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5일 화요일

신약에서의 πνεΰμα (프뉴마) 3

 

바울의 성령 이해의 πνεΰμα(프뉴마)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맺고 있는 새로운 존재를 나타내는 것으로 성령을 제시하기위해 헬레니즘적인 용어들을 채택한다.

 

그러나 그는 구원이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구약의 사상에 따라 헬레니즘의 사상을 시정한다.

 

성령은 새로운 생명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새로운 피조물은 현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피조물과 새로운 생명은 십자가와 부활의 결정적 사건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해졌다.

 

 

a. 신앙의 능력으로서의 πνεΰμα

 

고전 2:6이하에서 성령은 십자가의 복음에 대한 이해를 중재해 주는 능력이 시다.

 

(고전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십자가는 옛 세계와 새 세계를 구분지어 준다.

성령께서 우리를 옛 시대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능력이시며, 주님과의 연합은 영적인 신비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께서 알려 주시는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에 대한 지식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성령은 믿음의 성령이다.

 

(고후 4: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가장 중요한 은사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이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어떤 인간적인 공적(功績)으로도 성령을 받지 못한다.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성령의 역사는 최초로 믿을 때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나타난다.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우리는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구원 사건과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한다.

 

(고전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 안에 거하는 것은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성령은 칭의의 주체적인 원인으로서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기 때문이다.

 

여전히 방향은 미래를 향한다. 따라서 의에 대한 소망이나,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도래할 구원에 대한 인식은 성령의 은사이다.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성령은 주술적인 능력이 아니라,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성령은 믿음을 갖게 해 주는 동시에 신앙생활의 표준이 되는 규범이기도 하다.

 

따라서 갈5:25에서 성령은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그러나 신자들은 성령에 의해 그들의 삶이 지배되도록 해야만 한다.

성령안에서 산다는 것은 육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과 이웃에 응답하면서 사는 것을 말한다.

 

b. 육체에 대한 부인

 

성령과 육신의 대조는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대조와 같다.

 

(3: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성령 안에서 산다는 것은 그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그리스도만을 기뻐하는 것을 의미한다.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사역의 계시는 인간적인 지혜를 부정할 것을 요구한다.

 

(고전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율법이 죄를 드러내고 심지어 죄를 범하게 하는 반면에 성령은 봉사하는 새로운 삶을 준다.

 

(7:5-6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육체는 자기 자신의 것이지만 성령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가능성이다.

성령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8:4-5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하나님의 규범적인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그 속에는 믿음의 결단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의 결단행위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성령 안에서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행위에 근거하여 율법을 이룬다.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c.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성령

 

성령의 고유한 사역은 기도이다.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성령은 그리스도안에서 확립된 아들 됨에 대해 증거 해주며, 아들로서의 삶을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아들이 된다는 것은 섬긴다는 것을 의미하며, 육체의 욕구들을 거절하고 율법의 요구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7:5-6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역사하는 믿음이다.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성령은 개성을 파괴하지 않으며, 지식에 의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키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지식은 사랑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를 자아로부터 해방시켜, 다른 사람들을 향하게 하며, 개성을 회복시켜 주고, 개성에 따라 하나님 앞에 서고, 이웃을 위해 살 수 있게 해준다.

성령은 어떤 부수적인 현상이 아니다.

성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것은 역동적인 힘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지속적으로 거할 수 있는 근거이다.

 

이러한 능력이 새로운 신앙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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