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의 완성이신 그리스도
성 경: [히 1:1-3]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 옛적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팔라이'는 '지나간 시대' 즉 '구약시대'를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셨음을 시사하는 표현으로
2절의'이 모든 날 마지막에'와 대조를 이룬다.
▶ 선지자들을 통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엔 토이스 프로페타이스'이다.
여기서 전치사 '엔'을 NIV에서는' ∼ 통하여'(through)로 번역하고 있으나(Moffatt)
이것의 본래 의미는 ' ∼ 안에'(in)이다(Westcott, Kent).
따라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선지자들 안에서' 말씀하셨다는 의미로 봄이 타당하다.
이것은 그들이 단순히 하나님의 도구로서 하나님께 사용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나타낸다(Morris).
이러한 선지자들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공인된 선지자들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 전체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Morris, Hewitt).
▶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 '여러 부분'의 헬라어 '폴뤼메로스'는 '여러 시기', '여러 번'(many times,NIV)을 뜻하며
'여러 모양'으로의 헬라어 '폴뤼트로포스'는 '다양한 방법으로'를 의미한다.
두 단어는 부사로서 모두 접두어 '폴뤼'를 사용하여 두운체(頭韻體)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수사법(修辭法)은 당시에 일반적인 것이었다(Moffatt).
그러나 본절에서 그것은 관습적인 표현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서
저자가 구약의 계시에 대한 신빙성을 확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Lane).
한편 '조상들'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2절의 '우리'와 대조를 이룬다.
[히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 '이 날들의 마지막에'를 의미한다.
이것은 앞절에서 언급된 '팔라이'('옛적에')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옛적에'가 구약 시대를 가리킨다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구약 시대가 끝나고
메시야가 오심으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
곧 그리스도의 초림에서부터 재림 때가지 모든 날을 가리킨다(Hewitt, Bruce, Morris).
이것은 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 '마지막 때' 혹은 '말세'로 표현되고 있다.
(행 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약 5: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벧전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벧후 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요일 2:18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유 1: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 '아들로'는 1절의 '선지자들로'와 대조를 이룬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선지자 안에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신약 시대에 와서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적으로 말씀하심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사실은 '아들'이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과 동급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을 지닌 자로서
아들 안에서 주어진 계시가 구약의 계시보다 탁월하며
완전함을 시사한다(Morris, Hewitt, Vincent).
▶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상속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모든 세계를 아들에게 전임(專任)하셨다.
혹자는 본구절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제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시 2:7,8)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Bruce)
혹자는 창 17:5과 본문의 문자적 유사성을 들어
'아브람'이 열국의 아비로서 '아브라함'으로 임명되어
하나님의 구속사(redemptive history)의 시작을 이룬 것과
본문이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한다(Langkammer).
창 17:5이나 시 2:7,8에서는 '모든 나라'가 그 유업(遺業)이 되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만유'가 그 유업으로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위의 구약 본문들과 연결되어
아들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사를 나타내며 그리스도께서
만유보다 탁월한 지존의 위치에 있음을 시사한다(Morris, Lane).
▶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으니라 - 이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중재자가 되심을 시사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창조 사역을 이루셨다.
(요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골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만물의 존재의 근원이시다.
한편 '세계'의 헬라어 '아이오나스'는
'시대'(an era), '세대'(an age)를 의미하는 '아이온'의 복수이다.
'아이오나스'는 본래 시간적인 의미를 지니나 본절에서는
'우주 세대'로 해석되어 우주(universe, NIV)를 의미한다(Morris).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존재의 근원이 되심을 나타낸다.
[히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 '영광'의 헬라어 '독세스'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며
(겔 1: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11:23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에서부터 올라가 성읍 동쪽 산에 머무르고)
신약에선 하나님의 속성 전체를 의미한다.
(마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행 7: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딤전 1: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한편 '광채'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파우가스마'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1) 빛의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빛'.
(2) 외부에서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빛'.
혹자는 본절의'광채'가 전자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Bruce, Hewitt)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내포한다는 견해가 더 타당하다(Morris).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빛' 자체로 묘사되기도 하며
(요 1:4-9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고후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동시에 본절과 같이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여 드러내는 분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영광을 볼 수 있다.
▶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 '본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스타세오스'는
철학적인 용어로 사물의 하부(下部)에 있으면서 그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실체를 가리킨다(Moffatt).
이는 하나님 자신을 시사한다.
한편 '형상'의 헬라어 '카라크테르'는 '긁어 표시하다'를 뜻하는
동사 '카랏소'에서 유래된 말이다.
'카라크테르'는 문자적으로 '표식'이나 '인장'(seal),
혹은 '같은 모양의 복제(複製)'를 의미한다.
이것은 '본체의 본질' 즉 하나님의 본질이 그리스도 안에 그대로 나타나 있어서
그리스도를 볼 때 성부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음을 의미한다.
(요 14:8-10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 '만물'(판타)은 모든 피조물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로서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시사한다(Morris).
한편 '붙드시며'는 '인도하다', '이끌어가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어떤 목적을 향해 세상을 이끌어간다는 개념이다.
그리스도는 만물을 창조하신 자로서 자신의 능력있는 말씀을 통해서
모든 피조물을 유지시키며 인도하신다(Morris, Bruce).
▶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 본문은 본서의 중심 주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하셔서 자신을 제사로 드려 자기 피로
단번에 우리를 깨끗게 하셔서 죄를 도말하셨다.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이러한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는 불완전했던 옛 언약의 제사 행위가
하지 못한 것을 온전하게 성취하신 것이다.
(10: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본절은 시 110:1을 인용하여
예수께 적용시킨 것이다.
(시 110:1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누운 곳'은 '하늘'을 의미하며
(엡 4: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위엄'은 장엄함을 가리키는 것으로
(8: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유 1: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완곡한 표현이다(Morris).
그리스도께서 승귀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왕권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소유하심을 시사한다(Lane).
다시 말해 그리스도는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심으로
온 우주를 지배하시며 다스리신다(Hewi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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