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본질과 적용에 대하여
신앙이란 무엇이며, 신앙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종교적 형태를 가지고 신앙이라 말하고 있으며 그런 곳에 속한 사람을 신앙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표현하고 있는 신앙이라는 용어는 단순한 용어적 형태에서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 독특한 기독교 신앙의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몇가지의 본질적 질문을 제기함으로 우리의 가치기준을 찾아 보고자 하는 것이다.
1.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2. 신앙의 방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3. 신앙의 목적은 무엇인가?
1.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본질이란 고유한 성격 혹은 내용을 가르치는 말로 그것은 어떠한 조건이나 시간속에서도 변할 수 없는 특성 혹은 사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므로 본질은 그 신앙의 진리로 표현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다시 말해 기독교의 신앙의 본질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더불어서 신앙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신앙이라는 독특한 분야의 이해는 참된 신앙생활의 중요한 지식이 되기 때문이다.
1) 신앙의 개념
신앙의 개념에 대한 이해는 신앙의 대상, 행위자 그리고 신앙의 대상과 행위자를 연결시켜 주는 어떤 능력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해될 때 신앙이라는 독특한 개념이 설명될 수 있다.
타 종교에서 의미하는 신앙에 대해서는 설명을 보류하기로 하고 우리들의 기독교의 개념에서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① 신앙의 대상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쉽게 대답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가르칠 때 우리는 신론(神論) 혹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라는 설명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상에 대해 얼마나 올바른 지식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에 올바른 기준이 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절규하는 기분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호세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외쳤던 호세아서 6장 3절 상반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더불어 4장 6절에서는 하나님을 대변하여 이렇게 말한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
이상을 보아서도 우리는 쉽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의 대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의 한 구절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② 신앙의 행위자
신앙의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앙의 대상에 반응하는 존재(사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신앙인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넓은 의미에서 신앙의 대상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신앙인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개념에 와서는 조금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곧 요한복음 1장 12절에 기록되어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바로 하나님과 자녀된 관계로 부터 신앙의 행위자로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선택의 전제는 창조(創造)와 피조라는 창세기의 개념 설명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신앙인(기독교인)이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창조와 에덴의 타락, 인간의 절망 그리고 십자가의 바램, 그로 인한 영접, 이런 결과적 존재가 신앙의 행위자로 인정되는 것이다.
③ 신앙의 접촉
신앙의 대상자와 신앙의 행위자 간에 접촉되는, 관계되는 힘은 바로 믿음이다.
이제부터 신앙이라는 표현을 믿음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설명하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믿음의 표현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표현될 때 신앙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결정적인 것은 신앙이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은 어떤 특수신앙이 아니고 신앙 자체이다.
그런 이유는 기독교의 신앙은 몇 개의 개체 신조와 교리를 모아놓은
우연한 무더기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에서 취급되는 것이기에
내적 연관성에 세심한 주의를 가져야 한다.
2) 신앙의 기준
우리는 신앙에도 성숙과 미숙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것은 어느 것이 신앙의 기준에 접근되었는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어떤 형태적인 열심이 결코 신앙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극단적인 예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그 밖에도 성경은 곳곳마다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의 집약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엡4:13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일 것이다.
예수 모방이라는 생각은 항상 기독교 신앙생활사에서 큰 역할을 해 왔다. 그리고 예수의 놀라운 신앙의 실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실천했다는데 있다.
만일 모방이 어떤 특정한 외적 행동양상,
예를 들면 ‘청빈’ 등과 같은 생활태도를 본받는 것이라면 이 표현은 적당치 않다.
왜냐하면 신앙은 본받을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은 각기 스스로 책임을 지는 모험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도 그의 외적 행동 하나 하나를 반복, 흉내내는 것이 아니고,
예수가 취한 행동의 내적동기, 즉 하나님에 대한 관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는 신앙의 기준에 대하여 조금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도록 하겠다.
① 형태적 기준
총체적으로 노출되는 전인격적 기준의 모델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기서 말하는 예수의 성격은 하나님, 다시 말해 삼위일체의 한 위격으로서의 예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를 닮아야 한다는 것에 많은 오해된 전제가 있었다.
그 중 중요한 하나는 예수는 하나님이셨기에 가능했다는 절대적 전제였다.
그러므로 인간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할 수 없기에 하고자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새롭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② 윤리적 기준
신앙 속에 담겨져 있는 관계적 기준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사랑이라는 것으로 정리된다.
물론 사랑에 대해 어떤 관점과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나올 수도 있겠으나 기독교에서의 표현된 사랑의 완성은 십자가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평가에서 십자가가 차지하는 의미는 기준 그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③ 학문적 기준(역사적 기준⇒사안적 기준)
그것은 “진리”라는 개념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성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정의와 불의의 개념이 구분되어지는 것이고 참다운 삶의 척도로 나타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을 진리라 표현했고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서 어떠한 기준 속에 사는 것이 참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진리라는 개념의 출발을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라는 신학의 권위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갖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지는 것이다.
2. 신앙의 방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방법이라는 어감은 우리에게 어떤 형태적인 것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한다. 물론 어떤 형태는 필요하다. 그러나 방법이라는 의미속에는 본질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된 사실로 부터 이해하여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실현되는것을 의미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신앙의 성숙도구는 다음과 같이 구분되어 설명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1) 성경(하나님편에서의 노출)
성경은 특수한 계시다.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역사와 인간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얼마나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신앙의 현실을 도와주는 것이다.
① 성경공부
성경을 이해하려면 도움이 필요한 것은 상식이다.
여기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출발이 시작된다.
(지도자의 의미와 배우는 자의 의미 설명)
② 성경암송(묵상)
반복→생각→행동→습관→삶
2) 기도(인간쪽에서의 반응)
3) 신앙의 조직화(예배형식)
3. 신앙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과 동일하게 이해될 수 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여기서 양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고 생명은 영생을 의미한다.
(삶의 풍성함과 생명을 유지시켜 줌)
그리고 이것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했다.
다시 말해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초점으로 모아지고 그것은 곧 인간의 풍성으로 전가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과 인간의 생활에,
1) 영생과
(미래적인 현실) → 복음의 완성(미래)
2) 풍성함을 동시에 누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미래를 통한 현실의 행복) → 복음의 누림(현실)
* 오늘부터는 성경 속의 기독교를 소제목 주제별로 나누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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