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3일 화요일

히브리서 2

 히브리서 2

 

서론

 

히브리서는, 요한일서처럼 서두에 서신의 관례적 문안인사가 없으나

끝부분(13:22-25)은 본서가 서신임을 보인다.

 

(13:22-2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너희에게 편지로 몇 자 적었느니라.

23) 너희는 우리 형제 디모데가 풀려난 것을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너희를 보리라.

24) 너희를 다스리는 모든 자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탈리아 출신의 사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25) 은혜가 너희 모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탈리아에서 써서 디모데 편에 보내다)

 

본서는 신약성경 중에서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책이다.

 

본 서신의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

본서는 동방에서는 대체로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되었으나

서방에서는 오랫동안 논란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로마의 클레멘트, 폴리갑, 순교자 저스틴 등은 본서를 인용하였다.

 

주후 200년경에 쓰여진 체스터 베티 파피러스(p46)

는 히브리서가 바울 서신들 가운데 나온다.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바울이 히브리서를

히브리어로 썼으며 누가가 그것을 헬라어로 번역했다고 말했고(교회사, 6. 14),

오리겐은 반복해서 히브리서를 바울의 글로 인용하였다.

유세비우스 자신은 본 서신이 바울에 의해 본래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로마의 클레멘트가 번역하였다고 주장했다.

 

아다나시우스는 본 서신을 바울의 14권의 서신들 중에 포함시켰고

그 후 헬라어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본 서신을 바울 서신으로 보았다.

 

주후 397년 제3차 칼타고 회의는 신약정경 27권의 목록을 선언하면서

바울의 13권의 서신을 열거한 후 동일한 저자에 의해 기록된 히브리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초대교회 때로부터 히브리서의 저자를

잘 모른다거나 저자가 바나바라는 견해도 있었다.

 

내용적으로, 본 서신에는 사도 바울을 저자로 보이는 것 같은 점들이 있다.

 

사도 바울의 오랜 동역자 디모데에 대한 언급이나

 

(13:23 너희는 우리 형제 디모데가 풀려난 것을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너희를 보리라)

 

또 바울 서신들과의 언어적, 사상적 유사성,

예컨대

 

1:4 그분께서 천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게 되신 것은 상속을 통해 그들보다 더욱 뛰어난 이름을 얻으셨기 때문이라 - (2: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

 

2:2 천사들을 통해 하신 말씀이 확고하였고 모든 범죄와 불순종이 정당한 보응의 대가를 받았거늘 - (3:19 그러면 율법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그것은 약속을 받은 그 씨가 오실 때까지 범죄들로 인해 더해진 것이요, 한 중재자의 손에서 천사들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

 

2:10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며 또 자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그분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데려가시는 일에서 그들의 구원의 대장을 고난들을 통해 완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 (11:36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으며 그분께로 돌아가나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18 앞서 나가던 명령은 그것의 연약함과 무익함으로 인하여 진실로 폐하여졌도다 -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셨나니 곧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또 죄로 인하여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느니라),

 

7:27 그분께서는 저 대제사장들과 같이 먼저 자기의 죄들로 인하여 날마다 희생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의 죄들로 인하여 희생물을 드릴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친히 자신을 드리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행하셨기 때문이라 - (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헌물과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리신 것 같이 사랑 안에서 걸으라),

 

10:33 한편으로는 너희가 비방과 고난으로 말미암아 구경거리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취급받은 자들과 사귀는 자들이 되었으니 - (고전 4: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께서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정하신 자같이 마지막에 두셨나니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으며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받아들였고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으니 - (2: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도 아니요 외국인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

 

12:22 오직 너희는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시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과 무수한 천사들의 무리와 - (4:25-26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이요, 지금 있는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곳으로 자기 아이들과 더불어 종노릇 하느니라.

26)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운 자니 곧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

 

13:5 너희의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딤전 3:3 자기를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오직 인내하며 말다툼하지 아니하며 탐욕을 부리지 아니하며;

6:7-8 그러나 만족하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큰 이득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은즉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 확실하니

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 등이 그러하다.

