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30일 금요일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믿음으로 얻은 안식 2

 

성 경: [4:4-13]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4: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제 칠 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 저자는 본절에서 창2:2을 인용하면서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31: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어디 이렇게'(푸 후토스)라는 막연한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당시 성경에 장,절의 구별이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구체적인 출처를 밝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

성경 어느 곳에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있음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제 칠 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 저자는 창 2:1-3에서 나타나듯이

 

(2:1-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과 그의 안식을 구별하고 있다.

하나님의 안식은 하나님 자신이 행하신 일의 완성과 만족을 시사한다.

 

'하나님이 쉬셨다'는 것은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상태에 들어가셨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섭리 가운데 인간을 구속하시고 유지하시며 통치하시는 일을 행하신다.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본절에서 저자가 인용문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안식이

미래에 인간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창조 이래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4: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또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 '또다시'

저자가 사용하는 독특한 표현 방법이다.

 

(1: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2: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0: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본절은 3절에서 인용한 시95:11의 반복으로서

저자는 이 반복된 인용을 통해서 창조 이후에 취하신

'하나님의 안식''구원받은 인간에게 약속된 안식'을 연결시킬 뿐만 아니라

안식에 대한 약속의 특성을 설명하여

수신자들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한다. (Lane, Schroger).

 

그래서 본절에서는 시95:11a에 언급된 하나님의 진노가 생략되어 있다.

 

(95:11a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4: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본절은 앞에서 진술한 내용의 요약이다.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으로 인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에게 순종하며 의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안식에 들어가는 일이 남아 있다.

 

'남아 있거니와''뒤에 남겨두다'라는 의미로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설사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을지라도

안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아직 유효함을 시사한다(Lane).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자들은 성령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하는 자들이다.

 

(3: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 본절은 3:16-184:2에 대한 요약이다(Lane).

 

(3:16-18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이란 시95:8-11에서 언급된 출애굽 세대를 가리킨다.

 

(95:8-11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9)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10)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3: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출애굽 세대들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

 

(14:11-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21-23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순종치 아니함'이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것을 시사한다.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3: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30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 '오랜 후에'는 광야 시대 이후부터

다윗의 때에 이르는 시기를 가리킨다(Robertson).

 

한편'다윗의 글에'는 인용문인 시 95편의 저자를 나타낸다.

그러나 '다윗의 글에'라는 표현은 맛소라 본문(Massoretic text)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70인역에는 시 95편의 제목으로 '아이노스 오데스 토 다우에이드'('다윗의 찬양')이라고

기록되어 다윗이 지은 시로 나타난다.

 

그래서 혹자는 70인역을 따라 '다윗의 글에'라는 구절이 틀림없이

다윗이 쓴 시편임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Delitzsch).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시편의 저자 문제가 아니라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Bruce).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

 

본절은 시 95:7b, 8a의 인용으로 그 초점은 '오늘날'에 있다.

 

'오늘날'이라 함은 하나님의 안식에 대한 약속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폐지된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유효함을 시사한다(Morris).

 

따라서 본절은 안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과거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현재에도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으로서,

믿는 자들에게 성취되는 종말론적인 것임을 나타낸다(Lane, Hofius).

 

그러기에 저자는 본절의 인용문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행했던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권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