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6일 수요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말씀의 성육신(成肉身)

 

: [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 본문은 9절에 서술한 성육신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육신' 육체적 존재를 의미한다.

 

( 4: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부패하고 도덕적으로 연약한 육신을 의미한다.

 

바울도 용어를 하늘이나 영의 영역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고 있다.

 

( 1:3-4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우리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육체의 지혜, 하나님의 권능과 육체의 무기는 서로 반대되며 서로 대적한다.

 

(고전 1:24-31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자랑하는 자는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육체' 결코 부합 없다.

 

( 9:8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그러나 용어가 그리스도에 대해 쓰일 경우에는 부패하고 도덕적으로 연약한 '육체' 의미하지 않으며,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단지 인간적인 한계성과 연약성을 지닌 존재임을 나타낸다.

 

(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이는 그리스도의 완벽한 성육신을 나타낸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증으로서 본서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 보여준다.

 

(1) 피곤 - (4:6 거기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육시쯤 되었더라)

 

(2) 갈증 - (4: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달라 하시니)

 

(3) 하나님께 의존 -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4) 슬퍼 눈물을 흘리심 -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5) 분노하심 - (11: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6) 갈등 - (12:27 지금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때에 왔나이다)

 

(7) 수난과 죽으심 - (18, 19) .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우리 가운데'(엔 헤민)라는 표현은 10절의 '그가 세상에'라는 말과 내용상 일치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세상에서 이루어졌으며, 우리 인간들 속에서 발생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우리가 영광을 보니 - '보니' '놀라운 상태에서 실제로 목격했다'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는 아마도 저자 요한이 예수님의 변모(Transfiguration) 대한 회상을 기초로 하여 사용한 용어인 같다.

 

( 17:2-8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얼굴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2-8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3)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 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28-36 말씀을 하신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32) 베드로와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의 영광과 함께 사람을 보더니

33)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즈음에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저희가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것을 무엇이든지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예수는 거룩한 광채와 함께 나타나 보이셨으며, 하나님의 사랑스런 아들이심을 나타내셨다.

 

이는 시편 기자의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90:16)라는 간구를 연상케 한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공생애와 부활은 자체로서 어둠 속에서 빛이 환하게 비치듯이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사건으로서 우리 성도들의 영광을 위하여 예정된 것이었다.

 

(고전 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벧전 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 저자 요한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근원이 인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에 있음을 재천명한다.

 

1절에서 그리스도의 영원성, 인격성, 신성을 나타냈듯이 본문에서도 그리스도의 영광이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영광과 대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에게 있어서 용어는 오직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으며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누가복음과 히브리서에서 보다 심오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1) 하나님의 자녀중 하나가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서 중보자적 사역을 담당하시는 유일하신 분이며,

 

(3:17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26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 하나님과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지니신 대등하신 분이며,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5:18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 세상에 하나님을 완벽하게 계시하신 유일하신 분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은혜와 진리'(카리스 카이 알레데이아)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였다.

 

(삼하 2:6 너희가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사도 요한은 문장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이 대등하고 등질적(等質的)임을 묘사한 후에 이어서 하나님의 성품인 은혜와 진리가 바로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성품과 일치함을 보여준다.

 

이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그의 지상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성을 드러내셨음을 시사한다.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특히 기독교적 측면에서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이 인류 구속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일방적인 행위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이다.

 

한편 '가득차서 넘치는'이란 은혜와 진리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 속한 은혜와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차고 넘치게 흘러 나와 성도들에게 임하여 역사(役事)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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