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적자(赤字)
고린도전서 3장1-15절
1) 형제여 앞서 너희에게 말하는 때에 영에 속한 사람에게 말하듯이 할 수가 없어 다만 육에 속한 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아이에게 말하듯이 했다.
2) 나는 너희에게 젖을 먹이고 굳은 것을 주지 않았다. 너희가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너희 가운데 질투와 분쟁이 있으매 너희는 육에 속한 자 사람들 같이 행하는 것 아닌가?
4)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에게 속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 한다고 너희도 아직 세상 사람이 아닌가?
5) 바울 어떤 사람인가? 아볼로 어떤 사람인가? 다만 주께서 각각에게 주신 바에 따라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려고 힘쓰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
6)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 하지만 자라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시다.
7) 그러므로 심은 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물을 준 사람도 역시 그러하다. 다만 귀한 것은 자라게 하시는 바의 하나님뿐이시다.
8)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하나이다. 각각 그 노동에 따라 보수(삯)를 받을 것이다.
9)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이다.
10)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 따라 나는 현명한 건축사처럼 이미 기초를 놓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집을 세운다. 하지만 각각 그 위에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신중히 할 것이다.
11) 그것은 이미 놓인 기초 외에 누구도 기초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12) 사람이 만약 이 기초위에 금은, 보석, 나무, 풀, 짚으로서 세운다면
13) 각각의 일은 밝히 드러나리라. 그것은 심판의 날 이것을 밝혀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날은 불로서 나타나, 불은 각 사람의 일이 어떠한가를 시험할 것이다.
14) 만약 그 세운 바의 일이 그대로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을 것이다.
15) 만약 그 일이 불타버리면 그는 손해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불에서 피하듯 겨우 구원될 것이다(일본어역).
신앙은 역시 산 것으로서, 다른 생물과 한가지로 성장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싹, 다음에는 이삭, 이삭 가운데 익은 곡식을 맺는다(마가복음4:28).
처음부터 완전한 것 아니다. 해를 거쳐 완전에 달하는 것이다.
완전하지 못한 까닭에 신앙 없다고 하지 말라.
불완전한 곳에도 진실한 신앙은 있는 것이다.
신앙의 어른 있고, 신앙의 어린이 있고, 또 신앙의 어린아이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어른의 식물을 소화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로 한 인간이다.
곧 깊은 교의를 해득치 못했다고 해서, 그를 보는데 불신자로 여기지 말 것이다(1).
신앙의 어린이란, 육에 속함이 너무 심하고 영에 속함이 매우 보잘것없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 겨우 신앙의 맹아를 받은데 그치고, 그들의 전체는 아직 육의 법칙에 따르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의 일을 판단하는데 육의 자로서 하고 영의 영역에 있어서 마저 육의 법칙을 쓰고자 한다. 그들의 무리야말로 가련하다. 하지만 어른다움 없는 그들의 신앙에 또한 매우 사랑스러운 것 있다.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의 신도를 질책하고 있는 것 아니다. 그 유치한 신앙에 대하여(농담) 말하고 있는 것이다(1).
너희는 그리스 철학에 있어서는 능(충분)할 것이다.
하지만도 그리스도의 일에 대해서는 아직 전혀 어린아이다.
너희가 지에 있어서 부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오의를 곧 해득했다고 생각지 말라.
나는 이제 너희가 어린아이인 이유를 보이련다고(1-2).
너희들 사이에 질투와 분쟁 있다고 들었다.
이는 분명히 너희가 아직 육에 속한 자, 세상 사람 같이 행하는 일의 증거가 아니랴? 너희의 철학은 아무리 고상하대도, 너희의 애국심은 아무리 열성이라 해도, 너희의 전도심은 불같이 불탄대도, 만약 너희 상호 사이에 질투와 분쟁이 있다면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아직 매우 유치한 자이다.
나는 너희가 전혀 불신자라고는 하지 않는다.
너희는 일찍이 너희의 죄를 뉘우치고 주의 성명을 표백하여 그 거룩한 교회에 들어왔다.
