 배경에는
'주님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바른 자세로 처형되었는데
내가 어찌 주님처럼 바로 매달릴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에서
베드로의 겸손하고도 철저한 순종(順從)을 시사하는 뜻이 들어있다.
또한 신약 외경인 '베드로 행전'에는
비록 사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는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길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베드로는 그리스도에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그분은
"네가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 하니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려고 로마로 간다"라고 대답하셨다.
이 대답을 들은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로마로 되돌아가 사역을 계속하다 체포당한 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처형당하였다는 것이다.
▶ 나를 따르라 - 본문은 13:36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13: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결국 그 말씀은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에까지
이르러야 함을 시사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미 베드로가 따르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그것은 베드로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시는 능력으로 가능하다.
순교에까지 이르도록 자신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철저히 복종하는 것,
그것이 사도직의 진정한 의미이다.
(12:25-26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막 8:34-35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요 21: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 소위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는 계속해서 베드로에 버금가는 중요한 인물로 서술되고 있다.
(7절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20:2-8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이 제자가 예수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라는 13:23의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
(13: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한편 본문의 의미는 예수를 베드로가 먼저 따르고 있고
그 뒤를 요한이 따라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결국 본 구절은 베드로에 대한 요한의 우월성을 암시 한다기 보다는
다만 요한도 베드로에 못지않게 예수를 따르는 일에 뛰어났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요 21: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 베드로의 이러한 질문에 대한 동기를,
많은 학자들은 요한에 대한 질투에서 찾는다. (Olshusen, Lucke, Meyer, Baumlein).
즉 베드로는 자신의 순교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듣고서,
그렇다면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인 요한도 당연히
순교를 당함이 마땅하다는 식의 바램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베드로는 요한의 장래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정심에서 이런 질문을 했을 수도 있다.(Godet).
[요 21: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베드로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베드로는 요한도 자신과 같은
순교의 운명을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의 마음을 읽은 예수는 그의 생각과 전혀 다른 대답을 하고 있다.
즉 요한은 순교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주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살아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베드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베드로는 다만 자기의 사명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너는 나를 따르라'는 강조적 명령문에 의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본 구절에서는 두 가지 사실을 추출해 낼 수 있는데
하나는, 베드로나 요한이나 그들 모두의 운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베드로와 요한은 각각 독립적인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
따라서 그들의 종국(終局)에 의해 그들의 비중이 결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요 21: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 본 구절은 베드로의 물음에 대한
예수의 대답이 상당히 오해되어 전파되었음을 보여준다.
(19-22절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형제들'이라는 호칭은 잘못 이해된 이야기가
기독교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형제들'이라는 칭호는 초대 교회 시절부터
동료 그리스도교인들을 부를 때 사용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행1:15-16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예수의 말씀은 요한이 당신의 재림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만약 주님께서 당신의 재림 때까지 요한을 살려둔다 하더라도
베드로는 아무런 신경을 쓸 것이 없다는 의미였는데
전자의 의미로 오해되었다는 것이다.
이 오해는 본서의 저자로 하여금 바로잡아야 한다는
필요를 느낄 만큼 심각한 문제였을 것이다.
초대 교회의 교인들 사이에 이런 오해가 설득력 있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도 큰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의 교인들은 매우 가까이 임박한 재림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바 그들은 자기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주의 재림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마 16:27-28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행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살전 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계 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렌스키(Lenski)에 의하면 요한이 죽어 장사된 다음에도
그가 죽지 않고 무덤 속에 살아있다는 전설이 유포(流布)되었었다고 하는데,
이는 초대 교회 교인들에게 오해된 말씀이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능히 짐작케 한다.
(2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 21: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 이 사람이라 -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 그는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고
본서의 저자로서 복음을 증거 하였을 뿐 아니라 기록으로도 남겼다.
예수의 생전에 그와 함께 하였던 제자,
더구나 예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애제자가
이 복음서를 기록하였다는 것은 그 증거하는 내용이
신뢰할 만큼 권위 있음을 시사한다.
▶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 본문은, 요한이 쓴 이 복음서가
진실되고 신뢰할 만한 것임을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우리'라는 보증인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의 주석 학자들은 이 '우리'라는 표현에 대해
'에베소의 장로들'이라고 보기도 하고(Lenski),
사도의 증거를 확증할 수 있는 사도 교회라고 보기도 한다(Barrett).
혹은 요한이 자신과 동역자들 그리고 본서의 독자들을
공동체 의식속에 묶어 본서의 진정성을 함께 확증시키려는 의도로
그러한 표현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어느 것이 옳다고 확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이건 본문이 이 복음서의 진정성을
받아들이도록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도 이미 인정하고 있는 복음서의 권위를
확증하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요 21: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
요한은 20:30에 이어 다시 한번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이
자기가 기록한 것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많다는 사실을
과정법적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강조하려 애쓰고 있다.
(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이 표현은 확실히 모리스(L. Morris)가
'유쾌한 과장법'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여유있는 마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코 과장이라고 할 수 없는 진솔한 고백이 담겨있다.
(1) 그리스도가 행하신 놀랍고도 수많은 일들을
다 기록하기에는 저자인 요한의 힘이 너무 달린다든 것,
(2)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계시된 복음은 몹시도 심원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 둘 수는 없다는 것(Lenski)이 그것이다.
♣ 이상으로 요한복음공부를 마칩니다.
*주님,
베드로에게 분부하시는 말씀을 다시 한번 되 내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삶의 전체가 주님의 손 안에 있사오니
주님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면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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