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낫세 지파의 지경(地境) 2
성 경: [수 17:9-11] 또 경계가 가나 시내로 내려가서 그 시내 남편에 이르나니 므낫세의 성읍 중에 이 성읍들은 에브라임에게 속하였으며 므낫세의 경계는 그 시내 북편이요 그 끝은 바다며
10) 그 남편은 에브라임에 속하였고 북편은 므낫세에 속하였고 바다가 그 경계가 되었으며 그들의 땅의 북은 아셀에 미쳤고 동은 잇사갈에 미쳤으며
11)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곧 벧스안과 그 향리와 이블르암과 그 향리와 돌의 거민과 그 향리요 또 엔돌 거민과 그 향리와 다아낙 거민과 그 향리와 므깃도 거민과 그 향리들 세 높은 곳이라.
[수 17:9] 또 경계가 가나 시내로 내려가서 그 시내 남편에 이르나니 므낫세의 성읍 중에 이 성읍들은 에브라임에게 속하였으며 므낫세의 경계는 그 시내 북편이요 그 끝은 바다며 - '가나 시내'(Brook Kanah)는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를 나누는 경계선의 일부로 그 남쪽은 에브라임 지파가, 그 북쪽은 므낫세 지파가 각각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가나 시내 남쪽에는 원래 므낫세 지파의 기업에 속한 성읍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다시 에브라임 지파에게 속한 것으로 재조정되었다.
(16:9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별한 모든 성읍과 촌락도 있었더라).
다시 말해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가 가나 시내 위로 약간 올라와 원래 므낫세 지파의 기업이었던 일부 성읍들이 에브라임 지파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절인 10절에 보다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한편 여기서 '바다'는 '지중해'를 가리킨다.
[수 17:10] 그 남편은 에브라임에 속하였고 북편은 므낫세에 속하였고 바다가 그 경계가 되었으며 그들의 땅의 북은 아셀에 미쳤고 동은 잇사갈에 미쳤으며
▶ 북은 아셀에 미쳤고 동은 잇사갈에 미쳤으며 - 아셀 지파의 기업은 19:24-31에 기록되어 있고,
(19:24-31 다섯째로 아셀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25) 그 지경 안은 헬갓과 할리와 베덴과 악삽과
26) 알람멜렉과 아맛과 미살이며 그 경계의 서편은 갈멜에 미치며 시홀림낫에 미치고
27) 꺾여 해 돋는 편을 향하여 벧 다곤에 이르며 스불론에 달하고 북편으로 입다 엘 골짜기에 미쳐서 벧에멕과 느이엘에 이르고 가불좌편으로 나가서
28) 에브론과 르홉과 함몬과 가나를 지나 큰 시돈까지 이르고
29) 돌아서 라마와 견고한 성읍 두로에 이르고 돌아서 호사에 이르고 악십 지방 곁 바다가 끝이 되며
30) 또 움마와 아벡과 르홉이니 모두 이십이 성읍과 그 촌락이라
31) 아셀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잇사갈 지파의 기업은 19:17-23에 기록되어 있다.
(19:17-23 넷째로 잇사갈 곧 잇사갈 자손을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18) 그 지경 안은 이스르엘과 그술롯과 수넴과
19) 하바라임과 시온과 아나하랏과
20) 랍빗과 기시온과 에베스와
21) 레멧과 언간님과 엔핫다와 벧 바세스며
22) 그 경계는 다볼과 사하수마와 벧 세메스에 미치고 그 끝은 요단이니 모두 십육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23) 잇사갈 자손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그런데 므낫세 지파의 북쪽 경계선은 아셀 지파와 접하고 있었으며, 동쪽 경계선은 잇사갈 지파와 접하고 있었다. 보다 상세히 말하자면 지중해 방향의 북서쪽 일부 가아셀 지파와 접하며, 요단강 방향의 북쪽 및 동쪽 일부, 즉 므낫세 지파와 북동쪽이 잇사갈 지파와 접하고 있었다.
[수 17:11]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곧 벧스안과 그 향리와 이블르암과 그 향리와 돌의 거민과 그 향리요 또 엔돌 거민과 그 향리와 다아낙 거민과 그 향리와 므깃도 거민과 그 향리들 세 높은 곳이라.
▶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 잇사갈 지파의 기업 내 뿐만 아니라 아셀 지파의 기업 안에도 므낫세 지파에 속한 성읍들이 있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아셀과 잇사갈 지파의 기업 분배는 므낫세 지파의 지경이 확정된 연후에야 이루어졌다.
(19:17-31 넷째로 잇사갈 곧 잇사갈 자손을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18) 그 지경 안은 이스르엘과 그술롯과 수넴과
19) 하바라임과 시온과 아나하랏과
20) 랍빗과 기시온과 에베스와
21) 레멧과 언간님과 엔핫다와 벧 바세스며
22) 그 경계는 다볼과 사하수마와 벧 세메스에 미치고 그 끝은 요단이니 모두 십육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23) 잇사갈 자손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24) 다섯째로 아셀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25) 그 지경 안은 헬갓과 할리와 베덴과 악삽과
26) 알람멜렉과 아맛과 미살이며 그 경계의 서편은 갈멜에 미치며 시홀림낫에 미치고
27) 꺾여 해 돋는 편을 향하여 벧 다곤에 이르며 스불론에 달하고 북편으로 입다 엘 골짜기에 미쳐서 벧에멕과 느이엘에 이르고 가불좌편으로 나가서
28) 에브론과 르홉과 함몬과 가나를 지나 큰 시돈까지 이르고
29) 돌아서 라마와 견고한 성읍 두로에 이르고 돌아서 호사에 이르고 악십 지방 곁 바다가 끝이 되며
30) 또 움마와 아벡과 르홉이니 모두 이십이 성읍과 그 촌락이라
31) 아셀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그러므로 본 기록은 시간 순서에 따른 기록이 아니며, 단지 므낫세 지파의 기업을 전달하기 위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앞선 (16:9)기록에서,
(16:9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별한 모든 성읍과 촌락도 있었더라)
우리는 므낫세 지파의 기업 중에도 에브라임 지파의 성읍이 있음을 살펴보았는데, 이제는 아셀과 잇사갈 지파의 기업 중에도 므낫세 지파의 성읍이 있음을 본다.
