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4일 토요일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모세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

 

성 경: [3:1-3]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것을 의미하는 말로서

그들이 성도가 될 수 있었던 원인이 하나님께 있음을 시사하는 표현이다.

 

특히 본서의 저자는 하나님이란 명칭 대신에

'하늘'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여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였다.

 

(6: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한편 '거룩한 형제들아'에는 신약성경에서

본절에서만 나타나는 유대적인 표현이다. (Hewitt)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역할로 인하여 거룩한 자들이 되었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 저자는 본절에서

예수를 두 가지 칭호를 통해 소개하면서 그 예수를 깊이 상고하라고 권면한다.

 

'믿는 도리''고백'(confession)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믿음의 응답으로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을 뜻한다.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이는 '사도''대제사장' 모두를 수식하는 것으로 본절은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사도와 대제사장'을 의미한다(Bruce).

(the Apostle and High Priest of the rel-igion we profess, NEB)

사도 - 복음서에서는 예수를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 자주 표현하고 있으나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5:23-24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도'로 표현된 신약성경에서 본절 뿐이다.

 

예수를 '사도'로 호칭한 이유에 대하여 다음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1) 유대 문헌에 의하면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전권 대사'로 간주되었다. (b.Qidd.23b;Ned.35b;Yoma19a-b).

 

이 하나님의 전권대사를 뜻하는 용어 '쉴리'가 헬라어 '아포스톨로스'('사도')

번역되었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의 '사도시며 대제사장'

유대인들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Manson).

 

(2) '사도'라는 호칭은 예수를 구약의 모세와 비교해 언급한 것이다.

 

모세는 비록 구약에서 직접 '사도'로 불리지는 않았으나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라는 표현으로 보아(3:10,LXX)

모세가 사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절에서 제자가 예수를 '사도'로 표현한 것은

모세와의 역할을 비교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대사로서의 예수의 역할을 시사한다(Jones).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더욱 타당하다.

 

대제사장 - 신약성경에서 본서만이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부르고 있다.

 

'대제사장'이란 예수의 칭호는

예수의 사명 가운데 제의적인 요소가 있음을 시사한다. (Morris, Hewitt).

 

 

 

[3: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

 

저자는 본절에서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충성과 모세의 충성을 비교하고 있다.

 

12:7"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온 집을 맡은

충성된 청지기로서 인정받은 것을 나타낸다.

 

모세는 예수님과 같이 완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조상 중의 하나인 모세를

충성된 자로 인정하면서 3절 이하에서는

예수를 보다 우월한 자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혹자의 기적대로 저자가 2:9에서 '영광과 존귀로 관 쓰는 예수를 보니'라고

기록한 것은 하나님이 예수의 충성을 인정한 증거라고 할수 있다(Hewitt).

 

하나님의 온 집에서 - ''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가족', '가문' 혹은

'재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으며

 

(1: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거룩한 무리인

성도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를 가리킨다.

 

(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딤전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딤후 2: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벧전 4: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따라서 '하나님의 온 집'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하나님의 권속을 뜻한다.

 

한편 ''에 해당하는 헬라어 '홀로'

모세의 충성과 예수의 충성 사이의 차이점을 암시한다.

 

모세와 같은 구약 시대 하나님의 종들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하나님에게 충성하였으나

예수는 하나님의 통치가 시행되는

전 영역에서 온전하게 충성하였음을 시사한다(Morris).

 

 

 

[3: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 저자는 2절에서 예수와 모세가

서로 '충성되다'는 점에서 그 유사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예수와 모세의 차이점,

즉 모세에 비해 예수께서 더 우월하심을 강조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사환으로서(5)

자신을 세우신 이에게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영광을 받을 만하다.

 

더욱이 그는 출애굽 직후 40일동안 시내 산상에서 하나님과 만남으로 인해서

그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의 흔적을 얼마간 간직했었다.

 

(34:29-35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31) 모세가 그들을 부르매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32)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33)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34)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고후 3: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그러나 그의 영광은 결국 사라져 없어질 것에 불과했다.

 

(고후 3: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본체시며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영광과 빛의 근원이시므로

 

(1:4-5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모세가 받은 영광은 예수의 영광과 비교될 수 없으며,

비교될 만한 영광스러운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 본 비유는 예수께서

모세보다 더욱 영광받아야 하는 이유를 묘사한다.

 

본절의 ''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쿠'2절의 '온 집'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 혹은 '구원받은 무리'를 의미한다.

 

모세는 그가 아무리 탁월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다 하더라도

그 집의 한 부분에 불과하였으나

 

예수는 그 집을 자신의 피로 세우신 분으로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그 집에 속해 있는 모세보다 훨씬 존귀한 존재이시다.

따라서 예수께서 모세보다 더 큰 영광과 존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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