하지만 너희의 신앙은 겨우 밖으로 향하여 발표된 데 그치고, 안으로 향해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너희는 지금도 의연하여 신앙의 어린아이인 것이다.
너희의 신앙은 이론의 신앙이다. 경쟁의 신앙이다.
하지만 평화의 임금이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이 아닌 것이다(3).
너희 중에 바울파 있고, 아볼로파 있다고 듣는다.
너희도 역시 세상 사람 아닌가?
세상 사람은 당을 세우고, 파를 맺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과 결탁하여 일을 하려한다. 결당의 정신은 불신의 정신이다.
사람은 남을 돕고자 하여 당을 맺지 않는다. 남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꾀하기 위해 이것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당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정반대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 내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정신이 너희 가운데 있다고 듣는다.
너희도 역시 세상의 속인 아니랴!
너희와 세상의 정당인과 무엇이 다를 바 있으랴(4).
바울이 누군가? 아볼로 누군가?
각각 그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에 따라 너희 위해 일하는 자 아닌가?
집은 이것을 만드는 기구에 따라 종별 되어야 할 것이랴?
세상에 대패당 있고 톱당 있는가? 집을 짓는 자는 목수가 아닌가?
너희는 기구에 의해 서로 나뉘려 한다.
너희는 아직 그리스도교가 무엇인지 모른다. 지도 역시 심하지 않는가(5).
나는 분명히 너희 중에 복음의 씨를 심었다.
아볼로는 내 뒤에 와서 내 심은 씨에 물을 주었다.
하지만 만약 의의 태양이 너희 위해 비취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까?
만약 성령의 난풍(暖風)이 너희를 따뜻하게 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농부는 토양을 만들지 못한다. 또 일광과 공기를 만들지 못한다.
그는 겨우 하나님께서 만드신 씨를 하나님께서 지으신 흙에 심고 여기에 물 주는데 하나님께서 만드신 물로서 하고, 그리고 조심하여 수확의 때를 기다릴 뿐,
우리의 전도 사업도 역시 그러하다. 우리들은 다만 심었을 뿐 물 주었을 뿐,
하나님은 모두 기타의 것을 해 주시었다.
우리가 한 것은 말할 것도 못 된다.
우리는 다만 기구로서 사용된 데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삽 같은 자, 방수관 같은 자,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것에 준데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너희는 우리를 의지하여 당파를 맺는다고 들었다. 너희는 아직 식물성장의 이유도 해득 못한 무학자이다(8).
심는 자는 물 주는 자보다 낫지 못하다. 물 주는 자는 심는 자 보다 귀하지 못하다.
이자(二者) 모두 하나님의 노동자로서 그 노동 여하에 따라 고용주이신 하나님께로 부터 은혜의 임금을 받는 것이다. 이미 임금을 받은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일에 종사하는 것 아니다.
너희는 우리에게 임금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역하는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이미 과분한 보상을 받고 있는 우리에게 대하여 너희는 아무 감사하지 않아도 가하다(8).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이다. 즉 하나님의 사업으로서 우리의 사업으로 하는 자이다.
이렇게 말함은 물론 하나님과 우리와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자라고 하는 것 아니다. 그는 고용주이고 우리는 고용인이다.
우리는 수확의 분배에 참여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하지만 관대하신 하나님은 우주를 사역함과 동시에 우리에게 그의 공동자로서의 영예를 부여하시고, 우리를 날품팔이로서 보지 않으시고, 우리를 그의 노동의 동사자로서 취급하신다.
우주의 만물을 지으시고 이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공동자인 우리의 명예는 실로 큰 것 아닌가?(9).
우리는 하나님의 공동자,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너희를 밭갈이하여 개희의 선한 열매를 너희에게 거두어들이려 한다.
너희는 또 하나님의 집이다.
우리들은 하나님과 함께 견고한 신앙의 토대 위에 너희를 쌓고 너희를 산 돌로서 세워진 하나님의 거룩한 전(성전)으로 삼고자 한다.