 

본 서신의 서두에 바울 자신의 이름을 언급지 않은 것이나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 밝히 증거된 이신칭의(以信稱義)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등이 바울 저작의 반대되는 증거로 주장되기도 하였으나,

사상의 일치성 때문에 그것들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본 서신의 수신자는 예루살렘 부근의 유대인들이었고,

저작 연대는 주후 67년경, 즉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

아직 성전이 있었던 때인 것 같다.

 

본 서신에서 성전과 제사장에 대한 언급에

현재시제의 구절들이 많기 때문이다.

 

(8:4 만일 그분께서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터이니 이는 율법에 따라 예물들을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기 때문이라,

 

13 그분께서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첫 언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으니 이제 쇠하고 낡아지는 것은 곧 사라지리라;

 

9:4-5 거기에는 금향로와 돌아가며 금으로 입힌 언약궤가 있었고 이 궤 속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 판들이 있었으며

5) 이 궤 위에는 긍휼의 자리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었는데 이것들에 관하여는 우리가 지금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9 이 성막은 현재 곧 이때까지의 모형이므로 그 안에서 예물과 희생물을 드렸어도 그것들이 양심에 관한 한 섬기는 자를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며;

 

10:1 율법은 다가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는 가지고 있으나 그 일들의 형상 그 자체는 아니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드린 그런 희생물들로는 거기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8 위에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희생물과 헌물과 번제 헌물과 죄로 인한 헌물은 주께서 원치도 아니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시나이다, 하셨는데 그것들은 율법에 따라 드리는 것이라,

 

11 제사장마다 날마다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희생물들을 드리되 그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하거니와;

 

13:10-11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성막을 섬기는 자들은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먹을 권리가 없느니라.

11) 그 짐승들의 피는 죄로 인하여 대제사장이 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것들의 몸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나니).

 

본서의 특징적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다.

본서는 구약 제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완성되고 폐지되었음을 밝히 증거한다.

 

히브리서 7:18,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히브리서 8:13,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

 

그러므로 성도는 이제 신약 아래서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이다.

 

히브리서에는 더 나은혹은 더 좋은이라는 말(kreivttwn)13번 나온다.

 

(1:4 그분께서 천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게 되신 것은 상속을 통해 그들보다 더욱 뛰어난 이름을 얻으셨기 때문이라;

 

6:9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비록 우리가 이같이 말하지만 너희에게는 더 좋은 것들과 구원에 동반되는 것들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7:7 낮은 자가 더 나은 자에게 축복을 받는다는 것에는 결코 모순이 없느니라,

 

19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나 주께서 더 나은 소망을 가져오심은 완전하게 하였으므로 우리가 이 소망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느니라,

 

22 그런 것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더 나은 상속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8:6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 더욱 뛰어난 섬김의 직무를 얻으셨으며 그것에 의해 또한 그분은 더 나은 약속들 위에 세워진 훨씬 더 나은 언약의 중재자이시니라,

 

9:23 그러므로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은 이런 것들로 깨끗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의 것들 그 자체는 이런 것들보다 더 나은 희생물로 하여야 할지니라;

 

10:34 너희에게 하늘에 더 낫고 영구한 실체가 있는 줄 너희 자신이 알므로 결박 중에 있는 나를 너희가 불쌍히 여겼고 너희 재산을 노략당하는 것도 기쁘게 여겼느니라;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좋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의 본향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분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예비하셨느니라,

 

35 여인들은 자기들의 죽은 자를 다시 살려서 받기도 하며 다른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고문을 당하되 구출받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

 

40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마련하사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2:24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예수님과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들을 말하는 피 곧 뿌리는 피에 이르렀느니라).

 

 

히브리서의 진리는 신약성경의 진리,

특히 사도 바울의 다른 서신들의 사상과 완전히 일치한다.

 

로마서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율법의 글자]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고린도후서 3:9, 11,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골로새서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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