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9일 금요일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은 지식의 본원이다

  

잠언 제 1장 제 7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은 지식의 본원이다'(1:7)

 

 

'여호와'

만물의 조물주이시며, 인류의 아버지이시다.

 

그 성의가 천연에 나타난 것을 천칙(天則)이라 하고,

사람에게 나타난 것을 도()라고 한다.

 

여호와는 모든 법칙의 본원이시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떠나서,

천지와 그 중에 있는 모든 것을 궁구(窮究)할 수 없는 것이다.

 

'두려워함'은 물론 경외함이다.

 

중시함이다.

그 율법을 범하지 않도록 애씀이다.

법칙엄수의 백성이기를 바람이다.

천칙과 인도에 복종하려 함의 정신이다.

천의로서 아의를 지배케 하렴의 결심이다.

종순하는 아이가, 그 아버지에게 씌이는 마음을 가지고서

여호와의 명하심에 청종하렴의 겸손이다.

 

'지식'

만물의 진리와 진가를 아는 일이다.

 

단지 그 현상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실재의 이유를 깨닫는 일이다.

그 상호의 관계를 알고, 그 도덕적 교훈을 해득하며,

여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의를 깨닫는 일이다.

 

지식은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깊이 깨닫는 일이다.

영적으로 깨닫는 일이다.

 

사도바울이 말한 '성령이 주시는 모든 지혜와 깨달음'(골로서 1:9)이다.

'본원'-발단이다.

비결이다.

만물의 비밀을 열기 위한(풀기 위한) 열쇠이다. 필요조건이다.

이것 없이 지식의 문에 들어갈 수 없다.

또 그 중에 섭렵 할 수 없는 것이다.

 

실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 없이,

진정한 지식에 달할 수 없다.

 

진리를 사랑함의 열정 없이, 진리는 오인에게 그 오의를 전해주지 않는다.

무사무욕함은, 성도에게만 필요하지 않다.

또 학자에게 필요하다.

오인은 진리 앞에서는, 무엇이라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는 역사가

세상에 아부하는 철학자,

욕심에 치닫는 이학자는

모두 진리탐구의 자격 없는 자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란, 교회신자를 말함이 아니다.

입술로써 하나님을 찬미하는 자가

반드시 하나님의 성의를 마음에 새겨 지닌 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매, 그를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참(진리)으로써 할 것이다.'(요한복음 4:24)

 

 

겸손,

그것을 가지고서 진리를 추구하는 자,

이는 교회당에서 승려의 축복을 받지 못한대도,

참으로써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이다.

 

진정한 지식이

왕왕 교회신자가 불신자로 간주하는 자중에서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교회는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일컫는 것으로써

진리를 전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함 없이, 피상적인 지식은 있으리라.

단순히 사물을 사물로써 보는 지식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함 없이,

강기(剛氣)의 사람은 소위 만물박사 일 수 있으리라.

 

만권의 글을 독파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온갖 식물과 동물과 광물의 명칭을 알고, 그 특성을 암기하는 것은,

별로 불가능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성서 기자가 지식이라 일컫는 것은 아닌 것이다.

 

까마귀는 검은 새라고 아는 것은, 만인도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까마귀를 지식적으로 알고자 하면,

그 만유에 대한 관계와, 그 특성을 가지고서 대표하는

도덕적 의의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천연물을 잘 아는 것은, 그 표본의 채집가가 아니다.

또 그 구조의 해부가가 아니다.

 

다윈(124p )처럼,

그 상호의 관계를 자세히 알자,

워즈워드(1105p, 2154p )처럼

그 도덕적 의의를 깨달은 자이다.

 

천연을 통하여,

천연의 하나님께 달하고자 하는 자가 아니면,

진정한 지식에 달할 수 가 없다.

세계 대학자의 대다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였다.

 

이학에 있어서는 뉴턴(1106p ),

성학에 있어서는 코페르니쿠스(1163p 참조)허셀(5권 색인참조),

의학에 있어서는 하비,

화학에 있어서는 험프리패러디,

철학에 있어서는 칸트(455p ),

국법학에 있어서는 그로티우스,

사학에 있어서는 랑케,

언어학에 있어서는 막스 뭘러,

 

이들은 모두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여호와를 경외한 사람들이었다.

 

다윈(124p ), 함볼트 ,

많이 하나님에 대해 말한 사람은 아니라 해도,

그 겸손하고도 진리에 충실함이란,

두텁게 진리의 신을 믿은 사람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경박한 사람, 오만한 사람, 허영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일찍이 대학자였던 자 없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다. 천국은 곧 그 사람의 것임으로이다'(마태복음 5:3).

 

옳다.

진리도 역시 그 사람의 것임으로이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일 없이,

진리를 사랑하고 부귀를 구하지 않는 자가 아니면, 진정한 학자일 수 없다.

 

* (내촌감삼의 글 - 190610'성서지연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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