이처럼 이스라엘각 지파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지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과 필요에 따라 시간을 두고 상호 재조정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은 서로 연합하여 상부 상조해야 할 공동체임을 보여 준다.
▶ 벧 스안 - '조용한 장소', '안전한 집'이라는 뜻으로 야룻(Jalud) 게곡에 있는 성읍이며 중요한 요새이다.
이곳은 이스르엘 골짜기 계곡과 요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성읍은 잇사갈 지파의 경내에 있었으나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된 곳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 거민들이 철 병거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이 성읍 서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16절 요셉 자손이 가로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스안과 그 향리에 거하는 자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는 자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이곳은 특히 길보아 전투에서 패한 후 사울의 시체가 이곳 성읍의 벽에 매어달린 곳으로 유명하다.
(삼상 31:10 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삼하 21:12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취하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벳산 거리에 매어 단 것을 저희가 가만히 가져 온 것이라).
그렇지만 훗날에 정복되어 솔로몬의 12관장 가운데 한 사람인 바아나에 의해 관할 받았다.
(왕상 4:12 다아낙과 므깃도와 이스르엘 아래 사르단 가에 있는 벧소안 온 땅은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맡았으니 벧소안에서부터 아벨므홀라에 이르고 욕느암 바깥까지 미쳤으며).
구약 시대에는 '벧산', 또는 '벱산'으로 표기되기도 했으며,
(삼상 31:10-13 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11)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12) 모든 장사가 일어나 밤새도록 가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취하여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와서 거기서 불사르고
13) 그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고 칠 일을 금식하였더라;
삼하 21:12-14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취하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벳산 거리에 매어 단 것을 저희가 가만히 가져 온 것이라
13) 다윗이 그 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14)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 아비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대로 좇아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니라),
신약 시대에는 '스키토폴리스'(Scythopolis)라고 명명되었다.
오늘날의 지명은 '베이산'(Beisan)이다.
▶ 이블르암 - 벧스안, 다아낙, 돌, 므깃도 등의 도시와 함께 에스드렐론 평야와 이스르엘 계곡을 통과하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는데, 가나안의 동과 서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지리적으로는 잇사갈과 아셀 지파의 경내에 속하지만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이곳의 원주민들은 정복당하지 않고 게속 남아 있었다.
한편 이곳은 '빌르암'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상 6:70 또 그핫 자손의 남은 족속에게는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아넬과 그 들과 빌르암과 그 들을 주었더라).
이블르암에 있어서 특기할 만한 사건은 유다 왕 아하시야가 예후에 의해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
(왕하 9:27 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동산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쫓아가며 이르되 저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저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이곳은 현재의 '길벱 벧라메'(Khirbet belameh) 지역으로 추정된다(Keil).
▶ 돌 - 가이사랴에서 북쪽으로 약 12.8km 지점의 갈멜 산 남쪽에 위치해 있다.
팔레스틴 해안을 따라 자주빛 물감의 원료가 되는 조개가 많았기 때문에 아주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해 있었다.
오늘날 '톨투라'(Tortura)로 추정된다.
▶ 엔돌 - 시 83:9, 10에 따르면 기손(Kishon) 시내 부근으로 다볼 산 남쪽 약 6.5km지점에 위치해 있다.
(시 83:9-10 주는 미디안 인에게 행하신 것 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 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
10) 그들은 엔돌에서 패망하여 땅에 거름이 되었나이다)
이곳은 므깃도(Megiddo) 전투지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또한 이곳에서 바락(Barak)은 시스라(Sisera)와 야빈(Jabin)을 패퇴시켰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사울 왕의 군대가 이곳 부근에 진을 치고 있었던 곳이다.
(삼상 29:1 블레셋 사람들은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당시 사울은 최후의 전황(戰況)이 어찌될지 몰라 이곳 엔돌의 신접한 여인의 도움을 구하기도 하였다.
(삼상 28:7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오늘날 이곳은 '엔돌'(Endor)이란 곳으로, 여전히 그 이름이 남아 있다.
▶ 다아낙 - 이스르엘 계곡 남쪽에 있으며 샤론 평야에서 내륙을 이어주는 해안 길인 '비아 마리스'(Via Maris)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의 지명은 '타아낙'(Taanak)이다.
▶ 므깃도 - 애굽으로부터 다메섹으로 이어지는 주요 대상로(隊商路)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레윤'(Lejun)으로 추정된다.
▶ 세 높은 곳 - 산지(山地)에 위치하고 있는 세 성읍 곧 엔돌, 다아낙, 므깃도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벧스안, 이블르암, 돌은 평지에 위치하고 있었다(Fay, L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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