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 금요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믿음의 근거 제시 2

 

성 경: [벧후 1:17-21]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 '지극히 큰 영광'은 변화산상 사건의 구름과 연결된 히브리적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드러내는 표현 방법이다.

 

(16: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14: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1:4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이와 같은 표현은 변화산상의 사건은 물론,

 

(17:1-9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더니

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 참조 : (9:2-10; 9:28-36)

 

구약의 시내산 사건에도 나타난다.

 

(24: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모세를 부르시니라)

 

그러나 본절에서 베드로는 시내산 사건이 아니라 변화산상 사건의 독특성을 약화시키지 않기 위함이다.

 

베드로는 변화산상 사건에서 계시된 예수를 모세와 같은 종말론적 예언자로 본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왕이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보고 있다. (Bauckham, Blum).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 '내 아들'은 유대주의에서 메시야에 대한 진술로 해석한 시 2:7의 인용이다.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2편에 의하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는 '아들'이라 불리며(7) 시온산에서 왕으로 등극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모든 적대 세력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신다.

 

(8-9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초대 교회는 이런 시 2편을 예수께 적용시켜 예수께서 재림 때에 종말론적인 심판을 행사할 것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내 사랑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아가페토스 무'는 메시야의 칭호로서 구약성경에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유일한 자' 혹은 '독자'라는 해석으로,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시사하며,

 

다른 하나는 '선택된 자'라는 해석으로,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예수께서 메시야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 선택받은 자이심을 시사한다. (Bauckham).

 

한편 '내 기뻐하는 자'는 사42:1의 인용으로 메시야 직분을 수행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선택하셨음을 시사한다. (Green, Bauckham).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 여기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한편 '존귀와 영광'은 일반적으로 한 짝을 이루고 있는 단어이다.

 

(8: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2:7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존귀와 영광'에 대한 해석은 세가지이다.

 

(1) 혹자는 예수의 변형된 모습의 영광스러움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igg,Windish).

(2) 혹자는 하늘 음성에 의하여 예수에게 주어진 '위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Grundmann, Chase, Muller).

(3) 혹자는 '존귀'는 음성을 통해서 예수에게 주어진 위엄을 의미하며, '영광'은 가시적인 변형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Mayor, Wand,Green, Kelly).

 

그러나 '존귀와 영광'은 엄밀하게 구별할 수 없는 이중적인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예수의 변형된 모습의 영광스러움에 아들이심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시는 존귀를 부여하셨다는 의미로 봄이 타당하다. (Blum).

 

따라서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한 영광을 입으셨으며, 하나님의 대리자인 왕으로서 종말론적인 심판과 통치를 수행할 임무와 권한을 부여받았음을 암시한다.

 

 

[벧후 1: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

 

'거룩한 산'은 구약성경에서 시온 산을 의미하나 역사적으로 시온 산에서 예수께서 변형하셨다는 근거가 없다(Green).

 

그래서 오늘날 그 산이 구체적으로 어느 산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으나 대부분 헤르몬 산이나 다볼 산 중의 하나로 보고 있다.

 

그 산이 어느 산이든지 간에 베드로가 그 산을 '거룩한 산'이라고 부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산에 영광 가운데 임하셨고 예수의 신적 영광이 그 산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벧후 1: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 본절에서 '더 확실한 예언'은 구약 전체에 나타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의미한다. (Blum,Bauckham, Spicq, Kelly, Grundmann).

 

베드로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들이 자신들이 체험하고 전하고 행한 일들과 동일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변화산상 사건이 구약의 예언자들이 미리 예상했던 예언의 성취로서 미래에 나타날 재림을 확실히 보증해줌을 진술한다.

 

한편 베드로는 '예언''어두움을 비추는 등불'에 비유한다.

 

'어두운 데'는 빛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의미한다.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 예언의 말씀은 등불로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 ''은 재림의 날을 가리키며(Blum, Green)

 

'샛별''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따라서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 까지''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를 의미한다.

 

한편 '너희 마음에'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초래되는 그리스도인들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lum, Bauckham).

 

 

[벧후 1: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 베드로는 성경에 나타난 모든 예언들을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본서에서 베드로는 당시 거짓 교사들이 성경을 임의로 그릇되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

 

베드로는 예언의 말씀이 사사로이 해석되지 않아야 되는 근거로 성경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제시한다.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는 베드로의 진술은 성령의 이중적인 저작권을 암시한다. 즉 원저자이신 성령께서 영감을 통해서 성경 기록자에게 오류가 없는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고전 14: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0-17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구약의 제자들도 역시 자신들의 예언이나 말씀이 자신의 뜻이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삼하 23:2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9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그러나 당시의 거짓 교사들은 재림에 대한 구약성경의 예언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지자 자신이 표적이나 꿈, 환상을 통하여 지어낸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16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베드로는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하여 본절에서 구약성경의 예언에 대한 신적 기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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