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2
성 경: [벧후 3:8-13]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 베드로는 경건치 않은 자들에 대한 심판을 언급한 후 사랑하는 수신자들을 위해 시 90:4을 인용하여 재림 지연에 대한 미혹에 빠지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시 90: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천 년이 하루 같은'은 실제로 주의 재림이 연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의 때를 인간들의 시간 개념으로 오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이 설정해 주신 제한된 인간의 시간 개념은 어떤 법칙이나 제한에 얽매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영원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천 년은 하나님의 하루에 불과한 것이다(시 90: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인간의 시간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달려 있음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다거나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거짓 교사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경계해야 한다.
참조 : (요 7:1-9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 본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앞 절의 시간 개념보다 진보된 설명이다.
'어떤 이'는 주의 재림이 없다고 주장하는 기롱자들 뿐만 아니라
(3절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기롱자들의 미혹으로 말미암아 악한 영향을 받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주의 재림에 대한 약속이 더디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더디 오시는 것이 아니라 '참으시는 것'이다.
'참으심'은 피조물을 향해 세워놓은 계획에 대해서 실행하시는 신실한 속성과 더불어 죄인들을 향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이다.
주의 재림의 지연은 믿음 없는 자들이 보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태만이나 능력의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오래 참으시는 긍휼이다.
한편 '너희를 대하여'의 헬라어 '에이스 휘마스'는 사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러한 사본상의 차이는 뒤이어 나오는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과 연관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대상에 대한 언급으로, 사본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참으심의 대상이 전인류를 향한 것임을 시사한다. (Calvin, Blum).
▶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본문은 하나님을 기롱하고 재림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미혹되어 재림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자들에 대한 해답이다. 그것은 회개하여 아무도 멸망치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다.
하나님께서 회개하기를 원하는 대상에 대하여 혹자는, 이미 선택받은 자들 중에서 아직 회개치 않은 자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Clark), 타락한 모든 인류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Calvin, Blum).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성경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과 많은 차이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겔 18: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33: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롬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후 2: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하나님께서 전 인류가 회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를 향해 똑같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성품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본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지연이 공허한 하나님의 약속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향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기회를 불신자들에게 알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성화된 삶을 영위해야 한다.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 기롱자들과 미혹된 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주께서 오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오실 것임을 강조한다.
한편 '주의 날'은 일반적으로 심판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낸다.
(사 2: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하고;
겔 13:5 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욜 1:15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말 3:2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행 2:20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고전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살전 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살후 2: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본문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재림이 도적이 아무런 예고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예기치 않게 임할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갑작스러운 재림은 이미 예수 자신이 말씀하셨고,
(마 24: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눅 12: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바울과,
(살전 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요한이,
(계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강조한 것으로 베드로는 이런 표현을 재삼 강조하여 수신자들이 기롱자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고 깨어 준비하기를 권면하고 있다.
▶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 본문의 '큰 소리로'는 강풍이나, 강한 물살 혹은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세상이 파멸되거나 진멸될 때 나타나는 소리를 암시한다. (Gibson).
이는 곧 주의 재림에 나타나게 될 심판의 무서운 상태를 암시한다.
(계 6: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 '체질'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토이케이아'는 '스토이코스'('열')에서 유래된 단어로, 세상을 구성하는 원물질 곧 흙, 공기, 불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는 '기본적인 요소'들을 가리킨다.
(갈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히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이것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문은 주의 재림 때에 온 세상이 불에 타 해체됨을 시사한다.
▶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 인간이 이루어 놓은 모든것이 파괴되고 불살라 지는 것을 나타난다.
[벧후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 이제 베드로는 확실한 재림을 앞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취하여야 할 자세에 대해 권면한다.
'어떠한 사람이'는 하나님이 택한 그리스도인들이 지상의 시민인 동시에 하늘나라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Gibson, Charles).
한편 '되어야'는 그리스도인의 지속적으로 영위해야 하는 종말론적 삶을 시사한다.
▶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 '거룩한'은 악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 헌신된 것을 가리키며
'경건한'은 하나님을 닮아가며 섬기는 것을 가리킨다. (Blum).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확실히 파멸될 것이기 때문에 악을 떠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 '하나님의 날'은 구약성경의 '여호와의 날'과 같은 의미로, 10절에서는 '주의 날'로 나타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
(계 16: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한편 '바라보고'는 구약에서 발전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나타낸다. (Robertson, Calvin, Bauckham).
또한 '간절히 사모하라'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면서 오래 참으시는 성품과 관련된 것으로 문자적으로 '서두르라'는 의미이다.
(9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것은 사 60:22의 반영으로
(사 60:22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회개를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회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종말을 앞당길 수 있음을 시사한다.
(사 10:23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행 3:19-20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Eliezer, Bauckham, Blum).
그리스도인들은 깨어 있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영위할 뿐만 아니라 주의 재림에 관한 소망을 잠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삶의 자세를 통해서만 거짓 교사들의 미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종말론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 '그 날에'는 문자적으로 '날 때문에'라는 의미로,
그 날, 곧 '하나님의 날이 오기 때문에'라는 의미로 그 날, 곧 '하나님의 날이 오기 때문에' 또는 '그 날의 임재 때문에'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하여 온 세상은 불을 통한 심판을 받아 사라지게 된다.
(10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베드로는 본절에서 하나님의 날에 경건한 자들에게 약속된 것에 대해 구약성경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약속'은 하나님 자신의 의에 근거한 약속으로,
(사 11:4-5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45:8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 같이 듣게 할지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렘 23:5-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7)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33: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단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노아 시대에 대 홍수로 불경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죄악된 세상을 새롭게 하셨듯이 주께서 재림하는 하나님의 날에 온 세상을 불로 심판할 것과 더불어 하나님의 의가 영원한 집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시킬 약속을 말한다.
(사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66: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한편 '새 하늘과 새 땅'은 구약성경과,
(사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66: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유대 묵시 문학에 나타나며,
(위경 에녹1서 45:4,5;72:1;91:16; 바룩 2묵시록 32:6;44:12;57:2; 에스라 4서 7::75)
신약성경에서도 받아들여져 나타난다.
(마 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이것은 하늘과 땅이 새롭게 창조되어,
(시 102:26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사 51: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히 1: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계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새로워지고 완전해짐을 시사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날'이 죄악된 세상과 피조물에 대해서는 멸망과 재앙의의 날이 될 것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악과 세상의 고난을 도말하는 기쁨의 날이 될 것임을 기억하고 기대하며 사모해야 한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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