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의 심판(재판)
베드로후서 3장 10-13절
‘그러나 주의 날은 올 것이다. 도둑 같이 밤에 오듯 올 것이다.
그 날에는 온 하늘은 큰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천체는 뜨거운 불(열화)로서 녹아 버리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사업은 불태워 질 것이다.
이 같이 하여 만물 모두 녹아버릴 것이매, 너희는 하나님의 날을 대망하고, 또 이를 재촉하며, 얼마나 그 행실을 거룩히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할까?
이로 말미암아 하늘은 불타 없어지고 천체는 불타 녹아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약속에 의해 새 하늘과 새 땅을 대망 한다. 의(義) 그 가운데 거한다. ’(베드로후서 3:10-13, 내촌감삼의 직역)
사해(辭解)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주께서 그 약속하신 바를 행하시는데 더디다고 한다.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 그리스도 나타나시는 날로서, 그가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이다.
최종의 재판의 날이다.
‘올 것이다’ 반드시 올 것이다.
‘도둑이 밤∼’ 불의(의외)로 올 것이다.
사람이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때에 올 것이다.
‘온 하늘’ 모든 우주의 뜻일지?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수 개 있다는 것은, 고금의 학자가 창도하는 바이다.
‘큰 소리로서’ 질풍이 부는 때 같이 혹은 화살(arrow)이 공중을 날아가는 때 같이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소실하고. ‘천체’ 달(월), 해, 별(성) 같은 것.
‘땅∼’ 이 땅과, 그 위에서 행해진 사람의 모든 사업∼,
‘이것을 재촉하고’ 신자는 그 성결한 행위로써 주의 날(일)이 오는 것을 재촉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속히 오지 않음은 신자가 이에 대한 준비를 갖추지 못함에서라는 뜻일 것이다.
‘의 그 가운데 거한다. ’ 의는 신천지 가운데 영주하여, 다시 이것을 떠나지 않는다.
신왕국의 시민의 타락 같은 것은 결코 없다. ‘거한다’는 글자에 주의하라.
우주의 소실
별(星)로서 소실된 것 있다는 것은 천문학자가 인정하는 바이다.
또 이 지구가 소실될 것은 결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만약 무언가의 이유에 의해 지구가 그 운행을 중지하기에 이를 것인가?
태양의 주의를 일초 시간에 7마일(약11㎞)씩의 속력으로 질행(연행)하고 있는 지구는 그 운행의 중지에 의해, 속력은 화하여 열로 되고, 그리하여 이것을 소실하기에 이를 것이다.
혹은 다른 천체와 충돌함으로써 소실될 것이다.
혹은 또 어떤 학자가 말하는 대로, 지구는 해마다 태양에 향하여 가까이 접근해 가고 있는 것이라면, 마침내 그 흡수하는 바로 되어 소실하기에 이를 것이다.
지구의 최후는 불(화)이라는 것은 인류의 일반으로 믿어온 바이다.
주의 날의 대망
최종의 재판(심판)이라고 하면 일반으로 두려워할 것으로 믿어진다.
하지만 이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에게 있어서는 그런 것이다.
우리들 그와 함께 있는 자에게 있어서는 이는 우리들이 간절히 대망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의롭다함을 입는 때는 그 때에 있다.
우리들은 이방에 유우(기류 roaming life)하는 감으로서 이 세상에 있는 자이다.
지금은 재판의 때가 아니다. 오늘은 정사의 구별은 아주 애매하다.
하지만 주 오시는 그 때에 의자(義者)는 관(면류관) 씌워져 나타나고,
악인은 유황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나라가 임하옵소서’란, 이 날을 빨리 오게 해 주옵소서의 기도이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강림 없이 이 세상이 사회 개량자의 노력에 의해 황금 세계로 화하리라고는 결코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가장 간절하게 주의 날이 임하기를 대망 한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시록22:20)이는 우리들의 열절한 기도이다.
최종의 재판(심판)은 올 것이다.
노아의 때에 대홍수가 지상에 임한 것 같이 올 것이다.
또 프랑스혁명(1권 281역주)이 불국민의 위에 임한 것 같이 올 것이다.
또 가까이는 상항(San Franclsco) 위에 지진이 임한 것같이 올 것이다.
그리고 와서 이 땅을 일소하여 신천지의 건설을 촉진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위를 깨끗이 하고 믿음을 독실히 하여, 이 날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크리스천의 구원의 희망
크리스천은 남(타자)보다 뛰어나게 덕이 높고, 행위가 성결하여 구원되는 것은 아니다.
‘의인 없다, 한 사람도 없다’는 것으로서,
만약 사람은 그 의로써 구원되는 자라고 하면,
세상에 구원될 자는 한 사람도 없다.
만약 덕행이 구원의 이유라면 우리들도 구원의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자이다.
그렇지만,
우리들 크리스천은 우리들의 덕행으로서 구원되기를 바라는 자는 아니다.
우주에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은 다만 한 분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만이 천국을 세우고 또 여기에 들어감의 자격을 갖추신 분이시다.
그는 완전무흠한 분으로서 그 만이 천국의 왕이시며,
또 그 시민 됨의 자격을 갖추신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 얻고자 하는 것은 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이다.
그에게 돌아가,
그에게 의지하여 신앙으로서 그의 것으로 되고,
그의 의를 내 의로 하며,
그의 완전을 내 완전으로 하고,
그리하여 구원되려 하는 것이다.
즉 우리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기대어 구원되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위해 예비하신 어린양의 희생의 덕을 그대로 내 것으로 하여 구원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구원을 희망하고 이것을 확신하는 것은, 우리들의 덕행을 자랑해서가 아니다.
또 하나님의 우리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자부해서가 아니다.
우리들은 자기하고 겸손한 극에 달하여 구원되고자 하는 것이다.
크리스천이 구원을 확신하는 것은, 그 중에 깊은 도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잘 알아, 크리스천의 구원, 영생의 희망이 결코 공망이 아님을 안다.
*내촌감삼의 (1906년 9월 ‘성서지연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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