우리는 농부이다. 목수이다.
천국 건설 위해 사역되는 하나님의 노동자이다(9).
나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 따라 현명한 건축사 같이, 너희 가운데서 임 견고한 기초(초석)를 놓았다고 믿는다.
그것은 나는 내 지혜를 말하지 않고 내 철학을 전하지 않고서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를 너희 가운데 전했기 때문이다.
이는 시온에 두어진 귀한 모퉁이의 머릿돌로서 이것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 없다.
(로마서 9: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다른 사람이 만약 그 위에 집을 세우려 한다면 어떠한 집을 세울 것인지에 주의하라. 그는 토대에 맞지 않는 집을 세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십자가 위에 십자가의 교회를 세우라.
윤리교회를 세우지 말라. 사교적 단체를 구축하지 말라.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교회 같으나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린양의 피로 구원된 자의 살아있는 유기체이다(10).
기초는 다만 하나이다. 이미 하나님에 의해 놓인 것, 이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외에 만세 부동의 기초 없다.
이는 때와 함께 이동되지 않는 것,
만물이 모두 폐멸로 돌아가는 때, 홀로 외연히 남는 것이다.
교회의 토대는 물론 이것이다. 사회의 토대도 이것이다. 국가의 토대도 이것이다. 지식의 토대도 이것이다.
이것에 의하지 않고서 세상에 강고한 자 하나도 있을 수 없다(11).
금으로서 세운 자는 금의 보상을 받을 것이다. 은으로서 세운 것은 은의 상을 받을 것이다.
보석으로서 세운 자는 보석의 상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풀과 짚으로서 세운 자는 풀과 짚의 상을 받을 것이다.
사람은 그 심은 대로의 것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된다.
윤리의 짚으로서 세워진 교회는 복음의 금으로서 건축된 교회 같이 견고하지 못하다.
철학이라는 풀로서 만들어진 신자는, 십자가의 보석으로서 장식된 신자만큼 아름답지 못하다.
이름은 한 가지로 그리스도 신도일 것이다.
하지만 짚의 신자와 금의 신자가 명료히 판별되는 때는 올 것이다(12-13).
불타버릴 나무와 풀과 짚과, 불 타지 않을 금과 은과 금강석을 판별하는 날은 올 것이다.
그날은 시련의 불로서 나타나 불은 각인의 사업이 어떠한지를 시험할 것이다.
귀금과 보석은 남을 것이다. 나무와 잡초는 불타버릴 것이다.
나라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자, 도덕의 모범으로서 그를 앙모한 자 등은 나무처럼 불타버릴 것이다.
만약 저 명예와 사소한 쾌락을 추구하여 그리스도교회에 들어 온 자 같은 것은 봄들에서 불이 마른 풀을 태워버린 듯 연기로 되어 하늘로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그때 어린양의 피로서 인쳐진 자만이 남고, 세상에 순결의 신도만이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은 거짓된 형제로 인하여 더럽혀지는 일 전혀 없을 것이다.
오라. 이 시련의 날이여 우리는 그 도래를 기다림 오래도다(12-13).
하나님은 불로서 사람의 사업의 진위를 시험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업으로서 사람을 시험하지 않으신다.
세상에는 진심을 가지고서 오류를 전하는 자 있다.
그 업은 그대로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뜻은 칭찬될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신 하나님은 그 사업의 연고로서 그 사람을 버리시지 않고, 거짓된 사업을 무너뜨리심과 동시에 그 사람을 구원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구원됨은 불에서 피한 사람 같이 겨우 구원되는 것이다.
그는 천국에 들어가도 아무 사업도 그의 손에 가진 것 없이 다만 생애의 실패담 만을 가지고 겨우 성도의 무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사업은 모두 불타버리고, 천국에 들어가도 한 사람도 그에 의해 구원된 자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는 자 없이 또 한 사람의 개회자도 그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 없다. 그는 고독 모르는 나라에 들어가 거기서 새로이 지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는 선한 마음을 가졌다 해도 선한 지식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내촌감삼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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